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세상을 떠난 지 12년이 됐다.
마이클 잭슨은 지난 2009년 6월 25일 LA 근교의 자택에서 심장 마비로 숨을 거뒀다. 향년 50세.
그의 급작스러운 죽음에 많은 이들은 충격을 받았다. 곧 사인에 관해서도 말이 많았는데 주치의가 마취제인 프로포폴을 과다 투여했다는 의혹이 일었고, 딸인 패리스 잭슨은 "아버지는 살해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2011년 주치의는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돼 법정에 섰고 과실 치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마이클 잭슨은 재키 잭슨, 티토 잭슨, 저메인 잭슨, 말론 잭슨과 함께 1964년 잭슨 마이브 막내로 가요계에 데뷔한 후 1971년 솔로 활동을 시작했고 1980년대 전 세계 음악 시장을 뒤흔들며 ‘팝의 황제’로 떠올랐다.
‘빗잇’, ‘빌리진’, ‘스릴러’, ‘아이 저스트 캔스탑 러빙유’, ‘배드’, ‘맨인더미러’, ‘더티다이아나’, ‘더 웨이 유 메이크미 필’, ‘블랙 오어 화이트’, ‘스크림’, ‘힐더월드’, ‘유아낫 얼론’, ‘아윌비 데어’, ‘댄져러스’, ‘러브 네버 펠트 소 굿’ 등 다수의 히트곡으로 전세계 음악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1982년 발표한 '스릴러'는 전 세계적인 공전의 히트를 쳤다. 그리고 그는 뮤지션을 넘어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군림했다.

아티스트로서는 늘 최고였지만 사생활 면에서는 각종 루머에 시다렸다.
고인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1994년 결혼했다가 2년 뒤 이혼했다. 둘 사이 아이는 없었고 2세를 원했던 마이클 잭슨은 곧바로 간호사 데비 로우와 재혼했다. 1997년과 1998년 장남 프린스와 딸 패리스를 낳았고 이듬해 10월 데비 로우와 갈라섰다. 2002년에는 대리모를 통해 프린스 마이클 잭슨 2세를 얻어 블랭킷이라는 이름을 줬다.
하지만 끊임없이 친부 논란이 터졌다. 큰 아들 프린스가 마이클 잭슨과 전혀 닮지 않았고 그가 피부과 전문의 아놀드 클라인과 데비 로우 사이에서 나온 혼외자라는 루머가 계속 돌았다.
또 흑인이었지만 백반증으로 피부가 하얗게 되면서 갖가지 루머에 시달려야 했다.
화려한 명성만큼 굴곡진 인생을 살았지만, 그가 별 중의 별이자 '전설'이란 것에 의심을 갖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12주기를 맞이한 올해도 역시 마이클 잭슨을 애도하는 메시지들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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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소니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