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현실이 더 '영화'스러울 때가 있다. 뉴스 제목에도 자주 등장한다. '대낮에 찍힌 조폭영화? 외국인 노동자들 무차별 폭행'(jtbc 2021.2.9) '영화같은 러시아인 난동..4명이 차량 습격해 무차별 폭행'(조선일보 2021.2.9) 등등.
최근에는 끔찍한 청소년 대상 토종 범죄가 발생했다. "맞다 기절한 15살 성폭행하며 생중계"(중앙일보, 이하 2021. 5.21 ) "기절한 동생 위에 올라타 온갖 악행+생중계"(매일신문)는 같은 사건을 담은 국내 사회면 기사다. 실화 맞습니까? 박훈정('신세계')이나 김지운('악마를 보았다') 감독의 19금 액션 영화에서나 볼듯한 참혹극이 사실이란다.
주요 포털의 이들 기사 아래쪽에는 또다른 청소년 범죄 기사들이 자리잡았다. "성폭행 당한 여중생 ‘극단 선택’…가해 학생들, 감형에도 ‘상고’"(이데일리) "제 딸 성폭행한 가해자 2심에서 감형받았습니다"(세계일보) 제하의 뉴스 속보다.
같은 학교 여중생을 성폭행한 A군(15)과 B군(16)이 서울고법에서 장기 4년, 단기 3년 선고로 1심보다 감형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성폭행 생중계'의 가해 청소년들이 대충 어떤 처벌을 받을지 눈에 훤하다. 청소년 성범죄의 사건과 재판 기사가 같은 날 인터넷 한 페이지에 등장, 뼈아픈 진실 하나를 가리키고 있다. 가혹 범죄에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하루 전에는 이보다 더 비극적인 기사를 읽고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친구를 감싸려던 20대 한 명을 건장한 태권도 유단자 남성 세 명이 무차별 폭행해 살인한 사건이다. “머리를 축구공처럼 차..태권도 유단자들 살인죄 징역 9년"(국민일보) 뉴스다. 몇몇 신문의 기사 앞문장은 '살인죄로 중형을 확정받았다'고 적혔다. 중형이라고요?
세 명이 한 명을 영화보다 더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집단 폭행했다. 피해자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방치하고 인근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집으로 갔다. 피해자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뇌출혈로 끝내 사망한 사건이다. 흔하디 흔한 조폭 영화에서도 일반인을 죽이고 아이스크림 사먹는 깡패를 아직 보지 못했는데, 각각 징역 9년을 받았다. 범인들의 나이가 22살이니 출소하면 한창 나이일게다. 곱게 키운 20대 아들을 장사 치른 가족들은 어떤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중형'이라는 단어를 이런 때 쓰면 정말 아닌겁니다.
리암 니슨 주연의 액션물 '테이큰'(2009년)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영화적으로 평가 받지는 못할지라도 흥행에는 크게 성공했다. 딸을 납치한 인신매매범들에게 시원하게 복수하는 경호원 아버지의 이야기다. 이유 불문하고 속전속결 악인을 처단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만끽했을 것이다. 현실이었다면 범죄자들은 감형 받으려 법정 다툼이나 했을테고 아버지는 오히려 처벌 받았겠지.

갑자기 왕년의 콧수염 배우 찰스 브론슨이 떠오른다. 1974년 작 '데스위시'(한국 개봉명 '추방객')이다. 아마 종로 피카디리 극장에서 봤을 게다. 아내와 딸을 강도에게 잃은 어느 건축가가 직접 거리에 나서 총으로 정의를 집행하는 내용이다. 슬프지만 통쾌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비슷한 류의 영화들을 찍었고 '법보다 총과 주먹이 가깝다'는 명제를 스크린에 새겼다.
범죄자의 인권을 외치는 목소리도 이해하고 그 취지는 잘 알겠다. 그럼 그럼.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피해자는 입 닥치고 있을 수밖에. 그 가족들의 불행한 삶은 또 어떻고.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낸 부모가 과연 남은 인생을 제대로 살겠는가. 합의와 보상을 따질 문제가 아니다. 수천억 받는다고 그 아이들이 살아 돌아옵니까.
제발 지은 죄만큼 벌은 받게 합시다 판사님들. 영화 속 리암 니슨과 찰스 브론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세상에 나타나면 어쩔려구요./mcgwir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