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감독이지만 전술의 디테일은 세밀하다. 전희철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서울 SK가 한층 달라졌다.
서울 SK는 지난 9월 18일 상주실내체육관에서 막을 내린 ‘2021 MG새마을금고 KBL 컵대회 결승전’에서 원주 DB를 90-82로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문경은 감독에 이어 지휘봉을 넘겨받은 전희철 감독은 데뷔무대서 우승을 차지했다. MVP는 김선형에게 돌아갔다.
SK의 우승은 전술의 승리라고 봐야한다. 핵심은 전희철 감독 특유의 ‘모션오펜스’다. 모션오펜스는 프린스턴대학의 피트 캐릴 감독이 창안한 공격법이다. 장신선수 수급이 어려운 아이비리그의 프린스턴대학이 신장이 좋은 상대팀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해 개발했다.

프린스턴 오펜스에서는 전통적인 포지션인 가드, 포워드, 센터로 선수를 구분하지 않는다. 코트에 선 5명이 모두 평균수준 이상의 볼핸들링, 패스, 슈팅, 드리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공을 가진 누구라도 먼저 돌파하고, 일대일 공격을 시도하고, 나머지 선수들이 스크린과 스페이싱으로 도와 미스매치를 최대한 살리는 것이 핵심이다.
한 명이 너무 공을 오래 소유하거나, 나머지 선수들의 유기적인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모션오펜스는 쉽게 깨지고 효과도 없다. 선수들의 조직적인 협력플레이와 반복숙달된 훈련이 필수적이다. 외국선수의 포스트 1대1이 주류를 이루는 KBL에서 쉽게 나올 수 없는 공격이다. 하지만 제대로 실행했을 때 파괴력은 크다. 특히 SK처럼 5명의 신장이 다 좋은 팀이 실행하면 더욱 막기 힘들다.
SK에서는 안영준의 2번 변신이 있었기에 모션오펜스의 적용이 효과를 발휘했다. 안영준이 슈팅가드로 변신했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전통적인 농구에서는 2번으로 나서는 선수가 상대팀 슈팅가드를 공수에서 모두 따라다니면서 상대한다. 도움수비나 스위치 등 특별한 상황이 됐을 때 다른 선수가 안영준을 맡는다.

하지만 현대농구에서는 슈팅실력이나 신장으로 포지션을 구분하지 않는다. 안영준이 SK의 선수구성상 2번으로 출전한다고 해서 꼭 모든 공격포제션에서 슈팅가드가 되지는 않는 것이다. 선수의 역할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메인볼핸들러 김선형은 주로 포인트가드를 보지만, 안영준이 볼을 만지면 해당 공격에서 슈팅가드로 변신한다. 김선형은 더욱 공격적인 2번으로 돌아설 수 있다. SK에는 코트 안에 공을 운반하며 2대2 공격을 볼 수 있는 볼핸들러가 김선형, 안영준, 최준용 세 명이나 있다. 현대농구에서는 빅맨들이 스크린을 걸고 외곽으로 빠져도 3점슛을 효과적으로 쏠 수 있어 더욱 효과적인 모션오펜스가 가능하다.
안영준의 2번 출전은 상대팀에게 치명적이다. 196cm 안영준은 ‘미스매치 유발자’다. KBL 2번 중에서 누구도 신장과 파워에서 안영준을 상대할 수 없다. 안영준은 컵대회서 볼핸들러로 나서 2대2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김민수의 은퇴가 아쉽지만 외곽슛이 좋은 포워드 허일영이 합류했다. 최부경까지 부상에서 돌아온다면 SK의 모션오펜스는 한층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전희철 감독은 “안영준에게 2번을 맡긴다는 것은 어떤 위치에서 볼을 잡아도 2번 볼핸들링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2차, 3차 공격을 원하는 것이다. 최준용이 합류하면서 상대방이 수비하기 더 어려워졌다. 두 선수가 기대이상으로 해줬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김선형 역시 “안영준이 슛이면 슛, 돌파면 돌파, 장점을 가지고 있다. 자기 포지션에서 매치업 우위가 있다. 컵대회 숨은 MVP”라고 칭찬했다.
물론 SK의 공격도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자밀 워니의 컨디션도 100%가 아니다. 이적생 허일영도 슛에 아직 기복이 있다. 전 감독은 “모션오펜스가 막혔을 때 적응이 부족하다”고 자평했다. 그럼에도 KBL에 새로 데뷔한 감독이 전술적으로 프로농구에 새바람을 불러 오는 것은 아주 긍정적인 부분이다. SK의 새 시즌이 기대되는 이유다. /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