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나 각자 생각하는 배우 캐스팅부터 촬영 비법, 디렉팅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두 감독이 캐스팅 라인업을 구성하는 방식이 비슷하다는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봉준호 감독은 7일 오후 부산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열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의 스페셜 대담에서 그의 신작들을 칭찬하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 ‘드라이브 마이 카’(2021)와 ‘우연과 상상’(2021)이 올해 열린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에 초청됐다. 이에 이날 오전 9시부터 약 5시간 동안 두 편의 상영이 진행됐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올 12월 국내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인데 부산에서 먼저 공개하게 됐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죽은 아내에 대한 상처를 가진 가후쿠와 전속 드라이버 미사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동명의 단편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그런가 하면 ‘우연과 상상’은 뜻밖의 만남에서 시작된 세 개의 이야기 마법, 문은 열어 둔 채로, 한 번 더로 구성된 영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아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펼쳐냈다.
하마구치 감독은 “자동차 신(scene)을 보고 놀랐다”는 봉 감독의 찬사에 “너무 좋다. 날아오를 것 같다”고 화답했다. 그는 ‘드라이브 마이 카’ 속 자동차 장면 촬영 비법에 대해 “주행하는 상태에서 찍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바라는 대로 찍을 수 없을 거 같았다. 저는 자동차 트렁크 공간에 있었다. 배우들과 가장 가까운 공간에서 대화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자신만의 촬영비법을 전했다.
이에 봉준호는 “저의 돌아가신 아버지가 평소 대화를 잘 안 하셨었는데 (생전)운전석에 앉으시면 (제가 조수석에 앉은 상태에서) 마주보지 않은 상황에서 대화를 자주 했었다. 눈을 마주보지 않는 대화다. 감독님의 작품에는 대화의 중요성이 담겨 있다. 차 속 대화에 의미를 두는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그는 “제가 어디에 승차하는 걸 잘 못 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움직임이 있지 않으면 재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대사를 쓸 때 찻집에 앉아서 하는 것보다 차에 탄 상태에서 대화 표현을 쓰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자동차 내 대화신에 대해 전했다.
이날 스페셜 대담은 정해진 질문지가 있다기보다 여러 가지 작품을 오가며 질문하고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작품도 국한되지 않은 자유로운 대화였다.
봉준호 감독은 “제가 ‘살인의 추억’이란 영화를 준비할 때, 촬영 당시엔 영구 미제사건이라 잘 몰랐다. 관련된 형사들을 만난다거나 기자분들을 많이 만나 리서치 했지만 가장 만나고 싶었던 범인을 못 만났다. 지금은 감옥에 있지만. 그땐 어떨지 상상을 많이 했는데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님의 영화 ‘큐어’ 속 캐릭터를 생각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봉준호 감독은 “(범인은) 제가 실제 세계에서 만날 수 없는 인물이라, 구로사와 감독님의 ‘큐어’를 보며 ‘범인이 저런 인물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고 밝혔다.

한편 하마구치 감독은 자신의 작품 속 배우 캐스팅에 대해 “저는 오디션을 보지 않고 1시간 정도 대화를 나눈다. 그 안에서 그 사람의 진심이 나오고,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분과 작업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야기를 나누며 제가 '이 사람이 지금 속내를 드러내고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사람과 하고 싶다. 저는 연기를 잘하고 못하기보다 이런 부분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봉 감독은 “저도 배우 캐스팅할 때 사무실에서 시나리오 한 장을 주며 갑자기 ‘연기를 해보라’고 하는 걸 싫어한다.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30분이든, 1시간이든 얘기를 한다. 연기는 배우가 했던 연극이나 출연작을 보면 되기 때문이다. ‘기생충’ 박명훈 배우는 제가 되게 좋아했던 독립영화를 보고 캐스팅한 경우”라고 하마구치 감독과 자신의 공통된 부분을 찾아냈다.
그러면서 봉 감독은 “직업 배우와 비직업 배우가 같은 작품에 섞여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된다”며 하마구치 감독의 비법을 들어봤다. 이에 하마구치는 “기본적으로는 (비직업 배우가)좋은 연기를 못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비직업 배우의 경우는 절대 숙련된 좋은 연기를 할 수 없다. 그래도 연기하는 습관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튀어나올 수 있는 좋은 점이 있다. 거기에 승부를 건다. 숙련된 직업 배우도 거기에 자극을 받아 안에서 끌고 나오는 부분도 있다”라고 자신의 경험을 떠올렸다.

이어 봉준호는 “전 연기 잘하는 분들을 모시려고 한다. 그게 최고다. 근데 연기를 잘한다는 것에 대한 수백 가지 정의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저 자신이 모순됐는데 배우는 내가 계획한, 상상한 것들을 정확히 해주길 바라는 동시에 내가 예상치 못한 걸 갑자기 보여줘서 날 놀라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다. 총체적으로 돌이켜보면 배우들에게 죄송하다.”
하마구치 감독은 “저는 촬영할 때 큰 부분은 디렉팅 하지만 세심한 부분은 배우들이 알아서 하게 둔다. 한 3일차가 되면 배우들이 알아서 감을 잡고 연기를 펼친다”고 설명했다.
이에 봉준호 감독은 “일본영화 산업이 프로덕션 관리가 타이트 하다. 촬영 기간이 한국보다 짧은 게 대부분이다. 그런 상황에서 배우들의 진짜 모멘트를 뽑아낼 수 있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님만의 방법이 있을 거 같다 ”고 궁금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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