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무대 데뷔전서 '돌풍' 황봉주, "PBA? 해외선수와 겨루고 싶어"[인터뷰]
OSEN 강필주 기자
발행 2021.08.09 06: 00

'실핀'을 꽂은 채 세계 무대에 데뷔, 거센 돌풍을 일으킨 황봉주(38, 경남)가 대한민국 당구 국가대표에 대한 꿈을 숨기지 않았다.
황봉주는 지난달 18일 막을 내린 '호텔 인터불고 원주 월드 3쿠션 그랑프리 2021(인터불고 WGP)' 대회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다. 비록 '세계 1위' 딕 야스퍼스(네덜란드)의 벽을 허물지 못했지만 처음 출전한 세계 무대서 예선부터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전 세계 당구팬들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황봉주는 당구선수가 되기 전 축구선수를 꿈꿨으며 미용사로 변신을 꾀하기도 한 개인사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특히 앞머리에 '실핀'을 꽂고 등장해 '실핀아재', '실핀남자', '봉줌마' 등 외모 관련 애칭까지 생겼다. 

[사진]파이브앤식스 제공

잠시 숨을 고른 황봉주는 이제 오는 11일 경남 고성에서 열리는 '2021 경남고성군수배 전국당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이제 더 이상 무명이 아닌 주목받는 선수가 된 황봉주는 2030년 아시안게임 당구 국가대표를 향해 정진하고 싶어한다. 
다음은 황봉주가 지난 6일 부산 목림당구클럽에서 당구 전문 '파이브앤식스'와 나눈 일문일답 내용이다. 
- 대회가 끝난 후 축하인사는 많이 받았나?
▲그렇다. 특히 같이 있는 당구클럽 분들에게서 많이 축하해 주셨다.
- 세계적인 선수들을 상대로 준우승도 굉장한 성적이다. 그런데 결승전 끝나고 울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못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못할 줄 몰랐다. 결승이라는 무대도 처음이었다. 전 경기까지는 (김)준태가 있었는데 결승에 올라가니 한국 선수 중 혼자 남게 됐다. 그래서인지 스스로 책임감을 느꼈던 것 같다. 준태와 2, 3위전까지는 사실 그런 생각 없이 진짜 편하게 쳤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는데도 1세트를 시작하면서 압박을 느꼈다. 그래서 사실 좀 힘들었다.
결승에 오르기까지 많은 사람분들의 도움이 있었는데 너무 못난 모습을 보여드린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이 컸다. 2등이든 3등이든 경기가 끝났을 때 당연히 기뻐해야 했다. 선수라면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경기를 지켜봤던 당구 팬들이나 여러분께 정말 죄송스럽고 프로답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 결승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바람에 야스퍼스가 받아야 할 이목이 본인에게 쏠렸다.
▲정말 미안했다. 주목을 받아야 할 선수는 야스퍼스였다. 그것 때문에 야스퍼스의 시간을 뺏은 것 같아 너무 미안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다. 식당에서 야스퍼스에게 사과했는데 "괜찮다"고 하더라.
[사진]파이브앤식스 제공
- 실핀이 주목을 받았다. 주변 반응은?
▲주변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때문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거 같다. 머리를 따로 손질하지 않는 이상 계속 실핀을 꽂을 생각이다. 대회 당시 많은 이들이 실핀을 선물로 사주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실핀을 선물로 받은 것은 없다. 다른 색상을 권유하기도 하는데 상대 선수들이 불편해 할 것 같다. 
- 대회를 통해 주목을 받으면서 '실핀아재', '실핀남자', '봉줌마' 등 실핀과 관련된 여러 별명이 붙었다.
▲사실 별명이나 애칭이 붙는다는 건 그만큼 관심을 받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 생각한다. 또 팬들이 재미있게 생각하기 때문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맘에 드는 건 없다.
- 대회 전 목표는 어디까지였나?
▲원래 16강이었다. 우승 욕심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 스스로 가장 큰 장점이 강한 멘탈이라고 했다.
▲그렇다. 그렇지만 결승전에서는 책임감 때문에 멘탈이 무너졌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었던 것 같다.
- 선수 경력은 15년이지만 국제 대회는 처음이었다. 톱클래스 해외 선수들과 경기는 국내 선수들과 어떻게 달랐나? 
▲큰 차이는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확실히 세계적인 선수들이라 그런지 단단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본적인 포지션에서는 거의 실수를 하지 않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낀 것 같다. 그게 가장 큰 차이점이라 생각된다.
