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 정말 한국 아니고 외국에서 태어났으면 정말 다양한 역할을 하는 배우였을 거야"
영원한 '일용엄니', 배우 김수미가 '전원일기2021'에서 방송사 최강의 '언더독'이자 '전원일기' 속 최고의 히로인으로 호평받았다.
지난 2일 오후 방송된 MBC '다큐플렉스-전원일기 2021(약칭 전원일기2021)'에서는 배우 김수미, 박은수, 김혜정이 등장했다.
김수미, 박은수, 김혜정은 국내 최장수 드라마로 사랑받았던 MBC '전원일기'에서 극 중 일용이네 식구들로 활약했다. 김수미는 일용의 엄마, 박은수는 그 아들 일용이, 김혜정은 일용이 맞은 어린 아내를 연기했다. 그 중에서도 김수미는 일용 어머니를 줄인 "일용 엄니"로 불리며 드라마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전원일기'에서 일용이네는 주인공 김 회장 댁 못지않게 사랑받은 주연에 버금가는 조연들이었다. 김 회장 댁이 화목한 농촌 대가족의 전형이었다면, 일용이네는 한부모 가정이자 소작농의 어려움이 투영된 평범한 소시민이었기 때문. 극 중 일용이네는 돼지를 키우면 돼지 값이 폭락하고, 상추를 키우면 하우스에 불이 나고, 고추를 키우면 폭풍우가 휘몰아쳐 농사를 망치는 기구한 사연을 갖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김수미가 연기한 일용 엄마는 홀어머니로 어렵게 아들을 키우며 힘들게 정착한 삶을 사는 인물. 김수미는 특유의 거센 억양과 해학적인 웃음, 회한 어린 눈물로 일용 엄마 역할을 소화했다. 이에 힘입어 '전원일기' 200회 특집은 일용 엄마의 환갑 잔치로 꾸며지기도 한 터. 김수미는 "사람들이 진짜로 그때 내가 환갑인 줄 알더라. 팬들이 환갑 선물로 금반지도 보내줬다. '내가 환갑 때 받은 건데 안 입었다'라며 두루마기를 보내주기도 했다. 시골 장터에 한번 떴다 하면 모든 할머니들이 돈도 안 받고 콩이고 나물이고 다 갖다 주고 당신들 친구로 아시더라"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동 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듯이 김수미 배우 인생도 '전원일기’를 만나기 전까지 그랬다. 올해로 데뷔 51년, '일용엄니’는 김수미 인생 가장 큰 선물이었다. '전원일기' 시절 동료 배우들 먹을 음식을 손수 마련했던 김수미. 작품과 역할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처음 제안 받았을 때만 해도 내키지 않았다고. 그는 "이연헌 선생님(PD)이 밑도 끝도 없이 '너 연습 나와’라고 했다. 연습실에 아무도 안오고 박은수 선배 있었다. '우리 부부인가봐요’라고 했더니 '네가 내 엄마야’라고 하더라. 거울을 보다가 이렇게 서구적으로 예쁜데 어떻게 시골 할머니를 하나 싶었다. 그런데 그때 일이 고팠다"라고 털어놨다.
실제 MBC 3기 공채 탤런트였던 김수미지만 이국적인 외모는 눈을 끌었지만 연기를 계속할지 고민했다. 그런 그에게 시골 할머니 역할이 들어온 것. 김수미는 "이왕 할거면 한번, 정말 깜짝 놀라게 해보자는 오기가 생기더라"라고 했다. 그는 "그 길로 연신내 시장에 가서 할머니들 하루종일 봤다. 꼭 할머니들은 중얼중얼 잡수고 주머니가 고무줄 안에 있었다. 그런 할머니가 우리 시골에 있었다. 그 목소리가 딱 생각이 났다"라고 했다.
그렇게 완성된 일용 엄마의 디테일. 당시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캐릭터였다. 김수미는 "이연헌 선생님이 '너 이 목소리 어디서 났냐’라고 했다. '이거야, 대사 막 해봐’라고 했다. 그때 내가 감을 잡았다"라고 했다. '전원일기'를 최초 기획한 이연헌 PD는 "'전원일기' 첫 회 나가고 시선 끈 게 김수미였다"라며 "각자의 운명 같은 것"이라고 평했다.

이제는 백발의 노인 분장이 필요 없는 나이지만 당시엔 팽팽한 얼굴이 너무 젊어보일까 걱정했다고. 김수미는 "분장이 1시간 넘게 걸렸다. 풋풋한 얼굴에 주름 그리고 가발도 붙였다. 그때는 열악해서 나중에는 석유로 지우고, 이가 까맣게 빠진게 아스팔트 도료인 타르 같은 왁스로 붙인거였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김수미의 오기와 노력이 만든 일용엄마는 양촌리 트러블 메이커이자 분위기 메이커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이후 김혜자에게도 밀리지 않는 연기를 선보이며 김수미는 배우로서 존재감을 세웠다.
김혜자는 "김수미 정말 좋은 배우다. 걔 정말 한국 아니고 외국에서 태어났으면 정말 다양한 역할을 하는 배우였을 거다. 어쩔 땐 불쌍했다. 너무 다양한 걸 갖고 있는데 그걸 표현해줄 역할이 일용엄마 뿐이었다. 나이 80세 돼도 연기할 수 있다. 치매만 안 걸리면"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 정도로 일용 엄마는 한국적 갈등요소가 고스란히 담긴 이들의 삶은 방송사에 남은 '언더독’의 반란으로 사랑받았다. '전원일기' 방송 6년 차인 1986년도, 사상 최초로 극 주연이 아닌 김수미에게 연기 대상의 영광이 돌아갔을 정도. 그 전에도, 후에도 유례 없는 일이었다. 이에 당시 '전원일기'를 연출했던 김한영 PD는 "우리나라 드라마 캐릭터 중 가장 성공한 캐릭터다. 김수미 씨는 아직도 그거로 먹고 산다"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전원일기' 종영 20여 년. 현재 김수미의 일용 엄마 캐릭터는 예능의 한 장르로 진화했다. 따뜻한 한 끼 식사와 함께 전해지는 거침 없는 조언, 일용엄마의 통찰이 지금도 어필한다는 방증이다.
김수미는 "요즘 예능을 돌았다. 다시 드라마로 돌아갈 것"이라며 차기작을 기대하게 했다. 70대 중반에 둘째 가라면 서러운 인지도에도 드라마와 예능을 오가는 김수미. 그는 "일을 줄이지 않고 하는 건, 일단 일터에 나가면 긴장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내 마지막 삶의 끈이다. 이걸 놓는 순간 나도 휙 갈 것 같다"라며 웃었다. / monamie@osen.co.kr
[사진] MBC 방송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