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장에 나간다거나 만주에서 본 일들을 (화면에 생생하게)그려낼 수 없었다. 이에 (극중) 아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9일 오후 서울 용산 CGV 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스파이의 아내’(수입배급 엠엔엠인터내셔널)의 언론배급시사회에서 “전 세계에 여러 가지 종류의 영화가 있는데 이런 영화도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감독과의 간담회는 실시간 화상인터뷰를 통해 이뤄졌다.
‘스파이의 아내’는 태평양 직전인 1940년, 아내 사토코(아오이 유우)와 행복하게 살던 고베의 무역상 유사쿠(타카하시 잇세이)가 사업차 만주에 갔다가 그곳에서 엄청난 만행의 현장을 목격하고 이를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한 이야기를 담았다. ‘스파이의 아내’가 2차 세계대전 속 일본의 만행을 다룬 특이하고 흡입력 있는 웰메이드 스릴러로 등극할 전망이다.
사토코는 남편의 비밀이 그들의 완벽한 가정을 위협할 것이라 생각해 결사적으로 유사쿠를 말리지만 결국 그의 대의에 동참하여 기꺼이 ‘스파이의 아내’가 되기로 한다. 우리 시대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1940년 일본이라는 시공간과 불온의 공기를 배경이자 주제로 삼아 세 남녀의 얽히고설킨 애정과 신념을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로 완성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예산이 많이 들어간 작품은 아니지만 영화 안에 이미 큰 얘기가 들어있기 때문에 일상에서도 뭔가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방향성을 전했다.
그러면서 “(주인공들의) 일상을 많이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주제를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영화 속 두 사람의 대사만으로도 많은 것을 전달하려고 했다. 영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관객들이 상상을 통해 생각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 이상으로 표현하고 싶어도 예산상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최저로 보여주는 안에서 여러 가지를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자신만의 기획 의도 및 촬영 방식을 전했다.
시대를 1940년대 2차 세계대전으로 잡은 이유에 대해 그는 “이 시대는 사회와 인간의 관계가 거의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지 않고 긴장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요시 감독은 “주로 현대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때도 인간의 자유와 행복에 대해 그리려고 했었다. 아무래도 현대 사회를 무대로 하면 무엇이 자유인지 뚜렷하게 보여주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고 (보여주지 못하고) 그렇게 끝낸 적이 많았다. (1940년대)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 진정한 자유와 행복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예전부터 이 시대를 배경으로 얘기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각본에 쓰인 대사가 현대어와 다른 예스러운 말투였다. 배우들이 완벽하게 외워서 임해야만 했다. 물론 그게 당연한 거지만 (배우들이 대본대로 외워서)그렇게 임했다. 만약 현대극이었다면 애드리브를 하고 현장에서 만들어서 갈수도 있었는데 이번 영화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즉흥적인 대사는 불가했고 대본에 쓰인대로만 갔다. 그게 제약일 수 있지만, 각본대로 만드는 게 재미있다고 생각했다.(웃음)”
지역을 고베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 감독은 “원래 각본단계부터 그렇게 잡았었다. 고베는 항구 지역으로 전쟁 중에도 해외와 무역이 빈번했고, 외국과의 교류가 자유로웠기 때문에 이 이야기에 매우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주인공 부부에 대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모델이 된 실존 인물은 없다. 각본을 쓴 작가가 각본을 통해 만들어낸 인물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기요시 감독이 하마 구치 류스케, 노하라 타다시와 각본을 썼고 아오이 유우, 타카하시 잇세이, 히가시데 마사히로 등 배우들이 출연했다. 이 영화는 지난해 6월 NHK에서 방송됐던 스페셜 드라마를 영화로 재제작했다. 베니스국제영화제(2020)에서 은사자상(감독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감독은 아오이 유루, 타카하시 잇세이를 캐스팅한 계기를 떠올리며 “여자 배우, 남자 배우 중 두 사람이 최고다. 물론 (일본에도 좋은 배우들이 많지만) 저는 이들이 (일본에서)최고의 연기력을 갖고 있다고 봤다. 저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두 배우의 연기력을 익히 잘 알고 있다. 저는 실력이 뛰어난 배우를 캐스팅 하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스파이의 아내’는 지난해 열린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돼 공개된 바 있는데 이달 25일 국내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 이에 감독은 “한국 개봉을 하게 돼 매우 영광스럽고 기쁘게 생각한다”는 소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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