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재동 객원기자] 뫼비우스의 띠를 만들어 볼펜으로 죽 그어보면 한 번에 모든 면에 선이 그어진다. 즉 뫼비우스의 띠는 면의 겉과 안(표리·表裏) 구분이 없고 시작과 끝도 없다.
MBC 금토드라마 ‘검은 태양’(박석호 극본, 김성용 연출)의 외전 ‘뫼비우스: 검은 태양’(유상 극본, 위득규 연출)의 주인공은 서수연(박하선 분)과 장천우(정문성 분)다.
원전 ‘검은 태양’의 4년 전 사건을 다룬 것으로 삼합회에 위장잠입한 국정원 블랙요원 장천우의 딜레마와 그를 돕기 위한 서수연의 분투를 다뤘다.
장천우와 같은 언더커버를 다룬 작품은 제법 많다. 대표적으로 조니 뎁과 알 파치노 주연의 ‘도니 브레스코’를 필두로 이제는 고전이 돼버린 ‘무간도’와 그 리메이크작인 ‘디파티드’, 그리고 국내 영화 ‘신세계’ 등을 들 수 있다.
영화 속 언더커버인 조니 뎁과 양조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이정재 등은 하나같이 의무와 인간적 유대 속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한다.
장천우 역시 똑같은 정서적 위기를 겪는다. 장천우는 중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화교다. 한국, 홍콩, 중국을 오가며 성장했고 그런 그에게 정체성은 평생 떨쳐낼 수 없는 딜레마였다. 그런 그가 한국을 모국으로 선택하고 국정원에 몸을 담아 평생을 그 모국을 위해 일하기로 다짐했지만 언더커버의 생활이 길어질수록 의무는 희박해지고 조직에 대한 신뢰는 박약해진다.
맞지 않던 옷도 자주 입을수록 몸에 착 감기고 이사한 집도 살수록 정이 든다. 어느새 합법은 멀어지고 범법에 익숙해져 가는 자신이 두려워져 내근직으로의 복귀를 무수히 신청했지만 번번히 기각되면서 조직으로부터 버려졌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버린다.

그런 그의 지원 팀으로 서수연이 다가온다. 기자시절 취재하던 마약사범 이건호(정환 분)의 손에 언니를 잃은 서수연은 그를 잡기 위해 국정원에 입사한 케이스다. 그녀는 장천우의 고뇌를 요원으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 이해하며 그의 복귀를 돕고자 한다.
삼합회원으로서 마약거래에 나선 장천우. 그의 거래 상대는 서수연의 원수 이건호였고 지켜보던 서수연은 이건호를 잡기 위해 임무를 저버리고 뛰어들었다가 오히려 위기에 처한다. 그때 이건호를 사살하고 위기에서 구해준 이가 장천우다.
서수연의 난입으로 망친 작전. 도진숙 차장(장영남 분)은 장천우의 존재를 알면서도 현장의 모두를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위기에 처한 장천우를 살린 것은 친동생같은 조직원 위구펑(우지현 분)이다.
그렇게 서수연과도 연락이 끊어진 채 잠적해버린 장천우는 천인제약 사원 신분으로 국내에 잠입한다. 삼합회의 국내 분파인 워룬파는 천인제약과 공모해 러시아 마피아와 커다란 거래에 나서고 삼합회는 러시아측 브로커와 연이 닿아있는 장천우를 파견해 지원하게 된 것이다.
서수연조차 지원팀인 자신과도 연락을 끊은 장천우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때 장천우는 수연의 친척 언니인 윤정을 통해 끊임없이 수연과의 연락을 시도했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된 수연은 ‘믿을 수 없다’는 도진숙의 만류에도 다시 장천우 지원에 나서고 워룬파가 러시아 마피아에게 넘기려던 것이 마약이 아닌 신개발 생화학무기 뫼비우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선양서부터 알고 지내던 늙은 블랙요원 김재환(최덕문 분)에게 불의의 습격을 당한다.

장천우와 선이 닿았던 러시아측 브로커가 바로 김재환였던 것. 도진숙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일망타진을 위해 시기만 노리고 있었고 서수연은 도진숙에게 장천우가 이미 버려버린 패란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거래현장에서 김재환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쥐새끼’의 존재를 알게 된 왕오(전석호 분)는 색출에 나서고 장천우 대신 장천우의 동생 위구펑이 북측 공작원이었음을 밝혀내 제거하려 한다. 장천우는 왕오를 죽이고 위구펑을 탈출시키려 하지만 조직원의 칼에 맞은 위구펑은 죽어가며 “형에게만은 내 쥐새끼 아니지? 형은 나같이 되지마오”라고 말해 위구펑이 장천우의 정체를 눈치채고 있었으면서도 형제같은 의리를 지켰음을 알려준다.
위구펑의 유언은 장천우의 행동을 결정짓는다. 끊임없이 이용만 하는 국정원을 위해 쥐새끼가 되는 것을 그만두기로 한 것이다. 장천우는 김재환을 사살하며 확보한 뫼비우스를 서수연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국정원 블랙요원으로서의 마지막 의무를 다하고 서수연은 그를 쏴 그의 죽음을 위장해준다.
이 프리퀄을 통해 비로소 한지혁(남궁민 분)과 서수연에 대한 장천우의 격렬한 감정이 이해된다. 상무회의 칼로 흑양팀 제거에 나섰던 장천우가 본 것은 죽어있는 오경석(황희 분)과 서로 총을 겨눈 채 대치 중인 한지혁과 김동욱(조복례 분)였다. 김동욱의 총격에 쓰러지면서 한지혁이 김동욱을 사살하는 것을 보았을 테고 오경석조차 한지혁의 손에 사살된 것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때문에 장천우에게 한지혁은 쥐새끼거나 동료조차 용도폐기하는 조직의 냉혹한 대리자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래서 “넌 그런 분노가 아니라 미안함부터 느꼈어야 돼!”라고 일갈할 수 있었던 것이고, 서수연은 그런 냉혹한 조직속에서 인간적이었던 단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나와 위장된 나를 구분짓지 못하고 벗어날 수 없는 어둠의 숙명을 감수해야 하는 언더커버 장천우의 삶이 묵직한 연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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