'잉글랜드 축구의 전설' 케빈 키건, 75세로 별세...리버풀·뉴캐슬이 사랑한 영웅
OSEN 정승우 기자
발행 2026.07.21 11: 02

잉글랜드 축구의 전설 케빈 키건이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영국 'BBC'는 21일(이하 한국시간) "키건은 수많은 장면으로 기억되는 선수이자 감독이었다. 뛰어난 재능과 카리스마, 뜨거운 열정을 지닌 그는 축구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고 추모했다.
키건은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시절의 실패로 기억되기도 한다. 다만 그의 축구 인생을 설명하기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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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로서는 리버풀과 함부르크에서 세계적인 공격수로 활약했고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까지 맡았다. 선수 생활 후반에는 사우스햄튼과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뉴캐슬에서는 구단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인물 중 한 명으로 남았다.
키건은 선수로 뉴캐슬의 부활을 이끌었고, 감독으로 돌아와 팀을 1부 리그로 승격시켰다. 이후 공격적인 축구를 앞세워 프리미어리그 우승 경쟁까지 펼쳤다.
1995-1996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승점 12점 차로 앞서고도 역전을 허용했던 장면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당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을 향해 "우리가 그들을 꺾는다면 정말 기쁠 것"이라고 외친 인터뷰는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뉴캐슬 팬들이 키건을 향해 보낸 애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BBC는 "키건의 경력은 그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그는 재능이 뛰어났고 정직했으며 품위 있고 성실했다. 감정도 풍부했다. 수많은 굴곡이 있었지만 언제나 긍정적인 에너지와 생동감을 불어넣었다"고 돌아봤다.
키건은 잉글랜드 동커스터 인근 암소프에서 태어났다. 스컨소프 유나이티드에서 100경기 이상을 뛰며 이름을 알렸고, 1971년 리버풀의 전설적인 감독 빌 샹클리의 선택을 받았다.
이적료는 3만5000파운드였다. 훗날 축구 역사상 최고의 헐값 영입 중 하나로 평가받은 계약이다.
키건은 협상이 마무리되는 동안 안필드 밖 쓰레기통 위에 앉아 기다렸다는 일화도 남겼다.
일부에서는 그를 타고난 천재보다는 근성과 노력으로 정상에 오른 선수로 평가했다. 성실함이 키건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였던 것은 맞지만, 그것만으로 그의 재능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샹클리 감독은 키건이 리버풀에 합류한 지 2주도 지나지 않아 "너는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언은 적중했다. 키건은 1971-1972시즌 개막전이었던 노팅엄 포레스트와 경기에서 리버풀 데뷔골을 터뜨렸다. 존 토샥의 도움을 받아 넣은 다소 투박한 골이었지만 리버풀과의 위대한 동행을 알리는 시작이었다.
키건과 토샥은 이후 잉글랜드 축구를 대표하는 공격 조합으로 자리 잡았다.
키건의 민첩성과 움직임, 토샥의 높이와 힘이 결합된 이른바 '빅맨-리틀맨' 조합이었다. 두 선수는 서로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호흡을 맞췄다.
두 사람의 호흡은 TV 프로그램에서도 시험대에 올랐다.
키건과 토샥은 서로 등을 맞댄 채 상대가 들고 있는 카드의 색과 모양을 맞히는 실험에 참여했다. 높은 정답률 때문에 실제로 텔레파시가 통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훗날 두 사람은 스튜디오에 설치된 거울을 통해 상대의 카드를 볼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키건은 샹클리 감독이 만든 리버풀의 두 번째 전성기를 이끈 핵심 선수였다.
샹클리와 후임 밥 페이즐리 감독 체제에서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3회, 유러피언컵 1회,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1회, 유럽축구연맹(UEFA)컵 2회 우승을 경험했다.
1974년 뉴캐슬과 FA컵 결승에서는 두 골을 터뜨리며 리버풀의 3-0 승리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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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BBC 해설자 데이비드 콜먼은 키건의 선제골이 터지자 "골이 생활비를 책임진다. 키건은 자신의 몫을 하고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리그 우승팀 리즈 유나이티드와 맞붙은 커뮤니티실드에서는 빌리 브렘너와 충돌해 퇴장당했다. 두 선수는 상의를 벗은 채 웸블리 스타디움을 빠져나갔다.
1972-1973시즌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 UEFA컵 결승 1차전에서는 두 골을 넣었다.
해당 경기는 폭우와 천둥으로 27분 만에 중단된 뒤 다음 날 다시 열렸다. 샹클리 감독은 첫 경기 선발에서 제외했던 토샥을 재투입했고, 키건과 토샥은 독일 수비진을 무너뜨리며 3-0 승리를 만들었다.
리버풀은 1, 2차전 합계 3-2로 정상에 올랐다.
3년 뒤 클럽 브뤼헤와 UEFA컵 결승에서도 키건의 활약은 이어졌다. 벨기에에서 열린 2차전에서 중요한 골을 넣었고, 리버풀은 합계 4-3으로 우승했다.
경기장 밖에서도 경쟁심은 강했다. 키건은 1976년 여러 종목의 운동선수들이 맞붙는 BBC 프로그램 '슈퍼스타즈'에 출연했다. 자전거 경기 도중 넘어져 팔꿈치와 어깨를 다치기도 했다.
음악에도 도전했다. 1972년에는 '잇 에인트 이지(It Ain't Easy)'라는 제목의 싱글 음반을 발표했다.
화려한 성공과 쓰라린 실패, 감동적인 부활과 뜨거운 감정까지 키건의 축구 인생에는 수많은 장면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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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단순히 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린 선수나 감독이 아니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고, 팬들과 함께 기뻐하고 아파했다.
리버풀에서는 세계적인 선수였고 뉴캐슬에서는 도시 전체가 사랑한 영웅이었다. 잉글랜드 축구는 가장 뜨겁고 인간적인 인물 중 한 명을 잃었다. /reccos23@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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