- 이번 대회를 통해서 부족하다고 느낀 것이 있었나?
▲그런 것을 생각하기보다 그냥 평소 하던 대로 할 생각이다. 원래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기본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확한 두께를 맞춘다든지 내가 원하는 스트로크를 하는 것, 정확한 당점, 원하는 당점을 스트로크 하는 그런 것들이 전부 기본기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런 능력들을 더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원하는대로 된다면 실력도 자연스럽게 올라간다고 본다.
[사진]파이브앤식스 제공
- 대회 초반 스타트는 좋지 못했다.
▲32강에서 3패로 시작했다. 4번째 경기가 포툼이었는데 사실 이겼지만 포톰이 더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살아났다고 볼 수는 없다. 코리아 당구 그랑프리 때와 마찬가지로 카메라 앞에서 경기를 하면 잘 안 풀렸다. 이번에도 ‘또 이렇게 극복을 못하나’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살아났다. 왜 살아났는지 잘 모르겠다. (김)행직이와 경기부터 갑자기 살아났다. 아마 그 경기에서 최고 애버리지(3.000)를 기록했을 것이다.
- 3패가 됐을 때 이미 반쯤 포기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포기라기보다는 완전히 내려놓고 쳤다. ‘못 올라가도 된다’라고 마음을 비우고 '그냥 즐기자'라고 생각하고 경기에 들어갔다. 그래도 완전 탈락한 건 아니기 때문에 경기에는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경기했다.
- 32강에서 김진아(대전, 국내 여자 랭킹 3위)와 경기도 좋지 못했다. 결승전을 제외하고 최저 애버리지(1.033)를 기록했다.
▲역시 안 좋았고 1세트를 못딴 것이 패인의 큰 원인이었다. 1세트를 이겼다면 아마 2-0으로 이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3세트에 김진아 선수가 워낙 잘 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성대결에서 패했다고 해서 별다른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상대가 워낙 잘 쳤다. 지방에서 여성과 경기를 하는 것은 흔치 않다. 여자 세계 1위 클롬펜하우어 선수는 대회기간 동안 지켜봤을 때 당구에 대한 열정도 높아 보였고 굉장히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을 봤다. 
- 이번 대회가 국제대회 첫 대회였는데 앞으로는 국제대회(월드컵)도 출전한다고 들었다.
▲코로나 상황이 끝나고 대회가 재개 되면 앞으로는 모든 국제대회 나갈 생각이다. 월드컵에 나가면 예선 1라운드(PPPQ)부터 출전해야 한다. 목표를 굳이 만들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예선 마지막 라운드(Q)까지 가지는 않을까 생각한다.
- 스스로 이번 대회가 큰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모르겠다. 실력이 그렇게 올라갔다거나 하는 생각들은 사실 안한다.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실력은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대회가 큰 전환점이 된 대회인 것은 맞다. 다른 사람들이 저를 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지긴 했다. 개인적으로는 그냥 평소 하던 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크게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다. 또한 이번 대회 룰이 나와 잘 맞았던 것 같다. 실력을 떠나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이런 결과는 힘들었을 것이다. 
- 총 23경기를 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몇 개가 있다. 우선은 김진아 선수한테 패한 경기도 기억이 나고. 김행직 선수한테 내가 너무 잘쳐서 이긴 것도 기억이 난다. 김행직 선수를 이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32강에서 니코스 폴리크로노폴로스(그리스)와 경기다. 16강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마지막 경기였는데 무조건 2-0으로 이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근데 그렇게 돼서 뿌듯했다. 해내야 하는 상황에서 해낸 것에 가장 큰 점수를 주고 싶다.
-니코스와 경기는 당락이 결정되는 경기였기 때문에 굉장히 부담이 컸을 것 같은데
▲부담감은 없었다. 그냥 내 공만 잘 치자 생각했다. 1세트는 경기가 잘 풀려서 이겼고 2세트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2세트 마지막 공격에서 니코스 선수가 시간을 조금 더 썼다면 내가 지는 경기였다. 그 부분은 니코스가 실수하지 않았나 싶다.
- 고성에서 전국당구대회가 있다. 
▲가장 걱정스럽긴 하다. 그렇지만 따로 준비해야 할 건 없는 것 같다. 그냥 평소 하던 대로 지켜왔던 루틴을 잘 시키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보다 조금 더 규칙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내 자신을 컨트롤하고 당구 실력 뿐만 아니라 체력을 좀 더 보안 할 생각이다.
[사진]파이브앤식스 제공
- 어린시절부터 절친인 부산의 정찬국, 황형범은 프로당구 PBA에서 활동하고 있다. 
