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최초로 지난달 19일 한국에서 가장 먼저 개봉한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감독 저스틴 린)가 순항 중이다. 개봉 2주 만에 한국, 대만, 러시아, 중국 등에서 약 2억 달러의 글로벌 수익을 돌파했다. 국내에서는 2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대중적·상업적 재미를 갖춘 덕분이겠지만 미증유의 극장 위기 속에서 발휘한 모험정신이 통했기 때문이리라.
스케일이 큰 블록버스터 영화라 코로나19의 위협 속에 극장 개봉을 결정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을 터. 그러나 올해는 우물쭈물하지 않았고, 결단을 명확히 함으로써 볼 만한 영화는 여전히 극장 관객들에게 통한다는 공식을 강하게 인식시켰다.
‘분노의 질주9’이 흥행하는 데 시리즈의 탄탄한 팬덤도 작용했겠으나, 무엇보다 그들의 과감한 결정에 국내 관객들이 기대에 차 극장행(行)을 결정한 부분은 무시할 수 없다. 복합적인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활용해 위기 속에도 단기간 내에 좋은 성과를 낸 것은 놀랍다.
이같은 ‘분노의 질주’의 전광석화 같은 대응 속에, 유일하게 뒤처진 분야는 지난해부터 극장 개봉을 미뤄온 한국 상업영화들이다. 일단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 개봉을 강행했다가 처절하게 참패를 맛볼 수 있다는 우려와 걱정은 이해가 간다.
지난 2013년부터 2019년까지 햇수로 7년간 ‘연간 2억 관객’이 들다가 코로나 여파로 2020년 5952만 4093명(영진위 제공)의 관객수를 나타냈다. 전년(2억 2667만 8777명)에 비해 약 1/4 수준으로 하락한 수치. ‘2.5단계 거리두기’와 ‘오후 9시 제한’으로 극장 관객이 절대적으로 감소한 이유가 크다.
그러나 투자배급제작사들이 개봉일을 재검토해 볼 콘텐츠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창고 속 재고로 쌓인 한국 영화들이 빛을 보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 보내는 모습은 아쉬울 따름이다.
“극장을 살리자”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를 외치는 국내 영화인들이 막상 자신이 볼 손해가 두려워 개봉을 망설이고 있는 모습은 오히려 극장가를 살리는 데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 아니었을까.

코로나로 인해 관객이 극장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개봉을 미룬 사태는, 되레 관객들이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린 결과로 이어졌다. 신작 개봉의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국영화에 대한 국내 관객들의 관심이 지속될 텐데 꽁꽁 쟁여둔 영화에 관심을 가질 리 만무하다. 재고로 쌓인 영화가 많기 때문에 신규 프로젝트의 진행도 쉬울 리 없다.
드문드문 나온 상업영화들이 30만~40만 전후의 관객을 동원하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조금 더 과감한 결단이 없다면 개선의 과감한 돌파구를 열기 어렵고 표류를 거듭할 수밖에 없을 터다. 무엇보다 기대치 이하의 재미로는 이제 관객의 선택을 받기도 어렵게 됐다.
침체된 극장 산업은 양극화를 부추길 것이며 앞으로 극장에서 볼 영화와 OTT에서 감상할 영화의 구분이 더욱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분노의 질주9’에 이어 오는 7월에는 ‘블랙 위도우’(감독 케이트 쇼트랜드)의 흥행이 예상되는 가운데 한국 영화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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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