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엔 일이 끊겼으면, 그 만큼 재심 사건이 안 남았으면”
‘대화의 희열3’에서 박준영 변호사가 월세살이를 고백한 가운데, 유희열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정의를 지켜나가고 있는 그를 위한 응원의 말을 전했다.
29일 방송된 KBS2TV 예능 ‘대화의 희열 시즌3’에서 박준영 변호사와 마지막을 함께 했다.
이날 유희열은 “어느새 마지막 회”라며 “시즌3 하면서 많은 순간들이 있었다”며 남다른 감회를 전했다. 그러면서 마지막 손님에 대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묻자 모두 “권상우가 떠올라,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은 인생을 사는 남자”라면서 “변호사인데 파산한 변호사, 돈보다 더 중요한 뭔가를 위해 사는 분”이라 말했다. 법조계의 아웃사이더라 불릴 만큼 정의를 위해 달리는 분이라 입을 모았다.
유희열은 “사실 이 분과 예전에 만난 적 있어, 상상한 이미지보다 그의 욕망이 어마어마하다”면서 “그리고 정말 귀엽다”며 마지막 게스트를 소개했다. 바로 유일무이한 재심전문 박준영 변호사였다.
유희열은 “‘재심’과 ‘날아라 개천용’에서 정우와 권상우의 롤모델이 된 사람”이라고 소개, 실제 그가 개천 용이었는지 물었다. 박준영은 작은 섬 출신이라면서 노화도 장의사 집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공부를 핑계삼아 광주로 도피했다고 했다. 방황을 많이 했던 시기”라면서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자퇴, 그 길로 가출했다”고 했다. 인천과 서울을 떠돌이 생활을 했다고. 박준영은 “봉제공장, 프레스 공장에서 일하며 숙박을 해결, 나이트클럽 웨이터도 해 , 꿈도 없던 시절이었다”면서 “어느날 아버지가 고등학교 졸업장이라도 따달라 부탁해 결국 시골로 복귀했다”며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법연수원 생활기록부를 보니 고 3때 준법성이 어긋난다고 평가해, 무기징역 변호하는 입장에서 학교다닐 때 무기 정학 받았다. 무기의 인연인가 싶다”며 농담을 전하기도 했다.

가출 당시에 대해 회상한 그는 “섬에 살다보니 반드시 배를 타야해, 배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뜻밖에 가서 굶지말라고 용돈을 주더라”면서 “아버지가 아직도 내게 관심과 사랑을 주는구나 짧은 순간 느꼈다”고 떠올렸다.
그렇게 꿈도 법도 모르던 문제아에서 고졸신화를 이룬 박준영. 그가 변호사가 된 계기에 대해 묻자 ‘난 군대에서 정신차린 케이스”라 답했다. 그러면서 “대대장님 운전병시절 저런 사람처럼 살고싶다고 생각했다. 이후 사법고시를 생각했다”며 노력 끝에 5년 만에 합격헸다고 했다.
20년 후 무료 법률 변호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으나 초임 변호사로 경쟁력이 없었다고 했다. 박준영은 “사건, 사고 안 들어오면 국선변호를 하자고 결심했다”며 이후 국선변호의 재벌이라 불릴 만큼 수많은 변호를 맡았다고 했다. 유희열은 “국선변호로 얼만큼 버셨냐”며 조심스럽게 묻자 그는 “적절히 타협해서 한 달에 70번? 수임료는 한 건당 20~30만원”이라 대답했고 유희열은 “수임료는 낮지만 70건은 꽤 크다, 하루도 쉬지않고 일한 것”이라며 놀라워했다.
무엇보다 박준영 변호사에게 있어 ‘수원 노숙소녀 사망사건’을 빼놓을 수 없었다. 수원 노숙 청소년 사망 사건'은 수원의 한 고등학교에서 숨진 채 발견된 소녀에 노숙인 2명과 가출 청소년 5명이 범인으로 지목돼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사건이다.
박준영은 "내 인생을 다르게 해줄 사건이라 생각했다”면서 “정의감 없었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정의감으로 달려들었으면 최선의 변호를 했을 것이라고.
박준영은 “노력은 했지만 최선의 변호를 못해 1심에서 유죄를 받아 안위했다. 기존 검찰 수사내용을 지적해야하는데 수원지검에서 벌어진 사건을 사건왜곡이라 말하기 부담스러웠다”면서 “조작과 왜곡이 아닌 다른 문제점을 부각해, 굳이 적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며 자신을 돌아봤다.

