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영화제에서 수상한 이력이 있는 김기덕(61) 감독이 12월 11일 유럽 라트비아에서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코로나19 합병증. 수상 실적이 영화의 가치를 증명하는 건 아니지만, 삶의 궤적을 압축적으로 설명하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11일(현지 시간) 러시아 타스 통신은 라트비아 통신사 델피의 보도를 인용해 김 감독이 이날 오후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병원에서 사망했다는 것.
델피 보도에 따르면 라트비아에 거주하는 러시아 감독 비탈리 만스키와 김 감독의 통역사로부터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국내에 있는 김기덕 감독의 가족도 현지 통역사로부터 김 감독의 사망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한국 외교부는 주라트비아대사관을 통해 김 감독의 사망 사실을 접수한 후, 현지 병원을 통해 사망 경위를 확인했다. 김 감독의 유족을 접촉해 진행사항을 확인하며 향후 장례 절차를 지원할 계획이다.

사망 소식을 접한 부산국제영화제 전양준 집행위원장은 이날 자신의 SNS를 통해 “키르기스스탄의 평론가 굴바라 톨로무쇼바로부터 카자흐스탄에서 라트비아로 이주해서 활동하던 김기덕 감독이 자신의 환갑일(12월 20일)을 불과 한 주 앞두고 코로나19로 타계했다는 충격적인 비보를 들었다”며 “발트 병원에 입원한 지 이틀 만인 오늘 사망했다고 한다. 한국 영화계에 크나큰 손실이자 슬픔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적었다.
앞서 지난달 20일 김 감독은 라트비아에 주택을 구입하고, 거주 허가를 기다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달 5일부터 현지인들과의 연락이 닿지 않았고, 예정된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인들은 김 감독을 찾기 위해 병원을 물색했지만, 엄격한 개인 정보 보호 규정으로 인해 검색이 어려웠다고 한다.
김기덕 감독은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세계 3대 영화제인 칸, 베니스, 베를린에서 본상을 수상했다. 영화 ‘사마리아’(2004)로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감독상)을, 영화 ‘빈집’(2004)으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감독상)을 수상했다. 지난 2011년에는 다큐멘터리 ‘아리랑’(2011)으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2012년에는 영화 ‘피에타’로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최고상)을 받는 기록을 세웠다.
한편 지난해 4월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측은 김 감독을 41회 모스크바 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위촉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8년 MBC ‘PD수첩’ 측이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을 통해 김기덕 감독의 성폭력 의혹을 보도해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김 감독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으로부터 패소했다. 그러나 이에 불복한 김 감독은 지난달 항소했다.
미투 논란 이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초청됐던 영화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2017)의 국내 개봉은 무기한 연기됐다.
김기덕은 1996년 영화 ‘악어’를 통해 영화계에 데뷔했다.이후 ‘야생동물 보호구역’(1997) ‘파란 대문’(1998) ‘섬’(2000) ‘수취인불명’(2001) ‘나쁜 남자’(2002)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사마리아’(2004) ‘빈 집’(2004) ‘비몽’(2008) ‘뫼비우스’(2013) ‘그물’(2016)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미투 논란에 휩싸였지만, 연출자로서 김기덕 감독의 족적은 영화사에서 한 장을 당당히 차지한 채 기억될 것이다.
/ purplish@osen.co.kr
[사진]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