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모’ 지운의 ‘불나비 사랑’ 멈춰 세운 휘.. 종내 이별?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1.11.10 18: 14

[OSEN=김재동 객원기자]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참 힘들다.
남자라고 믿는 이를 사랑하는 남자도 힘들고 남자로 위장한 채 사랑하는 이의 구애를 거부할 수밖에 없는 여자도 힘들다.
KBS 2TV 월화드라마 ‘연모’의 이휘(박은빈 분)와 정지운(로운 분)의 로맨스가 예정된 파국의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정지운은 비몽사몽간 느꼈던 이휘의 입맞춤이 사실임을 깨닫고 “이 나라의 주군이신, 사내이신 저하를 연모합니다”고 열정적으로 고백한다. 주군을 향한 충심 고백이 아닌, 당장에 경을 쳐도 탓할 수 없는 연정 고백. 지운의 격정은 죽을 줄 모르고 날아들어 불에 타죽고 마는 불나비를 닮아있다.
지운의 고백이 아니었다면 이 위험한 관계가 좀 더 지속될 수 있었을까? 전적으로 그들 탓이 아니지만 이제는 오롯이 그들의 문제가 되어버린 두 사람의 사랑 얘기는 더 이상 이어질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휘는 “나는 이 나라의 세자고 정 사서는 나의 신하”라고 지운의 위험한 격정을 밀어내면서 관계의 종언을 위해 가례를 올리기로 한다.
지금 이 순간이 비록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이대로 지속되기를 바라는 심정은 여전하지만 추억마저 지키지 못할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저 하루하루 무심하게 세월이 흘러 지금의 슬픔조차 어느 날 미소로 되돌아볼 날이 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래서 너무 어린 나이에 가례를 올려 가족도 지키지 못했다고 토로하는 왕(이필모 분)이 재차 가례를 원하는 지 물었을 때 “가례를 원합니다”라고 또렷하게 대꾸한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고 가례를 통해 위험으로 돌진하려는 자신과 지운의 연정을 제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례를 원하는 휘에게 왕은 권한다. 자신의 장인이자 휘의 외조부인 한기재(윤제문 분)의 견제에 이조판서 신영수(박원상 분)가 힘이 되어줄 거라고.
이에 휘는 신영수의 딸 소은(배윤경 분)을 만나 “내게로 난 길이 가시밭길이라 해도 우직하게 밟고 와줄 곧고 강한 사람을 그렸다”며 “그길 걸어와줄 수 있겠냐는 부탁을 하러 왔다”고 세자빈이 되어 줄 것을 청한다.
마음 속에 정지운을 품고 있는 소은은 “저는 세자빈이 될 자신이 없습니다”고 에둘러 말하고 소은이 지운을 연모함을 알면서도 휘는 “여기까지 찾은 이상 나 역시 바로 포기하겠다 말해주지 못하겠다. 조만간 또 보자”라고 소은의 마음을 외면한다.
소은으로선 난감할 뿐이다. 자신의 감정도 감정이려니와 병판의 금지옥엽이자 자신의 절친인 노하경(정채연 분)이 세자를 마음에 두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남이 정한 운명의 피해자가 되어 사랑은 물론 인생조차 지키지 못한 휘는 어느새 소은과 하경을 자신과 같은 운명의 피해자로 만들려는 가해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마침내 이별을 고하는 자리에서 정지운은 “궐에 있으면 자꾸만 동궁전을 기웃댈 것 같다”고 사직소를 내밀며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단 하루가 아니라 매일매일. 외롭지 마시고요”라는 말을 남기고 멀어져 간다.
그럴 리가. 종내 이별인데. 옆에 두고 보던 행복을 떠나보내는 이에게 행복하라니... 보고 있어도 닿을 수 없어 외로웠던 사람인데 가슴 속에 정만 달랑 심어놓고 떠나가면서 외롭지 말라니... 잔인한 치렛말이다. 죽어 이별이야 기다림이래도 없지, 살아 이별이니 언제건 마주칠까, 언제건 다시 볼까, 기다림까지 더할 판에 무슨 매일 매일이 행복할까.
어쨌거나 제 인생 아닌 오래비 인생 대신 살며 정없고 차가웠던 세자 휘로는 돌아가지 못할 판이다. 가슴 속에 그리움 가득품고 차가울 사람이 누가 있을까.
휘는 지운에 대한 그리움에 더해 소은이 됐던 하경이 됐던 가례를 통해 맞이할 세자빈의 독수공방에 대한 연민까지 머금어야 될 판이니 그 처지가 심히 안쓰럽다.
예고편을 보니 폐세자 공론이 일 모양이다. ‘폐세자=죽음’이기 십상인 정국에서 다행인 건 늘상 차가운 줄로만 알았던 부왕의 세자에 대한 애정이 확인됐다는 점. 게다가 왕이 세자가 여자임도 알아채는 모양이니 드라마 말미가 한결 궁금해진다.
아비로서 지키지 못해 태어나자마자 죽임당했을 줄 알았던 아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죽어버린 오라비 세자를 대신한 인생을 살아왔음을 왕이 알게 된다면 그 심정이 어떨까.
어쨌거나 세자 휘는 폐위된 채 죽음을 맞이하고 왕과 자은군 이현(남윤수 분)의 도움으로 ‘담이’ 혹은 ‘연선’으로 되살아나 정지운과 함께 명나라쯤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결말 맺길 시청자로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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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연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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