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재동 객원기자] 요 깜찍한 주인공들 보소.
도대체 맡겨놓은 시계, 맡아둔 시계는 언제 찾아가고 언제 돌려주려고?
KBS 2TV 수목드라마 ‘달리와 감자탕’(손은혜·박세은 극본, 이정섭 연출) 3회 ‘무제는 무엇을 그린 걸까요?’가 29일 방영됐다. 눈에 띄게 재밌는 점은 23일 방영된 2화 ‘명품시계는 몇 천 겁의 시간을 담을 수 있을까요?’에서 진무학(김민재 분)이 김달리(박규영 분)에게 맡겨둔 명품 시계 얘기가 쏙 빠졌다는 사실이다.
드라마속 감자탕 프랜차이즈 ‘돈돈 F&B’의 사업부 상무 진무학은 네덜란드 양돈협회와의 200억원 상당 계약 체결을 위해 암스테르담을 찾았다가 일본인 미술품 수집가 히토나리 진을 마중 나온 김달리의 손에 들린 피켓에서 ‘Mr. JIN’을 발견하고 다짜고짜 파티장으로 안내할 것을 재촉한다.
달리는 진무학을 히토나리로 착각, 자신이 속한 밀러미술관의 후원자가 주최하는 파티로 이끌고 이 자리에서 진무학은 무려 1,600억원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손상시키고 쫓겨난다.
다행히 달리의 혜안으로 그림은 모작으로 밝혀지지만 진무학은 청송미술관 20억 투자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 진백원(안길강 분)이 카드를 정지시키는 바람에 실무진이 오기까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본의 아니게 달리의 집에서 하룻밤을 신세지게 된 진무학, 샤워중 정전사태와 열일하던 청소로봇이 합작한 ‘달리 알몸 덮침’ 사건을 연출하는 등 다사다난한 24시간을 보낸 후 달리와 이별하며 달리 손에 자신의 명품 시계를 채워준다. 다시 만날 핑계거리로 떠올린 즉흥 아이디어였지만 달리의 전화번호도 직장도 알지못한 채 떠나보낸 후 애만 태운다.
비서 여미리(황보라 분)의 쏘삭거림에 자신이 달리에게 사기당했다고 믿게 된 진무학은 기필코 달리를, 아니 시계를 되찾겠다고 다짐한다.

무학이 투자한 청송미술관은 관장 김낙천(장광 분)의 불의의 사망으로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하고 채권 회수에 나선 무학은 청송미술관을 찾아 양아치 난장을 피우던 중 아버지의 뒤를 이어 관장이 된 달리와 재회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3회가 통째로 지나도록, 드라마속 시간으로 몇 일이 지나도록 시계 얘길 한 번도 안 꺼낸다. 진무학으로선 20억이 시계보다 우선 순위일 수 있고 김달리도 부친이 남긴 막대한 채무변제가 우선이라 정신이 없을 수 있지만 구두 카드값마저 흰 봉투에 곱게 돌려주고 돌려받는 순간에도 누구도 시계 얘길 꺼내지 않는다.
그래서 추측해 봤다. 진무학은 시계를 돌려받고 싶지 않다. 시계는 달리에게 건넨 마음이다. 자신의 불학무식함을 탓하지 않은 여자다. 자신의 되도 않는 우스개에 기탄없이 웃어준 여자다. 자신으로선 족탈불급인 고결함과 우아함을 갖춘 여자다. 스스로 생각해도 유치찬란한 채권자 갑질에도 “늘 신세만 진다”고 대꾸하는 여자다. 갑자기 나타나서 같이 밥먹고 얘기하고 웃고 그런 모든 것이 꿈같은 여자다. 시계를 돌려받는 순간 그 꿈은 끝날 것 같다. 그래선 안된다. 이 여자와 함께 하는 꿈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여자도 말하지 않았나. 삼천겁의 인연이라고.
추측컨대 김달리도 시계를 돌려주고 싶지 않다. 미술품 수집가로 오인했던 진무학의 대책없는 천박함은 오히려 신선했다. 품위있고 격식 갖춘 미술품 전시회에서 돼지 똥을 얘기하는 거침없는 당당함. 에두르지 않고 대놓고 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직설적 언행, ‘고상’이란 꺼풀을 쓰고 있지만 가치보다는 가격, 내용보다는 작가 이름을 앞세우는 사람들 속에서 숨 쉬던 달리로선 그 격을 깨는 진무학의 말 하나, 행동 하나에 쉼없이 웃음이 터지는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된다. 허세는 귀엽고 겉과 속이 일치해 믿음직하다. 20억 채무야 꼭 갚아야겠지만 어쩐지 그의 시계는 돌려주고 싶지 않다.
달리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화신이다. 무학은 자본주의가 양산한 졸부의 표상이다. 둘이 둘을 닮아간다. 상극의 출발선에서 서로를 향한 질주를 시작했다. 그 가운데 어디쯤에선가 결국 마주칠 것이다. 인간 대 인간으로, 남자와 여자로. 그때 달리는, 무학은 얼마나 변해있을까? 그렇게 마주치기 전까지 무학의 시계는 여전히 달리 손목에 있지 않을까 싶다.
무학 역 김민재와 달리 역 박규영의 연기가 참 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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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달리와 감자탕' 방송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