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적’에서 박정민(35)이 연기한 준경은 자기 자신보다 가족을 더 먼저 생각하는 배려심이 깊은 인물이다. 아직은 청소년이기에 원대한 꿈을 품고 있지만 아버지 태윤(이성민 분)과 누나 보경(이수경 분), 그리고 마을사람들을 위해 동네에 작은 간이역을 세우려고 그 누구보다 앞장서 노력한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20), ‘시동’(2019), ‘타짜: 원 아이드 잭’(2019), ‘그것만이 내 세상’(2018), ‘변산’(2018) 등 여러 영화에 출연하며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냈던 그가 이번에는 심리적으로 예민하고 여린 17세 고등학생 준경을 세심하게 그렸다.
박정민은 7일 진행된 ‘기적’(감독 이장훈,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 블러썸픽쳐스)의 온라인 화상 인터뷰에서 “10대 연기를 한번 해보자는 마음은 가졌지만 제가 10대가 되기 위해 (외적으로) 노력하진 않았다. 친구 역할을 맡을 배우들의 나이대가 저와 비슷하거나, 더 많다면 (제가 실제 나이가 많아도) 고등학생 역을 해도 괜찮을 거 같았다”고 말했다.

박정민은 매 작품마다 이미지 변신을 보여주며 넓은 스펙트럼을 쌓는 중이다. 그 안에 훨씬 더 매력적인 영혼들이 살아 숨쉬고 있는 게 아닐까. 아무래도 박정민의 내면에 또 다른 그가 존재하는 듯하다.
15일 개봉하는 영화 ‘기적’은 오갈 수 있는 길은 기찻길 밖에 없지만 정작 기차역은 없는 마을에 간이역 하나 생기는 게 유일한 목표인 준경과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준경 역을 맡은 박정민은 이날 “이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었는데 촬영 당시(2020년) 제 나이가 34살이었다. 준경이 17살부터 시작하는데 등장인물의 두 배를 더 산 제가 어떻게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감독님을 찾아가 ‘시나리오가 너무 좋은데 제가 할 수 없을 거 같다’고 말씀을 드렸다”면서 한 차례 고사했었다고 밝혔다.

감독과의 첫 미팅에서 그는 준경의 어린 나이 때문에 자신이 연기할 수 없을 거 같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이장훈 감독의 설득과 시나리오의 힘에 용기를 냈다고.
“미팅을 하면서 감독님을 만나 보니 너무 좋은 사람이었다. 감독님이 ‘첫 시작을 30대로 해서 플래시백으로 가보는 건 어떠냐’는 말씀도 하시더라.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계셨구나 싶었다. 감독님과 미팅을 하는 시간에 조금씩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웃음) 마지막에는 감독님이 ‘정준경’이라고 적힌 명찰을 단 펭수 인형과 (굿즈 등) 선물을 가져오셔서 제가 거기에 마음이 녹았다.(웃음). 시나리오가 가진 힘이 컸고 마음을 울린 따뜻한 요소가 많았다”고 출연을 결정한 과정을 떠올렸다.
이 감독의 선한 태도와 그만의 매력에 빠졌다는 박정민은 “저는 ‘이장훈 홀릭’이었다. 사람을 대하는 감독님의 배려심이 좋았다. 만날수록 빠져들었던 거 같다”고 작품을 함께 만들어가는 데 이 감독의 도움이 컸다고 고마워했다.

동네에 간이역을 세우기 위해 청와대 대통령에게 편지까지 쓰는 준경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박정민은 실존하는 양원역에 가보기도 했다. “제가 간이역을 이용해 본 적이 없어서 양원역에 한 번 가봤다. 그랬더니 제가 늘상 이용하던 역의 느낌은 아니었다. 지금은 찻길이 있어서 마을에 들어가지만, 차로 이용해도 들어가기 힘든 곳이었다. 예전에 이 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은 기찻길을 이용하셨을 텐데 제가 보기엔 엄두가 안 나더라”고 떠올렸다.
경북 봉화군 양원역에 방문해 그곳의 온기를 느낀 박정민은 사투리 선생님과 사투리대회 우승자를 통해 봉화 지역색이 담긴 사투리 익히기에 나섰다. “사투리 연기를 해본 적은 있지만 경상도 사투리는 처음이라 아무래도 부담은 있었다. 초반엔 ‘이거 안 되겠는데?’ 싶어 벽에 부딪혔다. 감독님과 논의하며 조금 더 관객들에게 익숙한 대구 사투리로 바꿔볼까 싶기도 했지만, 사투리 선생님이 녹음을 해주셨고 안동문화원 사투리 경연대회에서 1등한 분을 찾아뵙고 도움을 받았다”고 준비 과정을 전했다.
박정민은 캐릭터 변신에 대해 “매 작품 감독님들마다 원하는 연기가 다르다. 그래서 저는 작품마다 캐릭터 구축 과정이 다르다. 유연함을 갖고, 그 작품 안에 빠르게 들어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자신만의 연기 비법을 전했다.

‘인간 박정민이 캐릭터가 되고 다시 빠져나오는 전환의 순간들이 궁금하다’는 질문에 “저는 애써 그 배역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제 일상으로 인물을 끌어오지 않는다”며 “전환의 시점이라고 부르는, 명확하게 바뀌는 턴이 없다. 신기한 건 제가 자연스럽게 그 작품 속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는 거다. 그게 배우로서 자연스러운 일인 거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일상의 박정민으로 자연스럽게 돌아온다. 역할을 자연스럽게 대하는 거 같다”고 답했다.
다만 그는 “카메라가 아직도 무섭다. 연기할 때 상대 배우에게 집중하는 게 제일 중요하지만, 카메라와 함께 호흡하며 연기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카메라를 겁내면 안 되는데 저는 가끔씩 겁이 난다. 제가 카메라와 호흡을 잘하지 못해서 만족스럽지 않은 테이크가 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공부와 경험이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에 쉽게 녹아들기 위한 유연성을 키우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이한 박정민. “많은 사람들이 저를 배우라고 불러주시기에 어느 정도 꿈을 이룬 사람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훌륭한 배우’가 되는 게 꿈”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훌륭한 배우가 되기 위해 제가 해야할 일들이 있을 거다. 그 과정에서 제가 어떤 몫을 작게나마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박정민은 매번 전작과 다른 얼굴로 나타나, 러닝타임을 보다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으로 만들어버린다. 그것은 곧 수많은 관객들이 배우 박정민을 사랑하는 이유다.
“물론 좌절하지 않을 수 없지만, 좌절은 조금만 하고, 앞으로 건강하게 꾸준히 나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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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