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외국인 또 있을까, 고별전 눈물 참고 투혼…마지막까지 아름다웠다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21.12.10 08: 10

이런 외국인 선수가 또 있을까. 레베카 라셈(24)이 IBK기업은행 선수로 가진 고별전에서 마지막까지 투혼을 보이며 유종의 미를 장식했다. 애써 눈물을 참고 웃으며 작별했다. 미모만큼 빛난 프로 정신으로 한국 배구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떠난다.  
라셈에게 9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KGC인삼공사와의 경기는 마지막 무대였다. 지난달 27일 GS칼텍스전을 앞두고 방출 통보를 받았지만 대체 선수 달리 산타나가 합류하기 전까지 4경기를 더 뛰었다. 곧 떠날 팀이라 마음이 떠날 법도 했지만 라셈은 마지막까지 몸을 던지며 온힘을 다했다. 
이날 경기 전 안태영 IBK기업은행 감독대행은 “라셈이 감정적으로 힘들어한다. (마지막 경기이지만) 그 부분에 대해선 따로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미 화성에서 마지막 홈경기를 마친 뒤 눈물을 쏟은 라셈이라 따로 말할 게 없었다. “라셈 웃으면서 갈 수 있게 잘하자”고 국내 선수들에게만 부탁했다. 

레베카 라셈 /OSEN DB

라셈은 1세트 초반 공격이 연이어 막히며 고전했지만 23-24 세트 포인트 위기에서 몸을 날려 디그에 성공, 승부를 듀스로 끌고 갔다. 마지막이 된 3세트에도 멀리 튄 공을 잡기 위해 광고판 앞까지 전력으로 달렸다. 시즌 중 방출된 외국인 선수답지 않게 끝까지 집중했다. 팀 최다 12득점을 올리며 분전했지만 고별전에서 팀은 셧아웃으로 졌다. 안태영 대행은 “경기를 이기고 라셈을 보내줬으면 좋았을 텐데 저도 선수들도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KOVO 제공
하지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라셈의 프로 정신은 큰 울림을 줬다. 경기 후 단체 기념사진을 찍은 뒤 모든 이들과 포옹을 나눴다. 선수들로부터 작별 선물을 받은 라셈은 두 눈이 붉게 충혈됐지만 눈물을 애써 참았다. 오히려 응원해주는 팬들을 향해 밝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라셈은 경기 전 이날 중계를 맡은 SBS스포츠를 통해 인터뷰를 자청, 국내 배구팬들에 마지막 인사도 했다. 라셈은 “마지막 경기라 감정이 벅차오른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이기고 싶다”며 “지금까지 팬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도 버틸 수 있었다. 성원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 가능하면 한국에 다시 돌아오고 싶다. 돌아오면 그때도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드래프트에서 6순위로 IBK기업은행에 지명된 라셈은 한국계 3세이자 빼어난 외모로 주목받았다. 할머니의 나라에서 성공을 꿈꿨지만 시즌 전부터 전망은 밝지 않았다. 외국인 공격수로서 위압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려대로 개막 후 라셈의 공격력은 저조했다. 세터들의 토스 질도 좋지 않았지만 라셈의 해결 능력도 떨어졌다. 공격 성공률(34.82%)은 외국인 선수 중 꼴찌였다. 
KOVO 제공
팀이 개막 7연패로 시작하면서 성적 부진의 화살이 라셈에게 향했다. 일찌감치 교체설이 나왔다. 실력으로 보여줘야 할 외국인 선수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그러나 주장 조송화와 김사니 코치의 무단 이탈을 시작으로 IBK기업은행의 내홍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초유의 격랑 속에 라셈도 큰 상처를 입었다. 경기 전 방출 통보라는 몰상식한 일 처리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눈물을 왈칵 쏟으며 충격을 받았지만 라셈은 프로 중의 프로였다. 감정을 추슬러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4경기에 집중했다. 팀의 주장이라는 선수와 레전드 출신 코치가 본분을 망각한 채 팀을 망치고 도망쳤는데 방출 통보를 받은 외국인 선수가 떠나는 순간까지 책임감을 갖고 직업의식을 보여줬다. 어수선한 팀에 몇 안 되는 진정한 프로였다. 
KOVO 제공
할머니의 나라는 상처를 줬지만 라셈은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떠났다. 미모만큼 빛난 라셈의 프로 정신은 마지막까지 아름다웠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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