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코미디는 죽었다(feat. 박나래)[손남원의 연예산책]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21.05.01 16: 51

박나래가 웹예능 '헤이나래' 출연에서 농염한 성(性) 개그를 펼쳤다가 경찰 조사까지 받게됐다. 이른바 박나래 성희롱 논란이다. 한 마디로 웃기는 코미디다. 정작 공중파 TV에서는 코미디와 개그 프로가 모조리 멸종했는데 현실 세상은 온통 웃자판으로 바뀌었다.
문제의 방송은 예전 같으면 은밀한 공간의 심야업소에서나 다뤘을 19금 성 개그를 공공연히 일반에 드러냈다가 여론의 철퇴를 맞고 있다. 기자는 1980년 고(故) 김형곤 주도의 강남 '코미디클럽'에서 당시 세상을 풍미했던 스타 개그맨들의 라이브쇼를 관람한 적이 있다. 비싼 입장료에도 표 구하기 진짜 힘들 정도로 만원사례였다. 페미니즘이란 단어조차 생소했을 정도로 사회 분회기는 꽉 막혔고 아직도 군부독재의 잔재가 일반에 만연하던 시기로 기억한다.
미성년자 절대 입장 불가. 입구에 19금 표지가 빨갛게 놓여진 클럽 안 객석에는 남녀 성인 관객들로 가득 찼다. 고 김형곤의 공연 모습은 아직도 생생히 뇌리에 떠오르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아득하다. 그래도 확실한 건 부부간 잠자리에서나 오갈 수준의 성적 개그가 연신 계속되는 가운데 남녀 관객 구분없이 배꼽을 잡고 굴렀다는 사실이다. 

<사진> 넷플릭스 '농염주의보' 캡처

고 김형곤은 정치 코미디 한 번 잘못했다가 신세 조지는 그 시절에 권력을 풍자하는 개그로 많은 시청자의 공감을 사곤 했다. 그런 그가 야밤의 클럽 공연에서 음담패설급 성적 개그를 펼쳤다고 비난받지는 않았다.
요즘 개그맨들은 소재를 조금만 잘못 고르거나 심하게 다뤘다가는 눈물로 사죄해야된다. '무릎 꿇고 머리 박아'급이다. 군사 독재가 물러나니 그보다 더한 성대결, 세대차이, 인종차별 및 민족주의, 빈부격차, 화이트vs블루, 정치견해 등의 사회적 이합집산 편가르기가 득세한 까닭이다. 이들 전체를 아우르며 웃기는 재주가 있어야 코미디를 할텐데, 어느 신이 세상에 내려와도 불가능해 보인다. 
다시 박나래로 돌아가보자. 지난 3월 23일 '헤이나래' 2화 방송에서 남성 캐릭터 인형을 두고 성적인 발언을 했다. 박나래는 인형의 팔을 늘여서 다리 사이에 집어 넣었다. 또한 남성 게스트 앞에서 자위 행위를 떠올리게 하는 손짓을 하거나 "바지 속의 고추"라는 발언을 거침없이 이어 나갔다. 결국 '헤이나래'는 2화만에 폐지 됐다. 
내용보다 무대(유튜브)가 진짜 화근이었을터다. 아무리 청소년 시청불가를 외쳐도 단속이나 제재가 유명무실한 유튜브에서 형식적인 '19금' 타이틀을 내걸고 '어우동' 생쇼를 펼친건 지탄받아 마땅하다. 박나래가 세계 최대 스크리밍 서비스 넷플릭스를 통해 대대적으로 광고하고 공연한 '농염주의보'에도 결코 덜하지 않은 성 풍자가 섞여있었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선에서 끝난 것과 비교하면 알수있다. 
OSEN이 한 법조인에게 문의한 결과, "(박나래의 혐의에 대해)성희롱으로 형사 처벌 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라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별법 제 13조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로 처벌 받을 가능성은 충분하다"라는 답을 들었다. '박나래 성희롱'이란 견강부회 키워드의 방증이다.  
 꼰대 나이인 기자 입장에서는 여성 주도의 성 개그를 보는 게 다소 불편했지만 이를 법적 처벌대상인 성희롱이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과거의 심야업소 남성 진행자 상당수는 지금 쇠고랑을 차야할게 분명하다.
해외 스트리밍 서비스의 영화, 드라마, 시트콤, 예능 콘텐츠를 시청하다보면 19금이 아닌데도 남녀 출연자들이 남자 성기의 왜소를 비웃거나 그 크기를 과시하는 장면들이 숱하게 나온다. 여자 쪽도 마찬가지다. 실제 일상에서 끼리끼리 이런 대화와 상황이 오가니까 극화하고 문제삼지 않는게 개방적인 국가 엔터업계들의 제작 실상이다. 와중에 박나래의 성희롱 경찰 고발은 이들이 개그 소재로 박수칠 희극이지 않을까 싶다. 
어찌됐든 박나래는 MBC 예능 '나혼자산다'에서 눈물을 펑펑 쏟으며 '성희롱 사죄'를 거듭했다. 경찰 조사에도 성실히 응하겠다는 소속사 멘트가 보도를 탔다. 꼭 이래야되나.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빈다더니, 요즘 우리네 사회 분위기가 딱 이렇다. 니체를 빌지않더라도, 이땅에 코미디는 죽었다. /mcgwir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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