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닮은 사람' 사랑이란 포장 찢겨진 불륜, 그 씁쓸함에 대하여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1.11.18 09: 20

[OSEN=김재동 객원기자] 많은 일들이 그렇다. 시작은 내가 하지만 끝은 어찌될 지 모른다. 사랑도 그렇다. 모두들 해피엔딩을 기약하며 사랑을 시작하지만 불행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특히 그것이 불륜의 사랑일 때 더욱 그렇다.
JTBC 수목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의 호흡이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호수의 생일날 정작 호수는 구해원(신현빈 분)의 가스라이팅에 세뇌된 이일성(서진원 분)에게 유괴되고 한바탕 소란 끝에 호수는 서우재(김재영 분)의 품에 안겨 정희주(고현정 분)와 안현성(최원영 분)에게 건네진다.
그리고 호수의 생일선물 틈에 놓여있던 정희주에게 보낸 구해원의 우편물은 빈 봉투만 남아있다. 정희주는 구해원을 찾아 내용물이 뭔지를 묻고 구해원은 “선배의 유류품에 남아있었다”며 메모지에 그림을 그린다. 그림 속엔 갓난 아기와 아기를 안고있는 여자, 그리고 뒤편에서 웃으며 둘을 지켜보는 남자가 담겨있다.

아기는 안현성의 아들로 크고 있는 호수고 안고 있는 정희주와 서우재가 한 프레임에 잡힌 사진이 내용물이었다. 해원은 “그 봉투를 누가 뜯어보았을까?”라며 희주를 비웃어준다.
한편 호수의 유괴사건 현장을 찾은 우재가 “정 작가님은 괜찮으신가요?” 물었을 때 현성은 우재의 멱살을 잡아 몰아붙이며 “네가 감히 내 앞에서 또 희주를 찾아?”라고 으르렁거리며 격렬한 적의를 드러냈다.
우재는 현성의 그 격한 반응에 ‘이 사람도 아는구나’ 눈치챘고 희주와의 관계가 희주 말처럼 ‘잠깐 스쳐가는 감정’ 정도가 아니었음을 알아챈다.
혜원의 의도는 120% 깔끔하게 먹혔다. 우편물은 잔잔한 우물에 파문을 일으키는 돌멩이 역할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우편물은 십중팔구 정희주가 뜯어볼 것으로 예상했겠지만 그러면 그런 대로 희주의 불안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 사춘기 딸 리사(김수안 분)가 뜯어보았더라도 엄마에 대한 불신이 커졌을 것이고, 시어머니 박영선(김보연 분)이 보았다면 당장 집안이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인 것은 남편 현성이 보는 것이다.
현성으로선 이미 눈치 챈 희주의 바람이었다. 그렇지만 용서하고 덮어두기로 마음먹었던 바람이다. 현장을 목도하지 못했을 때는 그렇게 인내하고 관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외면하고 싶었던 현장을 박제한 사진을 본 순간 인내도 관대함도 사라졌다. 사진 속 3인은 사랑으로 충만한 완벽한 가족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엔 자신이 아닌 서우재가 자리하고 있었다.
잠자리에서 희주가 사라졌을 때 현성은 슬리퍼만 신은 채 무작정 우재의 작업실로 들이닥친다. 하지만 그 자리엔 정희주도 서우재도 없고 구해원만 빙글거리고 있다. “선배를 찾는 건지, 언니를 찾는 건지 모르겠지만 많이 급하셨나 봐요. 혼자 쿨한 척 하더니.”
한편 박영선(김보연 분)의 방을 나서는 우재를 낚아챈 희주는 “작가님 남편은 알고 있어요. 내가 당신 좋아했던 것...아마도 우리가 만났던 것까지”라는 우재의 반응에 넋이 나간다.
그리고 전전긍긍 불안에 잠 못 이루는 희주의 작업실에 현성이 들이닥친다. 현성은 희주앞에 사진을 내던지며 “차라리 거짓말이라도 해. 최소한 그런 성의라도 보여. 나한테!”라고 분노하고 희주는 파랗게 질리고 만다.
희주와의 결혼은 현성의 인생을 좌지우지해온 어머니 박영선의 반발을 무릅쓰고 쟁취해낸, 오롯이 그 자신만의 결정이었다. 그래서 현성에게 희주는 사랑 그 이상의 의미가 있고 그렇게 이룬 가정을 어떻게든 이상적으로 지켜내려 애써왔다. 하지만 그런 희주의 울타리 현성에게 이미 불신의 씨앗이 깊게 뿌리내리고 만 것이다.
제 감정에만 충실한 사랑이었다. 주변도, 앞날도 고려치 않고 무작정 시작한 사랑이었다. 희주와 우재 두 사람은 그렇게 제 감정에 취해 주변을 향해 돌을 던졌다. 그 돌에 제일 먼저 구혜원이 맞았고 이제 안현성이 맞았다. 또 다른 궤적들은 안리사나 안호수를 향하고 있다.
도대체 이들과는 전혀 무관했던 이일성까지도 유탄을 맞았다. 구혜원의 가스라이팅에 세뇌돼 이제는 호수 유괴범까지 되고 말았다. 아빠가 그런 판에 이주영(신혜지 분)인들 온전할까. 망가진 혜원을 지켜봐야 될 엄마 구정연(서정연 분)은 또 어떻고.
한때 뜨거웠던 희주와 우재의 사랑은 좀 더 깔끔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희주의 욕심이 그럴 기회를 무산시켰다. 유부녀로서 좋은 동생의 남자를 사랑한 사실은 피해자를 남기니 어쨌건 정당할 순 없지만 남편 현성과 동생 혜원에게 사죄를 구하고 아는 모든 이들의 비난을 감수한 채 둘만의 사랑을 위해 떠났다면 적어도 사랑만은 인정받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희주는 현성의 아내라는 안정된 세계을 포기할 수 없었고 사랑만 아는 바보 서우재를 아일랜드에 버려둔채 현성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그런 그들 사이엔 사랑이란 포장지는 막무가내로 뜯겨져 불륜이란 구질구질한 내용물만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말았다. 지근거리의 모두에게 그 구질구질함을 끼얹으며.
사랑이 시작될 듯 하면 스스로 한 번 물어보는 게 어떨까. ‘자신 있나 이 사랑?’그리고 자신없으면 시작도 안하는 게 어떨까. 특히 불륜이라면 사랑이란 이름으로 스스로를 죽일 수 있는 지도 가늠해 보는 게 피해 입을 다른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런지. 적어도 사랑이라면 욕정이랑은 구분될 온당함이 있어야 되지 않겠나 싶다.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 구해원이 망가졌고 안현성도 망가졌다. 도미노처럼 많은 이들이 망가져 갈 것이다. 정희주·서우재의 비극도 물론 예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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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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