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 감사해"…임권택 감독, 황혼에서 돌아본 영화 인생 59년(26th BIFF)[종합]
OSEN 김보라 기자
발행 2021.10.07 17: 08

 임권택(86) 감독이 자신의 영화 인생에 대해 “마음에 안 드는 순간이 많았지만 그래도 잘 지내온 거 같다. 우리 집사람에게 고맙다.(웃음) 제가 수입이 없어서 넉넉한 사람이 아닌데 영화감독이라고 잘 대해주는 마누라에게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임 감독은 7일 오후 부산 우동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에서 열린 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기자회견에서 “후회스러운 것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나름 잘 살아온 거 같다. 저는 영화가 좋아서 그걸 좇으며 살았다”라고 감독으로서의 영화 인생 59년을 되짚었다.
“차기작 계획은 없다”는 그는 “평생 영화를 찍는 일로 살다가 쉬고 있으니까 좋기도 하지만, 남은 생이 긴 분들에게 기회가 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저는 그동안 102편을 찍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제가 그간 못 찍은 장르가 무속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한국 사람들이 믿는 신앙이나 무속이 주는 것들에 대한 주제를 잡아 영화를 찍어봤으면 어떨까 싶다. 이제는 그럴 기회가 없고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사양한다. 저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넘겨야 할 단계에 와 있다.”

임 감독은 코로나 시대 속 급변한 시네마 환경에 대한 생각도 전했다. “사람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위안을 받고 재미를 느낀다. 그곳에서 보고 싶은 마음이 있을 텐데 우리가 살면서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없는 시대를 맞이했다. 참 괴상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구나 싶다”고 한탄했다.
이어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장애를 받고 있지만 극장에 가고 싶은 마음은 너나 할 것 없이 다 갖고 있다. 좋은 영화만 있다면 언제라도 호황을 맞을 수 있는 게 영화 산업이 아닐까 싶다. 심심하면 영화관에 가서 시간을 보내기 좋지 않나. 영화는 위안을 받기 좋은 매체다. 지금껏, 영화가 생긴 이래 쭉 그래왔다”고 코로나의 종식 후 다시 예전의 극장 풍경을 되찾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날 ‘봉준호, 박찬욱이란 훌륭한 후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임 감독은 “저도 영화 일에 종사하면서 (저만의) 짜증나는 허점이 있었다. 근데 (후배 감독들에게) 허점이 거의 보이지 않더라. 완성도 높은 영화를 내고 있기 때문에 저는 한국영화에 불만이 없다”고 답했다.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본 한국영화가 있느냐’는 물음에는 "늘 재미를 추구하며 보는데, 근래에는 영화가 얼마나 완성도가 높은지 관심을 갖고 보고 있다. 그런 부분에 많이 신경을 쓰는데 우리 영화가 이제 세계적으로 뒤처질 게 없는 시대라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를 보고 감명 받았다는 임권택 감독은 “상당히 완성도 높은 수준의 영화였기 때문에, 우리 영화도 좋아지고 있다 정도가 아니라, 세계적 수준에서 탄탄하게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칭찬했다. 임권택 감독이 보아도 흠잡을 데 없을 정도로 작품성과 대중성이 있다는 의미다. 그는 그러면서 “(영화가 잘 안 됐을시) 돈 가진 제작사를 쉽게 작살내는 게 영화이기도 하다. 근데 내가 만들었던 시대보다 조금은 덜한 거 같아 안심스럽다”고 했다.
1962년 데뷔한 임권택 감독은 영화 ‘두만강아 잘 있거라’를 시작으로 102번째 작품 ‘화장’(2015)에 이르기까지 60여 년간 쉬지 않고 영화를 만들며 한국영화를 전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해왔다.
그러나 그는 “내 역량이 미치지 못 하는데 (사람들이) 큰 영화제에 가서 큰 상을 받아오길 바라는 압력이 있었다. 영화 인생을 너무 쫓기면서 살게끔 만들었다. 영화를 조금 더 즐기면서 찍었어야 했는데 너무 고통 속에서 작업을 했었구나 싶다. 제 책임이 아니라 (영화인들의) 책임이다.(웃음) 영화제가 나를 옥죄었던 거 같다"고 농담을 건네 웃음을 안겼다.
임 감독은 지난 2002년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2005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명예황금곰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 영화사에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오롯이 새겼다. 이에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로 살아있는 전설 임권택 감독을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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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준형 김성락 기자,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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