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여정이 데뷔 55년 만에 역사를 썼다. 내달 열리는 제 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여우조연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오스카는 수상은 물론이고 후보로 오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기에 국내 영화계가 한마음으로 기뻐하고 있다.
지난 15일 오전(현지 시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측이 발표한 부문별 후보자(작)들을 보면,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 수입배급 판씨네마)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미나리’는 여우조연상을 포함해 영예의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스티븐 연), 각본상, 음악상 등 총 6개 부문의 최종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윤여정이 한국 배우 중 역사상 처음으로 아카데미 배우상 부문 후보로 지목된 것이다.

윤여정은 배우 마리아 바칼로바(‘보랏 서브시퀀트 무비필름’), 글렌 클로즈(‘힐빌리의 노래’), 올리비아 콜맨(‘더 파더’), 아만다 사이프리드(‘맹크’)와 트로피를 놓고 경쟁한다.
후보 지명 소식을 들은 윤여정은 “(오스카 입성은) 나에게 단지 다른 세계 이야기였다. 한국 여자 배우가 오스카 후보에 오른다는 건 꿈도 꿔본 적 없고 그게 나라니 믿을 수 없다. 캐나다 밴쿠버 촬영 일정을 끝내고 한국에 도착해 매니저로부터 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윤여정은 애플TV 미국 드라마 ‘파친코’ 촬영차 캐나다를 방문하고 지난 15일 밤 귀국했다.
이어 그녀는 “매니저는 저보다 훨씬 젊은데 인터넷을 보다가 갑자기 ‘와, 후보에 지명됐다’고 알려줬다. 매니저는 울었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면서 “나도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냥 매니저를 껴안고 거실에 있었다”고 당시에 느낀 감정을 전했다. 해외에서 입국한 그녀는 자가격리 2주에 돌입한 상황.

이어 윤여정은 “모든 사람들이 축하하기 위해 (내가 있는 곳으로) 오고 싶어하겠지만 올 방법이 없기 때문에 저는 매니저와 함께 축하할 것”이라며 “문제는 매니저가 술을 전혀 마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 혼자 술을 마셔야겠다. 매니저는 내가 술 마시는 것을 지켜볼 거 같다”라고 자축했다.
윤여정은 1980년대 한인 가족의 미국 정착기를 그린 ‘미나리’에서 모니카(한예리 분)의 가족들을 챙기기 위해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친정엄마 순자를 연기했다. 미국 생활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요리도 하지 않고 TV 쇼만 즐겨 보는 순자를 보며 보통의 할머니들과 다르다고 거리감을 느낀다. 심지어 손자 데이빗(앨런 김)은 짓궂은 장난까지 치며 할머니를 놀라게 하지만, 순자는 사랑으로 손자 데이빗을 감싸며 온몸으로 아낀다.

어디서도 잘자라는 미나리는 아메리칸 드림을 꾸며 미국으로 떠난 그 시절 이민자 가족을 가리킨다. 제이콥(스티븐 연), 모니카에게는 미나리가 곧 순자의 사랑이다. 할머니의 애절한 정성을 평범하지만 강인한 미나리로 치환했다.
짙은 한국적인 정서로 외국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미나리’의 윤여정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지 주목된다.
한편 이달 3일 국내 개봉한 ‘미나리’는 어제(15일)까지 51만 1860명(영진위 제공)을 동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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