▲우선은 해외 선수들과 같이 경쟁하고 싶었다. PBA에도 좋은 선수들이 많이 있지만 아직은 해외 선수 대부분이 UMB(세계캐롬연맹)에 남아 있다. 그 선수들과 경기를 하고 싶어 남아 있는 것이다. 해외 대회에 나가고 싶다는 건 잘 치는 선수들과 겨뤄보고 싶다는 의미이다. 그런 선수들과 겨루기 위해서는 월드컵을 나가야 하고 세계선수권대회를 나가야 만날 수 있다. 또 PBA에 안간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세계적인 선수들이 대부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세계적인 선수들 중 절반 이상의 선수가 PBA로 넘어갔다면 나도 진지하게 생각해 봤을 것이다.
- 이번 대회서 그런 선수들과 경기를 해봤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가 있다면? 
▲야스퍼스 선수가 내 롤모델이긴 하지만 토브욘 블롬달(스웨덴) 선수가 그렇다. 블롬달과는 이번에 3번 경기를 해 1무 2패를 했다. 상대를 뭔가 불편하게 하는 게 있는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 자신의 경기 스타일은? 
▲일반적으로 초반부터 달리는 스타일이다. 수비보다는 공격을 택한다. 수비는 잘 못 하는 편이다. 전혀 안 하지는 않지만 잘 안 한다.
- 선수가 경기 중 할 수 있는 수비의 범위는 어디까지라 생각하는가?
▲이건 이번에 하나 배웠다. 경기를 하면서 해외 선수들이 정말 좀 뻔뻔스러울 정도로 수비를 한다고 느낀 적이 있다. ‘심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했다. 그래서 '저렇게도 치는구나'라고 느꼈다. 무조건 공격이 다가 아니라는 걸 느꼈고 이기기 위해서는 적당한 수비도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
- 생활 패턴을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침형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일찍 일어나려고 하고 너무 늦게 자리 않으려고 한다. 물론 지키지 못 할 때도 많다. 하지만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한다. 자기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이번 대회에서 더 느꼈다. 내가 정해 놓은 규칙이나 루틴들을 잘 지키는 게 나한테는 굉장히 중요하다. 또 운동의 필요성을 더더욱 느꼈다. 체력이 떨어지니 집중력도 떨어지는 걸 느꼈다. 당구 연습도 중요하지만 체력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지금 사용하는 큐는 어떤 제품을 사용하고 있나?
▲한밭에서 나온 다마스큐를 사용하고 있다. 다마스큐는 내가 하고 싶은 샷을 했을 때 내가 원하는 대로 컨트롤 할 수 있어서 좋다. 다른 큐들도 써봤지만 이 큐가 가장 그런 것들을 잘 소화해 주는 것 같다.
[사진]파이브앤식스 제공
- 당구 선수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이번에 좋은 성적을 내서 기쁘다. 하지만 특별한 목표를 가지고 성적에 욕심을 내고 싶지 않다. 당분간은 단지 당구를 더 잘 치고 싶다. 지금보다, 내일보다, 모레보다. 이런 식으로 점점 나아지고 싶다. 잘 치다보면 성적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 20-30년 뒤 팬들이나 후배들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당구 선수로서는 내가 야스퍼스 선수를 생각하듯 그런 선수가 되고 싶다. 후배들이 저를 봤을 때 '저 선배님 정말 나이가 들어서도 자기 관리 참 잘하고 공도 잘 친다'고 생각되는 선수이고 싶다.
- 이번 대회를 통해 많은 당구 팬들이 황봉주라는 선수에 대해서 알게 됐다. 응원해준 분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응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 앞으로 조금씩이라도 더 나아지는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지켜봐 달라. 그리고 한밭 권오철 대표님을 비롯해 권혁준 팀장님 등 한밭 식구들에게 감사드리고, 대회를 만들어주신 파이브앤식스 오성규 대표님과 직원분들, 그리고 대회를 할 수 있게 자리를 후원해주신 호텔 인터불고 회장님과 직원분들, 방송하시느라 고생하신 빌리어즈 TV 관계자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말씀 전해드리고 싶다.
- 올림픽 기간이다. 아시안게임에 당구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한다면
▲국가 대표가 된다는 건 영광인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내 성격상 책임감도 느낄 것 같고, 그것 때문에 부담감에 대한 압박이 있을 것 같다. 2030년 아시안게임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다. 그때까지 더 열심히 해서 그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실력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letmeout@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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