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와 감자탕', 소박해야 사랑이다.."어디 가지 마요!"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1.11.04 18: 25

[OSEN=김재동 객원기자]  KBS 2TV 수목드라마 ‘달리와 감자탕’(극본 손은혜, 박세은/연출 이정섭) 진무학(김민재 분)의 입에서 마침내 “사랑한다”는 말이 나왔다.
원래 진무학은 돈에 관해서라면 모를까 사람을 상대로는 좋아한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잘 못쓸 캐릭터였다. 그런데 김달리(박규영 분)를 만나고는 상황이 바뀌었다. 그녀를 향해 “좋아한다”고 말하기까지도 한참 걸렸다. 좋아하지 않아서, 사랑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얼마나 좋아해야, 얼마나 사랑해야 그런 말을 쓸 수 있는지를 모르는 편이었다. 그런 그의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이 나왔다면 제 감정에 대해서만큼은 확신한다는 말이다.
진무학으로선 계모 소금자(서정연 분)의 달리 폭행 이후 달리 앞에 한없이 주눅드는 심정이었다. 장태진(권율)마저 혀에 칼을 박고 자기 집안의 천박함을 까발린 뒤다. 달리는 자신과 어울리기엔 너무 고결하지 않을까 회의도 들지만 그렇다고 그녀 없는 시간을 견뎌낼 자신도 없다.

무학의 이 고백에 김달리는 “죄송해요. 저는 더 이상 진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없어요”라고 답해 진무학을 멈칫시키더니 “채무자·채권자 사이가 아닌 동등한 관계에서 떳떳하게 사랑하고 싶어요”라며 그에게 키스해온다.
이 흐뭇한 장면은 달리가 입양아란 사실이 밝혀졌을 때와 오버랩된다. 5년전 장태진으로부터 “다시 태어나. 청송가의 딸로”란 끔찍한 말을 듣고 빗속에 버려졌던 트라우마가 달리를 미술관 어둠 속에 밀어 넣었을 때 찾아온 무학은 엉뚱하게 안착희(한소희 분)와의 관계를 주저리주저리 변명하더니 정작 달리가 아파한 입양아 부분에 대해선 “입양아면 달리씨가 달리씨가 아닌게 되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주었었다.
마찬가지로 달리 역시 진무학이 걱정한 소금자의 폭행, 무학 집안의 천박함 따위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위로마저 그 키스에 담아 보낸 것이다.
달리의 결정은 사실 “아빠 저 어떡하면 좋아요”라며 옥탑방에서 날밤 샐 때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김낙천(장광 분)관장이 살아있었다면 틀림없이 “네 마음 가는데로 해라”라고 응원해 주었을테니까.
무학 아니라도 태진으로선 더 이상 달리와 엮어질 가망이 없어보인다. “내 옆에서 청송미술관 지켜. 누구도 널 건드릴 수 없게 해줄게”란 말은 그의 가치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좋게 말하면 순진하고 달리 말하면 이기적인. 그는 남을 전혀 배려할 줄 모른다.
“내 인내심이 바닥날까 두려워”란 말은 또 얼마나 적나라한가. 자신이 보여주고 있는 선의가 말 그대로의 선의가 아니라 인내심을 소모하며 베푸는 배려, 혹은 동정, 아니면 거래와 같은 구애라는 말일 테니까. 자신이 그 대상이 됐음을 알 때 달리가 느낄 초라함에 대해선 아예 의식조차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달리는 이 모습을 명예에 죽고 산다는 작은 아버지 김흥천(이도경 분)에게서도 보았다. 청송가 고귀한 피 한방울 없이 입양된 달리 때문에 청송가가 망했다고 독설하던 그는 너도 청송가의 일원이니 청송가를 위해 장태진에게 가라고 종용한다. 도대체 정작 뚜쟁이 같은 이 행태 어디에 명예가 있단 말인가.
반면 무학이 달리에게 바라는 건 “어디 가지 마요”하나다.
제 눈길 닿는 곳에 있어주기만 하면 족하다는 고백이다. 얼마나 소박한 이기심인가. 소박해야 사랑이다. ‘입양아야?’ ‘집안이 천박해?’ 등등 볼 거 많고 잴 거 많고 따질 게 많다면 사랑이라고 우긴들 어떤 종류의 이기심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10대도 아닌 주제에 마냥 풋풋한 김달리와 진무학의 사랑만들기를 전적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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