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리 코다에게 세계랭킹 1위를 내준 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고진영(26)이 7개월만에 LPGA(미국여자프로골프) 투어에서 우승한 후 중계진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하지만 고진영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골프팬은 없어 보인다. 코다에게 랭킹 1위를 내준 첫 주에 우승을 해 버렸기 때문이다.
고진영은 한국시간 5일 오전, 미국 텍사스주 더콜로니 ‘올드 아메리칸 골프클럽(파71, 6475야드)’에서 최종 라운드를 치른 볼런티어스 오브 아메리카 클래식(총상금 150만 달러=약 16억 9,000만 원, 우승 상금 22만 5,000 달러=약 2억 5,000만원)에서 1타차 짜릿한 우승을 차지했다.

최종라운드에서 버디 4개, 보기 2개로 2타를 줄여 최종합계 16언더파 268타(63-70-66-69)의 성적표를 제출했다. 2위 마틸라 카스트렌(핀란드)가 마지막까지 고진영을 위협하며 15언더파로 단독 2위가 됐다.
고진영이 LPGA 투어에서 마지막으로 우승한 것은 작년 12월의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이었다. 7개월만에 승수를 추가해 개인통산 8승이 됐고, 2021시즌에서는 첫 번째 우승이다.
고진영은 이번 대회에서 굉장한 체력전을 펼쳤다. 날씨가 고르지 못한 탓에 3라운드까지의 일정이 제 멋대로였다. 하필 고진영 조에서 경기가 끊기기 일쑤였고, 이튿날 잔여경기를 치르는 고난이 반복됐다. 3라운드를 치른 4일엔 2라운드 잔여경기 14개홀을 먼저 돌고 3라운드 18홀을 도는, 하루 32개홀의 강행군을 펼쳐야 했다.
이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5일 최종 라운드에 나선 고진영은 침착했다. 챔피언조에 편성된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경기력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결정적인 상황에서 치명상을 피해가는 영리한 경기 운영을 했다. 12번홀 이후부터는 버디도 없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강한 집중력으로 타수를 지켰다.
우승을 다툰 동반 플레이어들은 6월의 LPGA 메디힐 챔피언십 우승자인 마틸다 카스트렌과 독일의 신예 에스더 헨젤라이트였다. 셋은 13번홀까지 고진영이 16언더파, 카스트렌이 15언더파, 헨젤라이트가 14언더파를 달리며 1타차 팽팽한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경험이 많지 않은 헨젤라이트가 파4 14번홀에서 먼저 흔들렸다. 드라이버 티샷이 우측으로 휘더니 키가 낮은 전나무 아래로 공이 들어가 샷을 할 수가 없는 지경에 빠졌다. 고진영의 티샷도 우측으로 휘었는데, 다행히 나무를 피해 샷 자체를 방해하지는 않았다. 이 홀에서 헨젤라이트는 더블보기를 적어내며 전의를 상실했다.
카스트렌과는 파4 15번홀에서 운명이 갈렸다.
고진영은 드라이버 티샷이 벙커 옆 스탠스가 좋지 않은 지점에 떨어졌지만 환상적인 세컨드샷으로 버디까지 노릴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런데 1미터 남짓한 위치에서 굴린 공이 홀컵 근처에서 경사면을 타고 일찍 휘는 바람에 결정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카스트렌은 고진영보다 더 좋은 위치에서 세컨드샷을 했지만 거리 계산이 잘못됐다. 홀컵과 한참 떨어진 곳에서 버디 퍼트를 시도했지만 공은 홀컵 50cm근처에서 멈췄다. 파세이브는 문제없는 거리였다. 그런데 이 공도 홀컵 근처에서 갑자기 방향을 확 바꿨다. 어이없는 파세이브 실수가 나와 오히려 고진영의 부담을 덜었다. 카스트렌은 파5 17번홀에서 버디를 잡아 다시 고진영을 추격했지만 18번홀을 파로 마무리하면서 그대로 2위에 만족했다.
고진영은 우승 후 인터뷰에서 “궂은 날씨에도 열렬히 응원해준 한국 팬들에게 감사한다”고 인사했다.
이번 볼런티어스 오브 아메리카 클래식에는 지난 주 메이저대회인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을 치른 여파로 톱클래스 선수들이 대거 대회에 나서지 않은 가운데 치러졌다. 한국 선수들 중에서는 이정은이 11언더파 7위, 김효주 김민지가 10언더파 공동 8위에 올랐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