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무더운 한 낮에 을지면옥을 찾았다. 점심 피크타임이 살짝 비낀 시간임에도 역시 긴 대기줄이 섰다. 노포 보존이냐 철거냐를 놓고 논란이 계속됐던 평양냉면 음식점이다. 슴슴한 육수에 밋밋한 메밀향 면발의 중독성이 강한 그곳, 푹푹 찌는 기온 덕분인지 냉면 맛은 오랜 기다림의 대가를 아낌없이 치렀다.
단골 식당을 10년 이상 들락거리면 살림집, 20년 넘어가면 고향집 느낌이다. 30년 이상? 각자의 미각에 ‘ 깊숙이 자리한 ‘절대 맛’의 자리를 꿰찬다. 이쯤되면 나이 먹어 눈 감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집 OOO 한 번 먹고 싶다”고 자식들을 조를 수준입니다.
맛집만 그럴까. 오백년 역사의 고도 서울에 고작 한 백년 안쪽으로 살다가는 인생이라도 끈끈한 정과 나만의 냄새는 곳곳에 배이기 마련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기자에게는 극장이 그랬다.
국도극장에서 명절 때 성룡의 ‘취권’을 본 기억이 아직 새록새록하다. 류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 엔딩 장면이 내게는 그시절 그모습 그대로 들어왔다. 종삼에서 마주 본 단성사와 피카디리를 가장 많이 다녔다. ‘겨울여자’ 보면서 민망해 눈도 깔아봤고 ‘스타워즈’ 신세계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뿐일까. 국제극장, 허리우드, 스카라 등 쟁쟁한 개봉관을 숱하게 돌아다닌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내 머릿속 ‘시네마 천국’ 그 자체다. 이제는 다 사라지고 없지만 그렇다고 추억까지 사라지진 않는다.
충무로 대한극장이 70mm 시네마스코프 시대의 막을 내릴 때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그 현장에서 다시 봤다. 대형 스크린, 대형 극장에서 볼 때 가마솥에서 몇날며칠 끓인 사골국마냥 제맛이 나는 대작이었다.
올 여름, 마지막 남은 단골 극장마저 폐업한다는 소식에 마음이 울적하다. 종로3가 서울극장은 단성사와 피카디리를 우선시했던 기자에게 항상 3순위로 밀렸던 영화관이다. 양대산맥이 먼저 주저앉은 뒤 홀로 종로3가를 지키던 서울극장과의 인연은 아내와의 첫 데이트로 인연을 맺었다. 전쟁영화를 싫어하는 그녀의 속도 모른채 ‘블랙호크 다운’을 얼마나 재밌게 봤던지.
서울극장은 과거 한국영화계를 어떤 식으로건 풍미했던 합동영화사 고 곽정환 회장의 유산이다. 배우자인 ‘은막의 여왕’ 고은아씨가 바통을 이어받아 잘 끌어오나했더니 코로나의 벽을 넘지못한 모양이다. 고은아가 누구냐고요? 현역시절에는 지금의 전지현과 수지를 능가하는 당대 톱스타였습니다.(기자의 팬심도 버무렸으니 이해해주시길)
오는 31일 서울극장은 간판을 내린다. 고별행사로 흥행몰이중인 '모가디슈'(사진)의 무료 상영도 개최했다. 서울내기인 기자의 삶 가운데 일부가 뜯겨나가는 고통이다. 꿈속에서 다시 만나요 우리./mcgwire@osen.co.kr
[사진] '모가디슈'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