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오리온은 잊었다! 이제 한국가스공사가 우리 팀이다.”
지난 2011년 연고지 대구를 떠나 고양으로 옮긴 오리온이 17일 무려 3,897일 만에 원정팀 자격으로 대구를 다시 찾았다. 오리온은 대구를 떠나는 과정에서 대구팬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하루아침에 우리 팀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그렇게 좋아했던 농구를 보지 않는 팬들도 생겼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대구팬들의 오리온에 대한 상처는 자연스럽게 아물었다. 올시즌 새로 생긴 한국가스공사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무엇보다 내가 그렇게 사랑했던 프로농구를 우리 안방에서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설렜다.
오리온을 안방으로 맞은 한국가스공사는 ‘대구 더비’를 앞두고 재밌는 이벤트를 펼쳤다. 10년 전 오리온 유니폼을 가져오는 팬에게 한국가스공사 새 유니폼을 주기로 했다. 경기당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장롱속에 고이 간직했던 김병철, 전희철, 김승현의 이름이 10년 만에 대구체육관으로 나왔다. 팬들이 선수들에게 직접 선물받은 사인된 유니폼을 내주고, 한국가스공사 유니폼을 받아가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관중석에서 오리온 골수팬인 김흥섭(39) 씨와 이효준(35) 씨를 만났다. 김흥섭 씨는 “프로농구 원년 97년부터 팬이다. 오리온에 너무나 애착이 강했다. 우리 지역팀이라 애정이 강했다. 팬들에게 공지없이 떠나 서운하고 실망이 컸다. 시간이 약인가 싶다. 세월이 지나니 잊혀졌다. 10년간 너무나 좋아했던 농구를 못봐서 아쉬웠다. 가스공사가 대구로 와서 다시 농구를 볼 수 있어 너무 기뻤다. 홈개막전부터 빠짐없이 경기장을 찾고 있다”고 고백했다.

김흥섭 씨는 김승현에게 선물받은 선수용 유니폼을 들고 있었다. 김승현의 등번호 3번이 선명했다. 선수들에게 받은 사인도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 NBA 같았으면 수백만 원의 값어치가 있는 물건이었다.
그는 “가스공사에서 이벤트를 한다길래 꺼내왔다. 김병철 선수와 김진 감독님 사인도 받은 유니폼이다. 하지만 이제는 미련이 없다. 새로운 팀 한국가스공사를 응원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효준 씨는 오리온 팬클럽의 회장까지 역임했다. 휴대폰에 십여 년 전 오리온 팬미팅에서 촬영한 사진도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서포터스 시절 용인 연습장까지 놀러가서 선수들도 보고, 농구도 했던 기억이 난다”며 사진을 보여줬다. 농구를 좋아했던 20대 청년의 모습이 그대로 있었다.
대구팬들은 농구를 좋아한다. 앤드류 니콜슨과 김낙현의 대활약으로 한국가스공사가 오리온을 이겼다. 4쿼터 니콜슨의 덩크슛이 터지자 엄청난 환호성이 나왔다. 대구의 농구열기는 10년 전 그대로였다.
김낙현은 “대구 팬분들이 농구에 대해 많이 아시는 것 같다. 경기장에 오시는 분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경기를 뛸 때 팬들의 박수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이 느껴진다”고 반겼다.
이날 한국가스공사는 오리온을 88-79로 이겼다. 유도훈 한국가스공사 감독은 “이제 확실히 우리가 대구팀이다. 이전 오리온 팬들이 우리를 좋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사랑받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 jasonseo34@osen.co.kr
[사진] 대구=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동영상] 대구=서정환 기자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