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편성’ 각색 드라마에 위협받는 ‘작가의 예술’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1.09.02 16: 46

[OSEN=김재동 객원기자] 글은 영상보다 자유롭다. 가령 “그녀의 마음은 오그라들었다”는 문장을 읽은 누군가는 손톱을 자근자근 씹어대는 여자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이들은 마른 침을 삼키거나 눈동자가 흔들리거나 양손으로 입을 막은 채 위축된 여자를 그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각광받는 웹소설은 기존 소설의 문법으로부터도 벗어나 더욱 자유로운 상상력을 구애없이 발휘하며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또 ‘만화적 상상력’이란 말처럼 가장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장르로 웹툰도 있다. 이제는 당당히 문화의 주류로 올라선 웹툰 역시 그 기발함과 다양성을 앞세워 연극, 영화, 드라마 등으로 활발하게 각색되는 형편이다.

흔히들 ‘연극은 배우의 예술, 영화는 감독의 예술,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라고들 한다. 텍스트를 다루는 주체를 설명한 말로 이해된다.
더블 캐스팅된 연극 배우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텍스트를 해석, 소화, 전달한다. 동일 배우라도 해석이 깊어질수록, 또 배역소화가 충분할수록 앞선 공연보다 효과적인 다른 표현을 할 수도 있다. 그날 그날 배우의 현장 컨디션에 따라서도 표현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영화는 시나리오·촬영·음악·미술·편집 등을 망라한 종합예술이고 2시간 남짓의 일정 시간, 스크린이란 특정 공간에 한정돼 텍스트를 전달하는 장르로서 가장 중요한 통일성과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이 감독이다.
드라마는 영화와 같은 종합예술이다. 하지만 불특정 시청자 및 안방이란 개방공간을 장악하기 위한 대사와, 영화에 비해 길고 느슨한 시간을 끌어가는 스토리가 연출력보다 강조된다. 그리고 그 주체는 작가다.
그런 드라마 작가의 위상이 요즘 들어 많이 흔들리고 있다. 웹소설·웹툰 등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들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드라마에서 두드러진다.
2014년 <미생>, 2018년 <김비서가 왜 그럴까> 등 웹툰 원작 드라마 이후 지난 해엔 최고 시청률 16.5%를 기록한 <이태원 클라쓰>를 비롯, <철인왕후>등 10편 이상의 웹툰 원작 드라마가 방영됐고. 금년에도 상반기에만 SBS <모범택시>, KBS <이미테이션>·<멀리서 보면 푸른 봄>, JTBC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세요>·<알고있지만>, tvN <나빌레라>·<간 떨어지는 동거>, 넷플릭스 <좋아하면 울리는> 등의 각색 드라마가 방송됐다.
이쯤되면 ‘작가의 예술’ 드라마가 점점 ‘각색의 예술’로 전환되는 느낌이다.
방송사 입장에선 웹툰·웹소설을 통한 인기 검증을 통해 편성의 위험성을 줄일 수 있고 향상된 CG 기술을 다채롭게 활용할 수 있는다양성에도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각색이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소설은 가십, 드라마는 스캔들’이란 말처럼 가벼운 험담이 충격적인 사건이 되기 위해선 고도의 압축과 첨예화 과정을 거쳐야 된다.
그러나 몇몇 성공한 사례들에도 불구하고 각색력은 아직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지난 30일 첫 방영된 SBS드라마 <홍천기>는 조선 유일의 여성 화원을 타이틀롤로 한 정은궐 작가의 동명소설을 드라마화 했다. 첫회는 CG가 기대 이하란 평을 받는 등 호평을 끌어내지 못했다. 성인역으로 전환된 2회부터의 스토리 전개가 어찌될 지는 지켜볼 일이다. 
한국의 웹툰·웹소설은 드라마타이즈 없이도 충분히 성장했고 계속 성장해 나갈 것이다. 원소스 멀티유즈시대에 좋은 소스임도 이미 입증됐다. 그렇다고 무분별한 각색화의 대상이 돼선 안된다. 쉬운 선택은 원작조차 훼손할 우려가 있다.
아울러 그같은 쉬운 선택으로 인해 드라마 작가들의 상상력과 창의력 발휘의 기회가 축소돼선 안된다. ‘세계 속 한류’에서 이미 확보하고 있는 우리 드라마 작가들의 기득권을 우리 손으로 내어줄 이유는 없는 것이다.
플랫폼인 방송사들은 ‘작가의 예술’과 ‘각색의 예술’로서의 드라마를 함께 키워나가는 현명한 편성에 노력할 필요가 있다. 원작의 인기에 편승한 ‘쉽게 가는’ 편성은 ‘한류의 축’ 한국드라마의 위상을 퇴보시킬 수 있다.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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