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모’ 개연성 희생하고 로맨스 극대화..선택과 집중 ‘성공’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1.12.14 10: 05

[OSEN=김재동 객원기자]  “어쩌면 그때의 기억으로 버텨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정주서를 만나 행복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나타나주었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나는.”
KBS 2TV 월화드라마 ‘연모’(백승민 연출 한희정 극본)의 주인공 이휘(박은빈 분)가 13일 종방을 한 회 앞둔 19화에서 정지운(로운 분)에게 밝힌 말이다. 20부작 드라마 ‘연모’의 정체성을 함축한 말이다.
제목부터가 로맨스인 ‘연모’는 선택과 집중에 성공한 드라마다. 조선시대 궁중을 배경으로 ‘왕이 된 여자’와 그 왕을 사랑한 남자를 내세운 설정은 파격적으로 참신했다.

드라마는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이 로맨스를 가능하게 그리는 데에 집중했다. 당연히 개연성의 상당부분을 쳐냈다. 세손빈이 누워있는 산실청이 도륙당하기도 하고 백주에 내금위장 윤형설(김재철 분)의 눈앞에서 정석조(배수빈 분)의 손에 세자가 살해당하기도 한다.
조선이라면 당연했을 엄청난 파장들은 외면하고 수면 아래 묻어뒀다. 대신 쌍생이라 버려졌던 공주 담이(최명빈 분)의 비극, 오래비를 대신해 세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험한 운명을 설명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배역도 최대한 단순화했다. 최고의 안타고니스트 한기재(윤제문 분)는 마왕급 악역이다. 부연설명 없이 그저 권력욕의 화신으로만 그려진다. 그의 행동대장 정석조 역시 “그저 갈 길이 이 길 밖에 없었다”란 말로 자신의 악행을 설명하고 만다.
스토리의 생략도 많았다. 한기재가 만약을 위해 세곡선 탈취까지 벌이며 키우던 여연의 군사들은 19회가 되어서야 등장한다. 정쟁도 없다. 창천군(손종학 분)은 아무 힘 없이 퇴출되고 선대왕 혜종(이필모 분)대부터 한기재의 견제세력으로 힘을 밀어준 신영수(박원상 분) 역시 힘을 못쓴다. 나중에 부원군이 되는 병조판서 노학수(정재성 분) 역시 별 대사가 없다.
드라마는 개연성을 희생하고 스토리를 축약하고 캐릭터를 삭제하면서 이휘와 정지운의 로맨스에 집중했다. 신소은(배윤경 분), 노하경(정채연 분)은 연적으로, 창운군(김서하 분) 원산군(김택 분)은 걸림돌로 비중을 늘렸다. 반대로 이휘 최고의 조력자이자 서브 남주로서 삼각관계의 한 꼭지점으로 설정됐던 이현(남윤수)의 비중은 시나브로 줄어갔다.
등장인물 제각각의 서사와 사연을 풀어내다보면 시청자는 피곤해질 수 밖에 없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고 ‘연모’ 제작진은 휘와 로운에 천착했다.
두 사람 간 마음을 간질이는 다정한 음성, 살갗을 희롱하는 부드러운 손길, 달게 서로의 숨결을 호흡하는 짜릿한 순간들을 담는데 카메라와 시간을 할애했다. 로맨스 드라마다운 접근이다. 그리고 박은빈과 로운은 설레고 달뜨고 좌절하는 이휘와 정지운의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그려냈다.
‘연모’ 19화는 마치 종방처럼 전개됐다. 휘는 대왕대비(이일화 분)에게 자신이 쌍생으로 태어난 여아임을 밝히며 제현대군(차성재 분)에 양위할 뜻을 밝히고 중전 노하경에게도 자신이 여인임을 밝힌다. 지운의 뜻을 알아챈 신소은 역시 파혼을 선언한다. 소은은 휘에게 마음을 다바쳐 자신에게 나누고 덜어줄 마음이 지운에게 더는 없다는 사실을 통감할 수 밖에 없었다.
정석조는 아들과 가족을 위해 한기재를 배신, 아들 지운과 함께 한기재가 선왕을 독살할 때 사용한 소낭초를 찾는 작업에 동참했다가 원산군과 힘을 합친 한기재에게 잡힌다.
지운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순간 군사를 대동한 이휘가 등장해 한기재를 선왕 독살과 역모죄로 의금부에 하옥시키며 상황은 일사불란하게 정리되는 듯 했다. 실제 조선이라면 나라가 뒤집어질 이 거창한 역모옥사도, 임금의 양위선언도 ‘연모’답게 소소하게 넘어갔다.
하지만 한 회가 더 남았다. 당연히 한기재가 의금부를 파옥하고 사라진다. 휘가 파옥현장을 둘러보며 낭패하는 순간 어둠 속에 악의로 번들번들한 횃불들이 거침없이 궁으로 향한다. 원산군이 이끄는 여연의 군사들이다. 오래 준비된 일이었으니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파옥한 한기재는 궐문을 점거하고 그런 원산군을 맞이한다.
클라이맥스에서 맞은 최대의 위기. 드라마 ‘연모’가 그려온 휘와 지운의 애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얘기가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을지 끝까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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