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둔 예민한 시기, 정치의 본질을 세상 유쾌하게 들여다 본다. 거창한 음모론이나 흑막의 악역 같은 클리셰를 깨부수고 진정한 '재미'로 정치 블랙 코미디를 풀어낸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의 윤성호 감독을 만나봤다.
웨이브(wavve) 오리지널 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극본 김홍기 박누리 최성진 강지현 윤성호, 크리에이터 송편, 연출 윤성호, 이하 '이상청')는 갑작스레 문체부 장관으로 임명된 금메달리스트 출신 셀럽 이정은(김성령 분)이 남편인 정치평론가 김성남(백현진 분)의 납치 사건을 맞닥뜨려 동분서주하는 1주일 사이 엉뚱하게도 대선 잠룡이 되어가고, 덩달아 대한민국의 정세도 격변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다. 지난 12일 12회 분량이 전편 공개된 가운데, 웨이브를 통해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상청'은 정치 블랙 코미디라는 분명한 장르적 재미를 기발할 정도로 엉뚱한 전개와 아이러니를 통한 서스펜스 속에 유쾌하게 풀어냈다. 그 배경에는 김홍기, 박누리, 최성진, 강지현 등 다채로운 작가진과 윤성호 감독의 창작 네트워크 집단이라 할 수 있는 송편 멤버들의 협업이 있었다. 물론 윤성호 감독 역시 연출 뿐만 아니라 대본 집필 단계부터 헤드라이터이자 스토리에디터 노릇을 자처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에 윤성호 감독은 "사실 정말 힘들었다. 촬영 하면서도 촬영 마치고 그 날 밤에 다시 대본 고쳐가면서 작업한 식이라 어떻게든 다 이름을 올리고 싶었다"라고 너스레를 떨며 애착이 큰 만큼 힘들었던 촬영 비화를 털어놨다.

실제 그는 "생각보다 고생을 했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웨이브 측에서 일찌감치 제안을 받아 완전 사전 제작으로 진행해 수월할 줄 알았지만, '정치'와 '코미디' 두 가지 키워드를 참신하고 재미있게 엮기가 쉽지 않았다고. 윤성호 감독은 "생각 이상으로 정치로 스토리 텔링르 하는 매개체가 많았다. 팟캐스트, 방송, 유튜브 심지어 기성 언론까지. 다들 워낙 재미있는 정치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 집필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라고 했다.
특히 여의도와 청와대 등 국내 정치 현주소부터 세종시에서 근무하는 현실적인 공무원들의 이야기, 대북 이슈, 성폭력 범죄, 스토킹, 납치 사건 등 자칫 예민해질 수 있는 다양한 소재를 하나의 이야기로 개연성 있게 엮어내기가 어려웠다고. 이에 윤성호 감독은 실제 촬영 기간에도 낮에는 촬영하고 밤에 촬영을 마치고 집에 가서 대본을 다시 고쳐가는 열정을 발휘하며 작품에 임했다. 작품이 모두 공개된 뒤 비로소 한숨 돌리며 여유와 휴식을 찾는 그였다.
이러한 창작 과정에서 당초 시트콤으로 기획된 '이상청'이 정극 드라마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국내 시트콤 성공작 중 하나인 '하이킥' 시리즈의 오랜 팬을 자처한 윤성호 감독은 "예전에 시트콤이 재미있던 건 매일 집에 가서 보는 재미가 통했기 때문이었다. 다들 누군가의 일상다반사를 보면서 즐거워했는데, 그게 가능하려면 '아카이빙'이 돼야 했다. 성공한 시트콤들은 일주일 내내 1년을 보다 보니 극 중 인물들에게 몰입하는 게 가능했다. 그런데 12회 분량 만으로는 소소한 일상의 재미를 전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려면 감정의 부피가 커야 할 것 같더라"라며 이유를 설명했다.

