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20년간 세계농구를 호령했던 레전드들이 동시에 코트를 떠났다.
미국은 3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아레나에서 개최된 ‘2020 도쿄올림픽 남자농구 8강전’에서 스페인을 95-81로 꺾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이어진 또 다른 8강전에서 호주는 아르헨티나를 97-59로 제압했다. 4강은 미국 대 프랑스, 슬로베니아 대 호주의 대진이다.
경기 후 승자가 아닌 패자에게 관심이 집중됐다. 아르헨티나는 경기종료 51.4초를 남기고 56-92로 크게 뒤진 상황에서 노장 루이스 스콜라(41)를 벤치로 불러들였다. 불혹이 훌쩍 넘은 노장의 국가대표 마지막 경기였다. 스콜라는 25분을 뛰면서 7점, 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동료들은 그를 기립박수로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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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호주선수들까지 코트에 도열해 코트를 떠나는 영웅을 위해 기립박수를 보냈다. 갑자기 감정이 북받친 스콜라는 뜨거운 눈물을 보였다. 박수는 무려 50초 정도 지속됐다. 스콜라는 다시 일어나 손을 흔들며 답례했다. 지난 20년간 코트를 지배했던 영웅의 퇴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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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경기를 마친 스콜라는 “그냥 열심히 뛰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난 이제 41살이다. 더 이상 뛰지 않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수준의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공식은퇴를 선언했다.
스콜라의 은퇴를 축하해준 호주의 패티 밀스는 “기립박수는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였다. 그를 위한 시간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그가 얼마나 위대한 선수인지 다들 안다. 또 그는 좋은 사람이다. 다음 인생도 잘 살아가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참 격세지감이다. 전성기시절 스콜라는 찰랑거리는 장발을 트레이드마크로 골밑을 지배했다. 운동능력은 평범했지만 전투적인 몸싸움과 넘치는 파워로 상대를 제압했다. 경력도 화려하다. 스콜라가 곧 아르헨티나 농구의 역사다. 2002년 세계선수권 은메달,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 2008년 베이징올림픽 동메달, 2019 농구월드컵 은메달을 땄다. 40세의 나이에 2019 농구월드컵 베스트5에도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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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스콜라는 미국킬러였다. 2002년 세계선수권 예선에서 아르헨티나는 미국을 87-80으로 격파했다. 결국 미국은 충격적인 6위에 그친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준결승에서 아르헨티나는 미국을 다시 한 번 89-81로 격침한다. 금메달은 아르헨티나가 땄고, 미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동메달에 그쳤다.
스페인의 기둥 파우 가솔과 동생 마크 가솔도 같은 날 미국전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 유니폼을 벗었다. 파우 가솔도 스페인의 황금세대를 이끈 주역이었다. 세계농구의 급부상과 미국농구 몰락의 중심에 가솔 형제와 스콜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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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NBA선수 출전 후 2004년 첫 올림픽 금메달 획득에 실패한 미국은 2008년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가 주축이 된 ‘리딤팀’을 출전시킨다. 끝판대장 가솔을 이기기 위함이었다. 가솔은 끝까지 미국을 긴장시켰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결승전은 아직도 명승부로 회자된다. 코비의 막판 대활약으로 미국이 118-107로 이겨 금메달을 탈환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미국의 결승전 상대도 스페인이었다. 스페인은 2016 리우올림픽에서도 동메달을 따며 세계농구의 강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없다. 20년 가까이 세계농구를 호령했던 가솔과 스콜라도 이제 백발이 성성한 노장이 됐다. 공교롭게 두 선수가 오랫동안 코트를 지키면서 그들을 능가하는 인재가 나오지 않았다. 세대교체에 실패한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은 예전만큼 강한 전력을 유지하지 못하면서 올림픽 8강 탈락에 그치고 말았다. 노장들도 이제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줄 때가 됐다.
FIBA(국제농구연맹)는 4일 스콜라와 가솔의 일러스트를 올리며 “한 시대가 끝났다”는 메시지를 알렸다. 14만 명이 넘는 팬들이 좋아요를 누르며 레전드들의 퇴장에 슬퍼했다.

은퇴전 후 가솔은 “이것이 내 마지막 국제무대 경기다. 가족들과 상의해서 클럽에서는 더 뛸지 아니면 인생에서 새로운 파트로 넘어갈지 결정하겠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역시 국가대표에서 물러난 동생 마크 가솔은 “이제 젊은 선수들이 뛰어야 할 시기다. 노장들은 물러난다”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 jasonseo34@osen.co.kr
[사진] 2021/08/04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