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맛집? 백종원처럼 이름 걸고 합시다[손남원의 연예산책]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21.05.27 08: 49

사람 만나는 일이 잦은 직업이다. 아내는 요리에 별로 관심이 없다. 아이들도 집밥보다 사먹는 걸 좋아한다. 당연히 외식이 잦을 수밖에. 그래서 싸고 맛있는 식당 찾는 데 이골이 났다. 코로나 이후로는 배달앱에서 맛집 고르는 요령도 부쩍 늘고 있다. 
그냥 한 끼 떼우고 말지,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요? 죄송합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따질 것없이 저는 먹기 위해 살지, 살기 위해 먹지 않습니다.
30대에 국내 프로야구 취재를 담당했다. 기자의 프로야구 첫 담당구단은 전주 연고의 쌍방울 레이더스. 시즌중에는 한 달에 절반 가량을 전주에서 살다시피 했다. (쌀국수와 햄버거 위주의 미국 특파원 시절 식생활과 비교되는 내 인생의 맛집 황금기였습니다)

서울내기 기자가 호남 음식의 진정한 맛에 푹 빠지게 된 계기였다. 당시 입맛을 잔뜩 높인 게 지금까지 부담이다. 3천원짜리 백반에 찌개 두 세개가 올라오는 푸짐함에 놀랐고 젓가락질을 잠시도 멈출수 없는 식탁 위 손맛에 감탄했다. 술꾼인 기자가 시키지도 않은 고급 안주들을 내오는 술집 주인에게 성질 냈던 기억도 새롭다. 전주는 술을 주문하면 맛깔진 안주들이 덤으로 딸려나오는 걸 몰랐던 거다. 
출장 다니는 지방 도시에서 맛집 찾는 비결은  프로야구 심판, 기록원들과의 친분 덕분이었다. 어느 지역을 가도 싸고 맛있는 골목식당을 소개했다. 이 분들에게 맛집의 진리 하나를 배웠다. "값 비싸고 맛있는 건 당연한거지. 싸고 맛있어야 진짜인거야." 
맛집의 대가였던 그 형님들도 이제 세상을 뜨거나 팔순이 넘으셨다. 발품을 팔아 맛집을 찾던 세대의 마지막을 보는 것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기자는 검색과 발품의 중간쯤 되려나. 와중에 TV 맛집 프로들을 즐겨보고 한창 찾아다녔던 세대이기도 하다.
SBS '골목식당' 캡처
맛집 블로그 검색에는 나름 철칙이 생겼다. 일단 제목에서 'OOO맛집, XX맛집'을 반복해서 쓰면 1차 거른다. 1차 통과 후 블로그로 들어가서 "안녕하세요 YY분들" 등의 거창한 인삿말이 길게 나오면 바로 빠져나온다. 3차 관문은 식당 상호부터 주위 경관, 그리고 좌석배치까지, 음식도 나오기 전에 빼곡히 사진을 붙였을 때 들기 시작하는 의아함이다. 도대체 밥은 언제 묵노?
맛집 블로그의 진정성은 블로거의 스토리를 살피는 게 우선이다. 블로그 전체를 스캔하면 대충 견적이 나온다. 진짜 일상의 기록이고 정보의 전달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를 담은건지. 자신의 이름과 스토리를 앞세운 블로거들은 적어도 거짓을 말하지는 않는듯 하다. 
TV 맛집도 비슷하다. 오래 전 어느 프로에서는 매운탕 주문 들어가자 식당 주변 강으로 고기 잡으러 가는 주인의 모습을 본적이 있다. 연출도 이쯤되면 신의 경지인가 허당의 달인인가. 이런저런 과잉 연출의 TV 맛집 프로에 데인 후로, TV 출연 입간판을 세우고 온 가게에 도배한 식당은 발걸음을 피하고 있다.
그래도 요즘 TV 맛집 소개의 수준은 상당히 높아진 듯해서 다행이다. 몇몇 인기 프로의 경우 순례와 탐방 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백종원처럼 자신의 이름을 딴 맛집 프로 MC는 시청자들의 직접 시식으로  2차 검증을 받는 셈이다. 얼마전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백종원 프로 출연으로 유명해진 어느 돈까스 식당을 갈까 했다. 민박집 주인에게 위치를 물었더니 손사래를 치고 말린다. "밤새 줄서서 기다리다 쓰러지지 말라"는 얘기였다.  깔끔히 포기했지만 기분은 상큼했다. 그래도 믿고 갈만한 TV 맛집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안도감에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mcgwir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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