그 결과 '이상청'은 충분한 반전과 풍부한 아이러니로 가득 찬 작품이 됐다. 윤성호 감독은 "집필 과정에서 '이건 아이러니가 충분하지 않아요'라는 말을 엄청 썼다. 에상과 다른, 기대한 것과 다른 인생의 아이러니와 상황의 아이러니까지 두 번은 꼬아 볼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의도하지 않은 일이 의도한 게 되고, 의도한 일도 의도한 대로 안 되는 걸 통해 '이렇게 정치를 하려는 게 아이러니 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가운데 '이상청'은 현실 정치를 놓치지 않았다. 기발한 사건 전개와 아이러니를 통해 재미를 주는 것은 물론 주인공 이정은과 그가 장관으로 있는 문체부 소속 공무원들의 이야기를 통해 정치인을 전문직으로 조명한 것. "정치 드라마를 일종의 전문직 드라마로 봤다"는 윤성호 감독은 "기존 정치 드라마들을 보면 정치인을 범죄자로 보거나, 정계를 사기와 협잡이 난무하는 생태계로 봤다. 아니면 정의로운 소시민이 혜성처럼 등장해 모두를 휘어잡을 수 있도록 묘사하거나. 그 양쪽 다 진짜 정치가 아니라고 봤다"라고 밝혔다.
이어 "병원에서 의사가 나와 수술을 하고, 경찰이 사건 현장을 수사하는 걸 조명하는 게 전문직 드라마라면 정치인은 무엇의 전문가인지 생각했다. 결국 정치인이 하는 가장 큰 일은 '예산을 나누는 일'이었다. 정확히는 '예산의 몫을 나누는 일'이라고 봤다"라며 "공동체가 돌아갈 수 있게 세금으로 거둔 예산의 몫을 나누는 데 있어서 그 주도권을 쥐기 위한 싸움을 하는 게 정치인"이라고 평했다.

나아가 그는 "예산의 몫을 나누는 위치에 계속 있으려면 표를 얻고 마음을 얻어야 하는게 그게 가능하게 만드는 게 스토리 텔링이었다. 여기에 이정은은 어쩌다 초선의원이 돼 전문직이 되기 위한 과정을 겪은 사람인데 결정적인 순간 이야기를 윤색하고 환호하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인 거다. 그런 사람이라면 시청자들도 비판적 지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라고 했다.
실제 극 중에서는 공무원들이 예산에 관해 치열하게 논의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작중 이정은이 기획재정부 라인의 공무원이 실책하자 과감하게 해임하며 그로 인한 50억 원의 예산 공백이 생기자 문체부 직원들이 예산 절감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것. 다소 우화적인 장면이긴 하지만 이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공무원들이 어떤 일을 하며 정치에 참여하는지가 생생하게 등장한다. 이에 대해 윤성호 감독은 "정치 드라마들을 보면 공무원들이 소외된다. 마치 투명인간처럼. 그렇지만 실제 공무원들의 일상은 그렇지 않다. 공무원들을 어화둥둥 띄워주려던 게 아니라 그만큼 온갖 일을 겪고,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존재라는 걸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오히려 우리 드라마 속 장면들도 실제 공무원들이 보면 '너무 나이브하다'라고 느낄 것"이라며 웃었다.

이처럼 현실을 반영하려고 한 덕분일까. '이상청'은 실존 인물들을 연상케 하는 캐릭터와 상황들로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윤성호 감독은 "저희 드라마의 첫 번째 원칙은 90%가 상상으로 쓴 거였다. 방송이 공개된 지금 와서 보니 극 중 어떤 인물이나 상황이 현실과 비슷해 '저 사람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막상 대본을 쓰고 촬영할 당시에는 전혀 현재와 달랐던 게 많았다"라며 놀라워 했다.
무엇보다 그는 "상상으로 이야기를 쓰려고 한 게 현실과 다른 중의적인 의미를 전하려고 한 것도 있지만 무조건 '재미있으면 된다'라고 생각했다. 올해 초에 가수 나훈아 님의 콘서트가 너무 재미있어서 모두 난리가 나지 않았다. 실제 그 분의 공연을 보면 굉장히 마초적으로 대한민국을 노래했는데 너무 재미가 있다 보니 모두가 수용했다. 영화 '기생충'도 계급적 우화를 담고 있지만 너무 재미있게 잘 만들다 보니 모두가 좋아하는 작품이 되지 않았나. 재미가 있으면 모두가 그의 편이고 싶어 한다는 생각에 절대 제 개인적인 성향을 드러내거나 프로파간다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물론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상황들도 있었다. 가령 문체부 디지털소통팀 막내인 맹소담(김예지 분)이 공무원 합격 문자를 지우려는 남자친구와 헤어진 사건은 실제 사건을 각색한 것이라고. 이처럼 재미와 완성도를 위해 상상의 나래 속에 실제가 곁들어진 결과 '이상청'은 시즌2를 기대하게 만들며 애청자들의 호평을 사고 있다. 극 중 문체부 장관에서 물러난 이정은이 제목처럼 청와대로 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열띤 응원도 존재한다.
다만 윤성호 감독은 시즌2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현재로서는 확정된 것도, 장담할 수 있는 것도 없기 때문. 아이러니 하게도 확정된 게 없는 만큼 더욱 폭넓은 가능성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모든 빗장을 풀고 폭넓은 창작의 자유를 허락했다는 웨이브의 지원이 '이상청'의 새 시즌도 열 수 있을까.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 아니 시즌2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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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웨이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