하지만 유죄에 충격을 받았다는 그는 “2심,3심 관여해야겠다 생각해, 그때서야 아이들이 눈에 보이더라, 선택의 여지가 없는 아이들이 슬퍼보였다”면서 “나만 바라볼 아이들을 위해 내 마음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해 그 후 과감하게 변론했다”며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바꾼 계기가 됐다고 솔직하게 전했다.
과거 비행 청소년이었던 그는 “가출 청소년들을 보며 과거 내 청소년기 기억이 떠오른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국선 재벌'에서 재심 전문 변호사가 된 박준영은 "한계는 있지만, 최선을 다해 변호하면 아이들이 세상에 대한 신뢰를 경험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게 아이들의 감흥으로 이어진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지 않을까"라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사건 공론화에 대한 얘기도 조심스럽게 나눴다. 박준영은 “자극적으로 공론화된 것은 내 욕심, 언론에서 관심가지려 할 때 국가배상에 유리할 수 있다고 피해자들에게 말했다”면서 “사실 핑계”라며 솔직하게 말했다. 특히 약촌오거리 사건에 대해 떠올린 그는 “당시 형사 내가 집요하게 추긍하니 결국 자살해, 정의로움에 대한 내 욕심이었다”면서 “재심에 대해서 더 복잡하게 생각해야헤, 얽혀있는 이해관계를 다올려놓고 생각해야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현재 수사방식에 대해 오해가 되는 건 대단히 경계, 그래선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재심을 개시해서 공론화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재수사를 진행하고 과거에 과오를 끌어내는 경찰도 있다 ,과거의 잘못을바로 잡기 위해 많은 노력이 있는 것이 부각되길 바란다”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의를 위해 싸우는 분들 많다는 것도 알려지길 바랐다.
이때, 유희열은 그가 2016년 파산위기까지 놓인 상황을 언급했다.박준영은 “임대료가 많이 밀려, 마이너스 통장까지 한계가 왔다”면서 재신 사건들 모두 무료로 변호했기에 들어오는 수입이 없었다고 했다. 박준영은 “집중해서 하면 성과가 나오고, 그 성과로 누군가 날 도와줄 것이라 막연한 생각을했다, 독지가라 생각했다”면서 별다른 대책없이 막연한 생각을 했다고 했다. 무료 변호와 순수한 기대로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박준영은 “결국 좋은 세상을 향한 세상의 끝이 좀 서글펐고, 이에 대해 개인 SNS에 심경을 적어, 나중에 내가 올린 어려운 상황의 글이 우연히 기사화됐다”면서 “작은 불씨가 큰 바람이 됐고, 갑자기 검색어가 올라, 스토리 펀딩을 시작했다”면서 인생을 걸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됐다고 전했다.
박준영은 “처음 펀딩액이 3천 만원이었는데, 마이너스 통장 1억이 공익활동으로 쓴 것이 맞으니까 주변에서 1억을 목표로 하라더라, 3일만에 모였고, 어느새 5억 6천만원까지 됐다”고 회상했다. 박준영은 “잠이 안 와, 밥을 안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더라, 누군가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힘이 이렇게 크더라”며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유희열은 현재 금전적인 상황에 대해 조심스레 묻자 그는 “2억원 가량 내게 주어져, 그 돈이 일부 채무를 해결하긴 했지만 여전히 공익활동을 이어가려 한다”면서 “경제적으로 상황이 썩 좋진 않다”고 했다. 살고 있는 집도 월세라 나가야하는 상황이라고. 보증금 1억에 60만원이던 월세도 120만원으로 올랐다고 전해 안타까움을 안겼다.
유희열은 “월세와 보증금 상황도 본의아니게 다 알아 버렸다”고 하며 걱정, 그럼에도 박준영은 “좋은 선례로 남고 싶다, 이 가치를 훼손하고 싶어, 지속 가능성에 대해 더 고민해야한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전했다.
방송말미 유희열은 “10년 뒤엔 일이 끊겼으면 한다, 그 만큼 재심 사건이 안 남았으면한다”면서 “이제 대기업의 메인 변호사가 되어 맡으시길”이라고 말할 정도로, 앞으로 재심 변호사가 필요없는 억울한 세상이 되지 않길, 그로 인해 박준영 변호사도 월세 걱정없이 살수 있길, 모든 이들의 앞날을 응원했다.
이 가운데 '대화의 희열'은 시즌3 종영을 알렸다.
/ssu08185@osen.co.kr
[사진] ‘대화의 희열3’ 방송화면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