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호 "요즘 잘나가? 늘 마지막 작품이라 생각"…35년 빛발한 연륜[인터뷰 종합]
OSEN 김보라 기자
발행 2021.07.28 12: 15

 “이렇게 큰 작품에 불려주신 것 자체가 너무 감사했다.”
배우 허준호(58)가 영화 ‘모가디슈’(감독 류승완)에서 체제와 이념을 뛰어넘는 인간애를 보여줬다. 그가 연기한 북한 대사 림용수는 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 20년 넘게 거주한 외교관으로, 참사관 태준기(구교환 분)와 북한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의견만 고집하지 않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존중하는 모습은 허준호의 단단한 연륜 덕분에 쉽게 지워지지 않을 인상을 남긴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시리즈, ‘결백’(2020) ‘국가부도의 날’(2018)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 ‘이끼’(2010) ’실미도’(2003) 등의 영화에서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준 허준호는 이번 영화에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발휘하며 관객과의 신뢰를 쌓는 일에 성공했다.  

28일 진행된 화상 인터뷰에서 영화 ‘모가디슈’의 개봉 소감을 묻는 질문에 “솔직히 떨린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극장)개봉을 하니 기분이 좋다”라며 이같이 대답했다.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모가디슈’(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 덱스터스튜디오 외유내강)는 이날 오전부터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이 영화는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를 배경으로, 내전으로 인해 고립된 사람들의 생사를 건 탈출기를 그린 액션 드라마를 표방한다. 허준호는 주 소말리아 북한대사 림용수로 분했다.
허준호는 ‘모가디슈’에 출연을 결정한 과정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류 감독님과 10여년 만에 만나 반가웠다. 같이 맛있는 식당에 갔는데 당시 북한 대사 역할을 제안해 주셨다. 길게 고민하지 않고 출연을 결정해 소속사에 혼이 나기도 했다.(웃음)”라고 출연을 결정한 과정을 전했다. ‘모가디슈’는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 2019년 10월 아프리카 모코로에서 첫 촬영을 시작했다. 4개월간의 촬영을 거쳐 지난해 2월 중순께 모든 촬영을 마치고 귀국했다. 
류승완 감독에 대해 허준호는 “속된 말로 미(美)쳤다. 미쳤다는 건 물론 좋은 의미”라며 “촬영 현장에 가 보니 제가 제일 큰형이더라. 이 사람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신중하게 임했다”고 전했다.
“인물에 접근하려고 노력했다”는 허준호는 “제가 아이들을 좋아하긴 하지만 영화에 나온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가깝게 지냈다. 연기를 위해서라지만, 진짜 아이들을 좋아한다. 북한 대사관 직원들 역할을 맡은 배우들과도 개인적인 얘기를 하며 친하게 지냈다”라고 캐릭터에 빠져 보낸 4개월을 돌아봤다.
허준호는 지금껏 만난 작품들 중 ‘모가디슈’의 촬영장이 가장 인상깊었다고 했다. “제가 해외 촬영은 많이 한 편이다. 원래 사진은 잘 안 찍는 편인데 당시엔 셀카 사진도 찍고 개인 사진을 많이 찍어뒀다. 그렇게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그런 환경을 만나질 못 해서였다”며 “‘모가디슈’ 현장은 준비가 잘 돼 있더라. 모든 프로덕션이 촬영을 잘 할 수 있게끔, 그래서 내가 못하면 미안할 정도로 준비를 잘 해놓았다. 저는 4개월 동안 그냥 즐겼다. 꿈이 이뤄진 거 같다.(웃음)”라는 감회를 밝혔다.
“누구 하나 허투루 하는 사람이 없었다. 막내 스태프부터 제작진, 그리고 막내 배우들까지 모두가 열심히 했다. 사실 며칠 지나면 흐트러지기도 하는데 이 팀은 그렇지 않더라. 열정적이고 진지한 현장은 처음이라 너무 좋았다. 그래서 대본 볼 시간도 더 많았다. 보통 해외에서 2~3주 지나면 향수병이 생겨서 사고가 나기도 하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4개월 동안 단 한 번의 사고가 없었다. 현지 스태프와 의견이 안 맞거나 의사소통이 안 돼 어떨 땐 싸우기도 하는데, ‘모가디슈’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물론 내가 모르는 상황이 벌어졌을 수도 있겠으나, 전혀 겪지 못했다. 내가 연기를 못하면 미안할 정도로 꿈에 그리던 현장이었다.”
모로코에서 4개월 동안 함께 지내며 배우들의 우애가 한층 더 깊어졌을 터. “숙소에 있다 보면 김윤석에게 전화가 온다. 이어 조인성도 방에 들어와서 함께 커피를 마셨고 작품에 대해 토론했다. 굉장히 좋은 모습이다. 술 한 잔을 하면서도 흐트러지는 게 아니라 절제된 모습이었다. 김윤석, 조인성, 정만식, 김재화 등의 배우들이 토의하는 모습을 옆에서 봤는데 너무 재밌었다”라고 설명했다.  
‘모가디슈’는 허준호를 비롯해 김윤석, 조인성, 구교환, 김소진, 정만식, 김재화, 박경혜 등 개성과 매력을 겸비한 배우들이 총 출동했다. “김윤석을 보며 ‘대배우다’ 싶었다. 제가 ‘김윤석을 봐서 너무 좋다’라고 직접 말했을 정도였다”며 “조인성은 어릴 때 봐서 아기로만 봤는데 영화 ‘더 킹'을 보고 나서 ‘이제 깊은 배우가 됐구나’ 싶더라. 어린 조인성에서 이제는 그릇이 깊어진 조인성이 너무 멋있었다. 보기만 해도 좋다”라고 칭찬했다. 
북한대사 림용수 캐릭터를 소화한 허준호는 “시나리오에 나온대로 갔지만 제가 바꾼 것도 있다”며 “그가 (소말리아)안에 있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고민했다. 20년 가깝게 해외 생활을 하면서 (북한 체제에서 벗어나) 생각이 깨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태준기는 밖으로 나온 지 얼마 안 돼 국가에 충성한 인물로 설정했다”라고 북한 출신 캐릭터들을 연기로 표현한 과정을 전했다.
림용수에 대해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에서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생활하면서 점점 여유로워진 듯했다. 나이를 먹다 보면 급한 게 조금씩 없어지더라. 저의 그런 모습을 반영해 상상을 하며 표현했다”라고 덧붙였다. 
1986년 영화 ‘청 블루 스케치’로 데뷔해 어느덧 35년째 연기 생활을 하고 있는 허준호. 물론 중간에 어려움도 있었고 긴 휴식기를 갖기도 했지만 여전히 배우 허준호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이레 롱런뿐만 아니라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막중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릴 땐 이런 생각을 안 했지만 이제는 한 작품 한 작품이 소중하다. 계속 저를 써주셔서 감사하다. 그래서 현장이 점점 재미있다. 저는 늘 작품에 임할 때면 ‘이게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연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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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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