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소녀가장, 간첩신고도 받았다” ‘포크거장’ 양희은 고백에 유희열도 “결손가정 위로받았다” [어저께TV]
OSEN 김수형 기자
발행 2021.06.25 06: 55

‘대화의 희열3’에서 양희은이 과거 소녀가장이었던 아픔과 함께 간첩으로 몰린 일화로 놀라움을 안겼다.
24일 방송된 KBS 2TV 예능 ‘대화의 희열 시즌3’에서 가수 양희은이 출연했다. 
이날 MC들은 “7~80년대 청년 문화의 산증인, 한국 포크음악의 전설”이라며 거장 양희은을 소개했다. 유희열은 “작년이 가수데뷔 50주년이셨다, 기념으로 곡 드리고 약속했다”면서 “ 약속을 하고 드렸는데 왜 발표 안 하시나”고 질문했다. 

이에 양희은은 “기다리고 기다려서 곡이 나왔는데, 가수를 조금 넣어 보내니, 가사가 딱 걸려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고 했고 모두 “왜 그러셨나, 백지로 드려야지”라며 아쉬워어했다.  
유희열은 “양희은 목소리는 문화재, 보존해야할 국보급 목소리”라고 했고, 양희은은 “엄마 음성이 이렇다, 성대는 딸들이 닮은 것 같다, 어릴 때 노래를 잘 하셨던 어머니, 아버님도 노래부르는걸 좋아하셨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실향민이셨던 아버지, 나, 이북 냄새 나지 않나?  아버지가 이북 사투리 쓰면서 노래하라고 했고, 그만 두라고 할 때까지 노래를 불렀다”고 회상했다.
어느날 육촌이 다니는 재동 국민학교를 방문했다는 그는 “나도 그 학교 나왔다, 재동을 빛낸 문화 예술인에 서태지, 배두나 등이 있더라”면서 “아무튼, 일곱살 때, 학교 교단에 서서 케세라세라를 불렀다”며 일화를 전했다. 
유희열은 “토크하다 당황한 적 있어, 원래 꿈이 코미디언이었다더라”고 하자 양희은은 “한 때 여자 구봉서였다, 학교에서도 책장 넘기는 소리 싫어, 수업 중간에 노래 좀 들으라고 말하고 노래했다, 지금도 전설처럼 내려오는 얘기”라고 에피소드를 전하기도 했다.  
또한 고등학생 때 라디오 방송국을 방문했다는 양희은은 “축제 때 음악을 구해야겠기 때문. 당시 라디오 PD가 친절했고, 이 일을 하고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재수해서 역사를 잘 알기위해 사학과를 갔다“고 했다. 
이어 양희은은 금지곡들을 언급, 특히 ‘상록수’에 대해서 “1,2넌 사라지는 노래가 있고, 10년, 30년, 50년 가는 노래가 있어,  노래에도 생명선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유희열은 “양희은은 김민기의 페르소나란 말이 있다”며 조심스럽게 언급, 그러면서 이에 반대한다고 했다. 양희은은 “노래의 어느 사람의 노래란 없다, 그 시대에 둘이 탄생시킨 시간의 곡들”이라고 했다. 양희은도 “노래는 되불러야 노래다”고 공감했다.  
양희은의 ‘아침이슬’이 금지곡이 된 이유를 언급했다.  양희은은 “지금도 몰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가사가 퇴폐라고 해서 금지됐다”면서 “오히려 히트의 원동력은 금지다, 금지를 시켰기 때문에 동아리에서 더 배워, 더 부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침이슬’ 금지시킨 사람 만난 적이 있다 과거 방송촬영차 시골을 방문했다, 한참 설거지를 하는데 누군가 오더니, 나보고 금지곡 시킨 사람이 본인이라고 했다”며 회상했다. 
그러면서 양희은은 “내가 만약 그런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금지를 안 시켰을 것 이 사람이 금지를 시키고 오히려 많은 젊은이들은 더 듣고 싶어지지 않았나, 그 사람은 역시나 왕재수였다”고 덧붙였다.  유희열은 “오히려 고마워해야하지 않나,사실 대히트의 일등공신”이라 했다. 
또한 양희은은 부모님 불화를 언급하며 “어머니가 잠깐 친정간 사이에 새 여자를 데리고 왔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이북에서 홀로 월남 후 군인이셨다, 새 엄마도 이북출신이라 동변상련이 있었나보다”면서 “결국 어머니가 못 들어오셨고 부모님이 이혼 절차를 밟았다”고 말했다.  
이에 유희열은 같은 아픔이 있다며 “8살 형과 가정법원가서 부모님 중 누구랑 살건지 물어,당시 그런 질문을 받는게 무서웠다”면서 “난 형이랑 살 거라 대답해, 형이 날 지켜줄 것 같았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양희은 선배가 우린 결손가정 출신이라고, 괜찮다고 했다”면서 “‘괜찮아 나도 그랬어’라는 한 마디가 그 누구보다 위로가 됐고 관계가 더 애틋해졌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어머니는 보증을 잘 못 선 데 이어, 어머니가 운영한 양장점도 화재가 나면서 악재가 연속으로 터졌다고 전했다. 양희은은 “집에 빨간딱지가 붙어 한 방에 길바닥 신세가 됐다, 이후 명동에 노래 품을 팔러 나갔다”고 떠올렸다.  
이에 유희열은 “우리 어머니도 명동 양장점에 다녀, 빚 보증을 잘 못서서 차압 딱지가 붙었다”면서 “밤마다 부모님 안계시다고 말하는게 주로하던 말, 조그마한 방에서 식구가 겨우 살았다, 신기할 정도로 고단했던 어린시절이 비슷하다”며 놀라워했다.
무엇보다 여고생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더욱 방황했다는 양희은은 “아버지 산소갔다가 누가 간첩신고도 해, 경찰서에 끌려가 신원조회했다”면서  “아버지 산소에 갔다왔다고 해도 안 믿어, 마침 경찰서장이 과거 아버지  부관이었다, 오해를 풀고 무사히 귀가했다”고 말했다. 양희은이 간첩으로 오해받은 황당한 사건이었다.  
/ssu0818@osen.co.kr
[사진] ‘대화의 희열3’ 캡쳐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