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이'에는 남자 주인공이 없다. 두 주인공을 돕는 조력자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럼에도 '구경이'를 보는 내내 전혀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구경이'는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들, 그들의 복잡 미묘한 관계성만으로도 남자 주인공과의 로맨스는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완전함을 띠기 때문이다.
JTBC 토일드라마 '구경이'는 게임도 수사도 렉 걸리면 못 참는 방구석 의심러 구경이(이영애 분)의 하드보일드 코믹 추적극. 대놓고 '여주인공 원톱물'을 자처한 만큼 타이틀롤인 구경이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구경이는 방구석에서 술과 게임만으로 살아가고 있는 '방구석 의심러'다. 하지만 이래 봬도 그는 前 강력팀 형사. 경찰 후배이자 현재 NT생명 B팀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나제희(곽선영 분)의 제안을 계기로 구경이는 보험 조사관으로서 연쇄살인마 케이(김혜준 분)의 흔적을 뒤쫒는다.
제대로 손질하지 않아 부스스하고 떡진 머리카락에, 패션이라곤 눈꼽만큼도 신경쓰지 않는 듯 자유분방한 스타일. 일 외적인 것에서는 허당인데다 술을 커피처럼 달고 사는 모습까지, 평소 구경이는 믿음직스럽지 못한 인물 그 자체다. 하지만 사건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날카로운 추리력과 집념으로 그 누구보다 앞서간다.
여기에 남편 장성우(최영준 분)의 죽음이라는 아킬레스건까지, 구경이는 그야 말로 사랑에 빠질수밖에 없는 히어로의 캐릭터성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특히 그간 대부분의 대중문화에서 이런 설정을 부여받은 캐릭터들이 남자 주인공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그것만으로도 이영애가 그리는 구경이가 왜 특별한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실을 쫓는 주인공의 맞은 편에는 언제나 또 다른 주인공, '빌런'이 있다. '구경이'에서는 케이가 바로 그 인물이다. 케이는 자신이 애착을 가진 사람들이 스쳐지나가듯 하는 "저런 놈은 죽여야지!"라는 말 한마디에 아무렇지 않게 "그럼 죽여줄까?"라고 받아치는가 하면, 살인을 할때도 죄책감은 커녕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다. 무해한 미소 뒤에 숨겨진 섬뜩함, 이 극명한 온도차는 빌런으로서는 더할나위 없이 매력적일수 밖에 없다.

단순히 악하기만 한 빌런이 아닌 살인의 타깃이 대부분 부당한 행동을 저지른 적이 있는 인물이라는 점, 그 누구도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도록 죽음을 완벽히 사고사 또는 자살로 위장한다는 점 등 비틀린 '권전징악'이라는 신념을 가졌다는 것 또한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자신을 쫓는 구경이의 존재를 알고 있음에도 도망치기는 커녕 흥미롭게 지켜보며 마지막까지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움직이는 케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서로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마주한 두 사람이 이어나갈 앞으로의 전개에 더욱 궁금증이 커진다.
나제희, 용국장(김해숙) 또한 단순히 조력자에 그치지 않는다. 매 에피소드마다 짧게 등장하는 여성 조연 캐릭터마저도 각기다른 서사를 갖고 극 전개에 한 축을 맡는다. 이들은 각자 마음속에 담아둔 욕망이 있으며, 그를 이루기 위해서는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특히 용국장과 구경이의 목욕탕 첫 만남신은 누아르의 한 장면을 보는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성별만 바뀌었을 뿐인데, 그토록 익숙한 장면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여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힘과 권력을 얻기 위해서라면 남을 이용하는 것도 서슴치 않는 캐릭터성이 단순히 '악녀'에 그치지 않는다는점까지, '구경이'는 그간 다채로운 여성 캐릭터들의 이야기에 목말라있었던 시청자들에게는 단비같은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총 12부작인 '구경이'는 반환점을 돌았다. 케이의 유일한 가족이자 가장 소중한 존재였던 정정연(배해선 분)이 죽음을 맞이하고, 이를 본 케이의 마음 속에서 어떠한 스위치가 켜진 가운데 이들이 앞으로 그려나갈 폭풍같은 전개에 기대가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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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