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주영(29)이 영화 ‘메기’(감독 이옥섭) 이후 새 작품 ‘야구소녀’(감독 최윤태)로 스크린에 컴백했다. 정확히 9개월 만인데 이번에도 그녀만의 매력이 돋보인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 안 해요”라고 말하는 주수인이 이주영과 겹쳐 보인다.
여자라고 얕보는 남자들에게 통쾌하고 시원한 말투로 어떻게든 반격하는 주수인. 커트 머리에 야구 유니폼을 입고 등장하는 첫 순간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남다른 ‘깡'을 가진 이주영의 주수인은 그 자체만으로도 독보적이다. 이 배우가 만든 주수인 캐릭터가 큰 스크린 안에서 자유롭게 뛰어논다.
이주영은 10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야구소녀’(제작 한국영화아카데미, 배급 싸이더스)를 홍보하는 자리를 갖고 작품에 출연한 과정부터 촬영기를 전했다. 들뜨지 않고 차분하게 말이나 행동을 과장하지 않았고 웃을 땐 시원하게, 얘기할 땐 솔직하게, 이주영은 약점을 쉽사리 찾아보기 힘든 배우였다. 나이가 어려도 ‘걸크러시’의 매력이 차고 넘쳐 흘렀다.

출연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 이주영은 “드라마 ‘오늘의 탐정’을 끝내고 휴식기를 갖고 있을 때였다. 여성 캐릭터가 주가 돼 이끌어 가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타이밍 좋게 최윤태 감독님이 제안을 해주셨다”며 “대본을 받았을 때 ‘이걸 안 할 이유가 없다’는 마음이 들었다. 보통 작품을 받고 선택할 때 내가 해야할 이유를 찾게 되는데 이 작품은 안 할 이유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시나리오를 받고 (과거엔)여자는 프로 야구선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직까지도 프로야구 선수들 중 여자가 없다는 게 놀라움으로 다가와 그 세계가 궁금했다”며 “감독님이 (프로야구선수에 도전했던) 그 분들과 충분히 인터뷰를 하셨고 제가 가졌던 궁금증들을 자세한 설명을 통해 풀어주셨다. 연기하면서 현실에 없는 캐릭터는 개인적으로 연구를 하는데, 실제 인물이 있으니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던 거 같다”고 캐릭터를 해석하고 연기로 표현한 과정을 전했다.
이어 “주수인 캐릭터에 많은 매력을 느꼈다. 20대 후반에 제안을 받아 극중 10대 후반을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저랑 비슷한 또래나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 봐도 충분히 공감하며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수인 캐릭터에 마음을 담았다”라며 “엄마, 아빠, 친구들과의 관계가 잘 그려진다면 주수인 캐릭터를 잘 만들어나갈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감독님이 직접 쓰신 글 자체가 너무 좋았다. 저예산임에도 시나리오가 탄탄했다”고 덧붙였다.

인상 깊었던 대사가 많았을 거 같다는 물음에 “그렇다. 주수인이 말하는 것을 통해 그녀를 느끼고 파악했다”며 “‘느리게 가도 괜찮다’. '느리게 가도 이길 수 있다’는 대사를 곱씹으면서 저 역시 그 말이 맞다고 느꼈다. 공감했다. 주변 사람들이 (주수인의)길을 모르면서 하지 말라고 말리는 게 이해가지 않았다. 그 대사 자체로 수인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주영은 2012년부터 장단편 독립영화에 출연하며 연기의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이주영에게 관심이 있는 대중이라면, 그녀가 드라마 및 영화에 모습을 비추기 시작한 초창기부터 남다른 떡잎을 지닌 배우였다는 것을 잘 알 거다. 이옥섭 감독의 ‘메기'에서 간호사 윤영 역을 맡아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이 시대 청년들의 모습을 대변했다.
지난해 선보인 ‘메기’가 독립영화임에도 수많은 관객들의 지지를 얻었고, 무엇보다 올 3월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를 통해 이주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주영이 연기한 트랜스젠더 출신 요리사 마현이는 그 누구에게도 아부하지 않고 정확하게 자신이 뜻한 바를 이뤄나가는 모습으로 스스로 멋진 여자임을 입증했다. 이주영은 ‘메기’에 이어 ‘이태원 클라쓰’로 데뷔 후 첫 번째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주영은 “(드라마의 인기에 관한) 질문을 많이 해주시는데 저는 드라마의 인기가 영화로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없다. 영화는 별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이주영은 “연기를 하면서 스스로 고민하는 지점이 많았고 ‘내가 계속 가도 되나?’라고 고민하는 시점이 많았다. 주변에서 ‘다른 길로 가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며 “근데 저도 주수인처럼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걷고 싶었다. 그들이 직접 가본 길도 아니면서 안 된다고 말하는 게 이해가지 않았다. 물론 주수인과 제가 가는 길도 다르고, 종목도 다르지만 수인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주영은 경희대 체육과에 입학했지만 2학년부터 연극영화과로 전과했다. 이날 ‘체대 출신이었던 게 야구선수를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됐었느냐’고 묻자 “전혀 아니다. 제가 논술로 체대에 갔다”며 “체육과를 1년간 다니긴 했지만 그 학과나 체육 과목에 대한 욕망은 없었다. 1학년 때 교양으로 연극 수업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연기에 관심을 갖고 시작하게 됐다. 주수인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체대 출신이라는 게 작용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제가 촬영 전 야구 문외한이었다.(웃음) 관전하러 한 번 가봤었다. 야구 경기장 분위기도 잘 아는 상태는 아니었다”며 “촬영 전 야구의 룰에 대한 기본을 파악하면서 한 달간 신체 단련을 했다. 감독님이 자료를 많이 찾아주셔서 도움을 받았다. 공을 던지는 자세를 보니, 저의 몸이 선수들 만큼 따라주지 않는 거 같아서 아쉬울 따름이다. 연습을 할 때는 몸으로 부딪혀서 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선수들이 어떻게 던지는지 많이 보라고 감독님이 말씀하셨다. 하지만 (공이 날아가는 속도)60~70km를 제가 넘기기도 힘들더라.(웃음) 주수인은 130km 이상 던지는데.(웃음) 주어진 시간이 부족했지만 그 안에서 제가 노력을 했던 거 같다”고 말했다.
이주영은 “‘야구소녀’가 주수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여자라고 해서 안 될 건 없다’고 말한다. 그런 서사를 빼놓고 이 영화를 설명할 순 없을 거 같다”며 “다만 감독님과 얘기한 것은 주수인과 코치 최진태의 버디무비로 가고 싶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코치에게 수인이 이끌려가거나, 그의 조언을 받는 것은 영화의 메시지가 바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지 않게 신경 썼다. 영화를 보고 안도한 부분은, 수인이 타의로 꿈을 이루는 게 아니라는 거였다”고 말했다.
그녀는 “저희 영화가 여성에 대한 차별을 깨는 것도 중요하지만 꿈을 갖고 있는 사람들, 또 그 사람들을 돕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포함하고 있는 거 같다. 누가 봐도 공감하며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 같다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이달 18일 개봉. 러닝타임 1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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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싸이더스, 에이스팩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