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대한 로망은 없죠.”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배우 손석구(39)는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를 보며 상상해본 박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말 한마디 하고 왠지 부끄럽게 웃는 그가, 어딘가 어리숙하게 보이는 우리의 얼굴과 겹쳐보이지만, 영화 속 박우리가 되기까지 얼마나 깊숙이 인물을 탐구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배우들이 작품 속 캐릭터에 빠져서 자신을 완전히 지우려고 노력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배우들은 자신만의 특징을 살려 맡은 캐릭터를 자기화한다. 손석구는 후자에 해당된다.
18일 진행된 화상 인터뷰에서 그는 “2시간 짜리 영화에 여러 명의 캐릭터가 있지 않나. 제가 맡은 인물은 그 중 하나의 기능을 담당한다고 생각한다. 저는 모든 캐릭터를 대할 때 먼저 하나의 정서를 정한다. 박우리는 사랑을 하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저는 우선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못할 거 같은 사람'으로 잡아놓았다. 그래야 관객들이 처음에 접했을 때 ‘쟤가 어떻게 사랑을 하겠어?’라는 생각을 하실 거다. 처음엔 그 정도로 그려 놓았다. 사랑을 쟁취하지 못할 거 같은 이미지를 먼저 보여주고 싶었다”고 캐릭터를 분석하고 표현한 과정을 들려줬다.

이어 그는 “제가 캐릭터에 다가가지 않고 저에게 다가오게 한다는 게 정확한 표현 같다. 그래서 제 개인 인생이 중요하고, 나이가 들면서도 제가 잘 바뀌어가는 게 중요한 거 같다”는 가치관을 전했다. 그러면서 “누구나(어느 배우나) 그 캐릭터가 될 순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자신이 맡은 캐릭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에 어울리지 않거나 정반대편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처음엔 잡아놓는다. 그렇게 기본 콘셉트와 초반 캐릭터를 잡고 나면 ‘그렇다면 나는 어땠지?’라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슬픈 연기를 해야하면 몇 년 전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제가 20대 시절에 사랑을 못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영화 촬영 전에는 그 시기를 떠올리며 ‘나는 왜 그때 사랑을 못 했지?’ 라고 생각해봤다. 캐릭터를 연기할 때 보통 제 기억에서 꺼내 쓴다”고 연기 방식을 털어놨다.
박우리의 성격 및 연애 스타일과 다르다고 비교한 손석구는 “실제의 저는 우리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현실적인 연애를 하는 거 같다”며 “이제는 저도 결혼을 하고 싶고 아이도 갖고 싶다. 현실적으로 책임감이 있어야 하는 나이다. (현실적인 것들을) 덜 생각하는 게 낭만이 넘치고 로맨틱한 거다. 몇 년 전의 저보다, 지금의 제가 덜 로맨틱한 거 같다. 지금은 연애에 대한 로망은 없고, 막연하게 결혼에 대한 상상을 해서 그런지 결혼에 대한 로망만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정가영 감독의 장편 상업 데뷔작 ‘연애 빠진 로맨스’(제공배급 CJ ENM, 제작 CJ ENM 트웰브져니)는 연애는 싫지만 외로운 건 더 싫은 29세 자영과 일도 연애도 뜻대로 안 풀리는 서른 살 우리가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만나 썸을 타는 과정을 그렸다. 전종서(28)와 손석구가 각각 자영, 우리 역을 맡았다. 두 배우의 나이 차이는 11살인데 캐릭터 자영과 우리는 1살 차이다.

손석구는 전종서에 대해 “이 친구도 나만큼 뜻하지 않게 외모에서 오는 오해를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겉치레를 못하는 것도 나와 비슷하더라. 그 친구와 제가 비슷한 점은 웃긴 걸 좋아한다는 것이다. 연기 호흡은 맞출 것도 없이 잘 맞았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평소 정가영 감독의 작품을 좋아했다는 그는 “정가영 감독님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색깔이 명확한 감독님들의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 특히나 정 감독님은 유일무이한 자기 색깔을 갖고 있다”며 “늘 비슷한 주제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제가 배우로서 쓰임을 받고 싶었다. 작품에 일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정 감독에 대해 손석구는 “놀란 부분은 감독님이 애드리브가 아닌 세트플레이를 좋아하신다는 점이었다. (자유로울 것이라고 예단했던) 정가영 감독님이었기 때문에 참신했다. 새로웠다. 연기도 잘하셔서 초반에는 정 감독님 앞에서 연기하는 게 부담스러웠다”고 말하며 웃었다.
‘연애 빠진 로맨스’는 두 남녀가 사랑에 쿨한 척, 센 척하지만 결국엔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는 것을 말한다.
이에 손석구는 멜로 장르를 선호한다고. “액션에는 짜릿함이 있지만, 멜로는 서로 얘기하고 소통하면서 주고받는 게 많다. 그래서 재밌는 거 같다”라고 비교했다. ‘그렇다면 멜로 연기에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느냐’는 물음에 “노하우는 없지만 상대에게 많이 집중을 하는 거 같다. 내 것만 하려고 하면 이상하게 보일 거 같다”고 답했다.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만남을 갖는 것에 대해서는 “저와는 안 맞는다”는 입장을 전했다. “제 친구 중에 몇 번 그것을 통해 만남을 가졌었는데 잘 안 됐다더라. 물론 다양한 만남의 방식이 있기에 그 방식도 존중하지만 저는 그렇게 만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전했다.
‘너드미’ 넘치는 에디터로 변신한 손석구는 3040세대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매력을 ‘연애 빠진 로맨스’에서 발산했다. 영화의 개봉 후 아마 더 많은 여성들이 그만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까.
손석구는 “내년이면 40살이다. 갈수록 몸도 힘들고 생각도 고리타분하게 변하고 있다. 옛날 어른들 말씀이 맞더라.(웃음) 나이가 들면서 저만의 아트 형식과 좋아하는 아트 스타일도 달라질 거 같다. 배우들은 나이가 들면서 많이 바뀌는 거 같다. 그런 의미에서 ‘연애 빠진 로맨스’의 박우리가 내 젊은 시절을 장식하는 마지막 페이지가 될 거 같다는 생각도 했다. 앞으로 다른 연기를 할 텐데…그런 의미에서 박우리는 특별하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한편 손석구의 작품 선택 기준은 ‘사람’이라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좋으면 대본이 별로라도 선택한다. 제가 사람을 가장 우선시해서다. 하지만 시나리오가 좋아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별로면 안 한다.”
이어 그는 “내년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두 작품 정도 (출연)하고 싶고, 시나리오도 한 편 완성하고 싶다. 진짜로 여력이 된다면 연출도 한 작품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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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CJ E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