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3연속 우승' 서창훈, "월드컵 무대선 아직 피라미"
OSEN 강필주 기자
발행 2021.12.04 08: 16

"여기 나와서 보면 나는 아직 피라미에 불과하다."
국내 전국 무대서 사상 첫 3연속 우승으로 이름을 알렸던 서창훈(시흥시체육회)의 겸손함과 국제 무대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답이다. 
서창훈은 지난 8월 경남 고성군수배 전국당구선수권에서 이충복(시흥시체육회)을 꺾고 우승했다. 2012년 대한체육회장배 준우승 이후 9년 만에 결승 무대였던 것을 떠나 선수생활 12년 만에 처음 전국대회 우승이라는 감격을 안았다. 

[사진]파이브앤식스 제공

'다들 이제는 할 때가 됐다'며 서창훈의 우승을 축하해줬다. 그런데 서창훈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11월초 '태백산배'에서도 김준태(경북)를 누르고 우승하더니 25일에는 '대한체육회장배'마저 석권, 전대미문 3연속 우승을 이뤄냈다. 동시에 김행직을 밀어내고 국내 3쿠션 1위로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4일(한국시간) 샤름 엘 셰이크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이집트의 '파크 리젠시 샤름 엘 셰이크'에서 서창훈을 만났다. 서창훈은 "첫 우승 때는 그동안 공식 무대서 한 번도 넘어보지 못했던 이충복 선배를 이겨서 좋았다. 같은 소속팀 식구와 대결해서 우승까지 했으니 너무 좋아 눈물까지 흘렸다. 두 번째는 어떻게 하다보니 그 자리에 있었고 첫 승 때 우느라 세리머니를 못했다는 생각에 세리머니를 했는데 정작 인터뷰 때 무슨 말을 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3번째는 상대 황봉주(경남)와 함께 서로 욕심을 냈다. 봉주도 첫 결승이었고 나는 최초 3연승이 걸려 있었다. 우승은 했지만 경기 내용은 안좋았다"고 3연속 우승을 단 번에 훑었다.
그러더니 서창훈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는 말이 맞다. 실력은 아직 부족한 데 운이 좋았고 랭킹까지 1위가 됐다"면서 "오히려 월드컵에서 마음의 짐을 느끼고 있다. 그것을 내려 놔야 하는 데 더 부담된다"고 걱정부터 털어놓았다. 
실제 서창훈은 올해 가진 2번의 월드컵 무대서 신통치 않았다. 네덜란드서 열린 베겔 월드컵에서는 4라운드 조별리그(Q)에서 2연패로 탈락했고 샤름 엘 셰이크 월드컵에서는 본선 32강에서 1승 1무 1패로 16강 진출이 좌절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첫 월드컵인 베겔 대회 때는 오랜 만의 월드컵 무대라 시차적응에 실패했다 치더라도 두 번째 샤름 엘 셰이크 대회에서는 심리적인 부담 때문에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사진]파이브앤식스 제공
서창훈은 우승 전과 후 월드컵 무대가 달라졌다고 고백했다. "우승 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당구를 치면서 스스로 희열을 느꼈고 잘치는 사람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솔직히 성적보다는 그런 이유 때문에 월드컵을 나왔다"는 서창훈은 "그런데 우승 후 내가 어떻게 보여질 지에 대한 부담이 생겼다. 잘하다가 갑자기 못하거나 경기 내용이 좋지 못하면 어떡하나라는 강박증까지 생겼다. 더 잘해야 한다는 고민이 생겼다"고 호소했다.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경기력에 작용한다는 것이었다. 
서창훈은 "상대 때문에 멘탈이 깨질 수 있다. 하지만 톱 클래스 선수들은 그렇지 않더라. 그런 것을 신경쓰면 나만 손해다. 경기를 하다보면 항상 멘탈적으로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3연속 우승 때는 매 경기 '조금만 참고 집중하자, 내 공만 치자'라는 말을 주문처럼 되낸 것이 통했는데 여기서는 그렇지 못했다"면서 "이충복 선배가 '자부심은 갖되 너무 성적에 얽매지 말고 하던대로 하게 되면 내려 놓게 된다. 생각을 너무 깊게 하지 말라'고 하더라. 그런데 말처럼 쉽지 않다"고 씁쓸해 했다. 
그래도 한국을 대표한다는 마음가짐은 여전하다. 서창훈은 "내 목표를 말하기 전에 내 짐을 내려 놓는 것이 급선무"라면서도 "월드컵 무대에서 보니 나는 아직 피라미에 불과하다. 또 세계선수권도 앞두고 있는 만큼 진정한 국가대표라는 마음가짐으로 대회에 임할 것이다. 첫 세계선수권에 대한 욕망이 있다. 좋은 성적도 내고 싶고 또 언제 다시 국가를 대표할 지 알 수 없는 만큼 좋은 성적을 내고 싶은 것이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서창훈은 '축구선수' 출신이라는 이미지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드러냈다. 서창훈은 "축구는 여러 사람이 결과를 만드는 작업이다. 개인 기량보다는 전체적인 팀워크가 더 중요하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 탓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당구는 철저히 개인 기량에 기반한 스포츠다. 남탓을 할 수 없다. 또 집중력이 더 중요한 정적인 스포츠이기도 하다"면서 "앞으로는 '축구선수' 출신이라는 말보다 '당구선수' 서창훈으로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letmeout@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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