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방송가의 산증인이다. 1927년생 송해의 첫 영화 ‘송해 1927’은 한평생 전 국민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최고령 현역 MC 송해(95)의 무대 뒤에 숨겨진 스토리를 담았다.
33여 년간 KBS 1TV ‘전국노래자랑’에서 메인 MC로 활약하며 전국을 누빈 송해. 그의 재치 넘치는 입담과 푸근한 인상은 나이를 불문하고 온 국민의 희로애락을 표현하기에 충분하다. 그런 의미에서 ‘송해 1927’은 모두가 알지만, 누구나 알지 못했던 송해의 95년 인생 일기다.
9일 오후 서울 자양동 건대입구 롯데시네마에서 열린 ‘송해 1927’(감독 윤재호, 제작 이로츠·빈스로드, 배급 스튜디오 디에이치엘)의 언론배급시사회에서 송해는 “저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제안받고 4개월간 고민하다가 한다고 했다”고 참여한 이유를 밝혔다.
‘단일 프로그램 최장수 MC’, ‘살아있는 전설’, ‘일요일의 남자’ 등의 수식어를 얻으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송해. 한 세기에 가깝게, 95년 동안 살아온 그의 인생사를 ‘1927’에 녹였다.

그는 이날 “뒤돌아보면 언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갔나 싶다. 살아낸 지 100년이 다 돼간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시는 분들께, 우리가 처음 맞이하는 소멸시킬 수 없는 코로나 시대에, 바라는 것은 이 세상을 사는 분들이 고통받은 아픔이 후대까지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안부인사를 건넸다.
이어 송해는 “이제 우리 후손들에게 밝은 희망이 열리지 않았나 싶다. 절망만 할 게 아니다. 곧 노력의 기쁨이 표현되지 않을까 싶다. 저보다 큰 아픔을 가지신 분들에게 이 영화를 통해 기쁨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전국노래자랑’의 아이콘인 그는 “노래자랑을 통해 기쁨을 드리고 싶었다. 저보다 아픔을 많이 가지신 분들이 많다. 정말 교과서 같은 무대의 장으로 생각하고 해왔다”고 ‘전국 노래 자랑’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이 다큐멘터리는 MC 송해는 물론이고, 아버지 송해로서의 인간사를 체험할 수 있다. 스타이기 이전에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던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것.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며 30여년 만에 아들이 노래하는 목소리를 들은 그는 “(세상을 떠난 아들의) 의중을 파악했어야 했는데 그걸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제가 아버지 노릇을 잘했는가 싶더라. 그런 두드림이 제 뒷머리를 때렸다. 제 막내딸이, 오빠의 마음을 담은 1~5집을 만들었는지 몰랐다. 딸이 가사도 쓰고 서툴게 편곡까지 했는데 그 사이에 내가 알지 못했던 게 안타깝다. 부자지간에 대화가 잘 안 됐던 게 가장 안타깝다. 세대의 변화가 빨라 그런 얘기를 주고받을 시간이 없는 거 같다. 아버지로서 아들을 미리 짐작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곁에 없는 아들을 향한 사랑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아들의 교통)사고 후 제가 한남대교를 건너 다니지 못했다. 몹시 마음이 아파서였다”며 “이 영화를 보실 분들이 느끼시겠지만, 가족의 행복이 무엇이겠나. 부모는 자식의 꿈을, 자식은 하고자 하는 앞날의 호소를 부모님에게 알아듣게 얘기하는 거다. 가족간에 소통이 제대로 됐으면 좋겠다. 저는 이 자리를 통해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못했다는 고백을 한다”고 털어놔 안타까운 마음을 안겼다.

이번 다큐멘터리의 연출은 ‘마담 B’ ‘뷰티풀 데이즈’ ‘파이터’ 등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오가며 인물을 바라보는 깊이 있는 시선으로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윤재호 감독이 맡았다.
이날 윤재호 감독은 “저도 아버지가 되어보니, 인생에 대한 가치와 인생에 대한 교훈을 깨닫게 됐다”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아들에 관한 이야기, 자식과 부모에 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따뜻한 영화가 되길 바랐다”고 연출의도를 전했다.
이어 윤 감독은 “송해 선생님과 인연이 닿으면서 따님께 많은 얘기를 들었다. 되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영화의 따뜻한 마음이 어딘가에 있을 거 같더라. 세상을 떠난 인물이 마치 우리에게 귓속말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우연이 이 영화를 통해 필연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운명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송해와 인연이 깊어졌다고 표현했다.

윤 감독의 ‘송해 1927’은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제17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3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제18회 EBS국제다큐영화제, 제9회 무주산골영화제 등에 초청받아 그 작품성을 입증받았다.
이날 그는 “송해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방송할 때나 일상에서도) 작은 부분까지 체크하고 공부하시는 걸 보면 부지런하다 싶었다. 노력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인간의 모습을 보며 저도 많은 걸 배웠다. 살면서 부지런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라고 곁에서 본 송해에 대해 전했다.
이 작품은 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오픈 시네마 부문에 초청돼 관람객들로부터 ‘이 시대를 살아온 부모님들께 헌정하고 싶은 영화’ ‘스타가 아닌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삶’ ‘가족의 소중함이 느껴지는 따뜻한 감동’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송해는 이날 ‘어떤 수식어가 가장 좋냐’는 질문에 “저는 영원한 오빠라는 수식어가 제일 좋다.(웃음) 제가 받아들이기도 제일 편안하다”고 답하며 “‘노래자랑’에 나왔던 최연소가 만 3세, 최고령자가 105세였다. 한 세대를 훌쩍 넘는 사람들이 나와 얘기하고 노래하는 게 ‘전국노래자랑’이다. 저는 MC로서 영원한 오빠가 되고 싶은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송해는 “구봉서 형이 나이가 제일 많았는데 이제 제가 최고령자가 됐다.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서인지 연예계에 무슨 일 생기면 저릿하다. 침체된 분야가 있으면 제가 뛰어들어서 헌신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고 대선배로서 후배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장수한 원동력에 대해 그는 “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없으면 저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 공연을 해도 그곳에 오신 분들이 저를 도와주는 사람들이다. 제가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지만, 결론이 날 때까지 제가 떠나지 않겠다”라고 대중을 자신의 최대 에너지로 꼽았다.
송해는 ‘송해 1927’의 예비 관객들에게 “가족끼리 못다한 얘기를 하며 소통할 수 있는, 따뜻한 영화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달 1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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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 포스터, 스틸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