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감동 '바사삭'… ‘프로페셔널’ 이름이 낯뜨거운 여자배구
OSEN 조형래 기자
발행 2021.11.23 15: 00

도쿄올림픽에서 구기 종목들이 모두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던 가운데, 여자배구 대표팀만큼은 투혼과 감동의 메시지를 전했다.
국가대표팀의 주축이었던 이재영과 이다영(이상 PAOK), 쌍둥이 자매가 학교폭력 논란 후폭풍으로 대표팀 자격을 상실한 상황에서 ‘여제’ 김연경(상하이)을 필두로 한 ‘라스트 댄스’ 무대가 화려하게 펼쳐졌다. 기적을 연출한 여자배구 대표팀은 비록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4강 위업을 달성하면서 금의환향했다.
김연경을 비롯한 대표팀 멤버들은 화제의 중심이 됐다. 귀국 직후 컵대회를 치른 뒤, 김희진, 김수지(이상 IBK 기업은행), 양효진(현대건설) 등 김연경과 오랜 세월 국가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선수들은 예능프로그램 섭외 1순위에 올랐다. 남자배구를 능가하고 프로야구까지 위협하는 인기 스포츠가 된 여자배구였고, 선수들은 ‘아이돌’ 처럼 대우 받았다.

최하위에 머물고 있는 IBK기업은행 선수단

그러나 선수들의 '아이돌화'가 '성역화'로 변질됐다. 실력 대비 많은 연봉을 받고 인기를 누리면서 현실을 망각했다. 인기에 취하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 선수는 팬들의 지지를 등에 없고 구단과 사령탑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존재가 됐고, 징징거리는 어린 아이처럼 어르고 달래야 구단을 운영할 수 있는 지경이 됐다.
프로페셔널의 근간을 흔들고 프로배구 V리그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수면 아래에서 쉬쉬했던 사건이 결국 수면 위로 드러나며 프로배구의 민낯이 공개된 셈이다. V리그 여자부 IBK기업은행의 얘기다.
IBK기업은행에서 임의해지 된 조송화 /OSEN DB
주전 세터이자 주장이었던 조송화를 둘러싼 논란이 배구계를 뜨겁게 달궜다. 조송화는 무단 이탈을 했고 이후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했다. 서남원 감독은 조송화의 이탈에 대해 “정확한 원인을 모르겠다. 내가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소통 부재의 지경에 이르렀음을 알린 바 있다. 그리고 조송화를 직접 지도하는 김사니 세터 코치까지 자리를 이탈했다. 스트레스로 포장이 됐지만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졌다. 개막 7연패 이후 현재 1승8패. 승점 2점으로 신생팀 페퍼저축은행보다 못하는 꼴찌로 뒤처진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았다. 오합지졸의 경기력의 원인은 구단 내부에 있었다.
그런데 IBK기업은행 구단은 상식을 벗어난 해결책을 냈다. 서남원 감독과 윤재섭 단장을 동시에 경질하고 김사니 코치를 임시 대행 체제로 앉힌 것. 사의를 표명한 김사니 코치에 대해서 구단은 “팀 정상화를 위해 힘써줄 것을 당부했다”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조송화는 복귀를 설득했지만 거부했고 구단은 임의해지를 결정했다.
이번 사태의 중심은 조송화, 그리고 김사니 코치다. 서남원 감독은 영문도 모른채 이들의 싸움에 휘말렸다. 구단은 감독과 선수들 사이를 중재하지 못할망정 사태를 더욱 키웠다. 선수들의 편에 서며 서남원 감독을 내쫓은 셈이 됐다. 전임 김우재 감독 재임 당시에도 선수들에게 권력의 완장이 채워져 있었고 구단은 이에 끌려 다녔다는 후문이다. 프로페셔널이라는 이름이 아까운 구단 행보를 거듭했다. 어쩌면 IBK기업은행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도쿄의 감동은 이미 깨진지 오래다. ‘여제’ 김연경은 IBK기업은행 조송화 사건이 발생한 뒤 자신의 SNS에 “겉은 화려하고 좋아 보이지만 결국 안은 썩었고 곪았다는걸..그릇이 커지면 많은 걸 담을 수 있는데 우린 그 그릇을 꽉 채우지도 못하고
있다는 느낌..변화가 두렵다고 느껴지겠지만 이제는 우리 모두가 변해야 될 시기인 거 같다”라며 여자배구판을 향해 자조섞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인기는 한순간이고 손에 잡히지 않는 먼지와도 같다. 언제까지 인기가 이어질지 모른다. 영광이 계속 이어질 수는 없고 끝없는 노력을 해도 인기가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자배구는 어렵게 흥행의 기회를 이렇게 스스로 걷어차 버릴 것인가.
이름만 ‘프로’일 뿐, 여자배구의 프로화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jhrae@osen.co.kr
김사니 IBK 임시 감독 대행의 현역 시절 모습 /OSEN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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