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무해', 공효진이라는 진정성이 있었기에 [인터뷰 종합]
OSEN 장우영 기자
발행 2021.12.17 12: 33

인터뷰를 하기로 약속한 카페. 매장에서 커피를 마실 때면 머그컵으로 받았겠지만,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녹록치 않다. 그래서 받아든 일회용 플라스틱 컵. 시간에 맞춰 구민정 PD가 도착했다. 그가 손에 쥐고 있는 건 다름아닌 텀블러. 환경 예능을 연출한 PD와 인터뷰 하기로 했는데 ‘아차!’ 싶었다. 순간 텀블러를 챙기지 못한 본인이 부끄러워졌다. 미안한 마음을 전하면서 시작한 인터뷰, 바로 ‘오늘부터 무해하게’ 구민정 PD와 만남이었다.
흥미로웠다. 어떻게 환경 예능을 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더 흥미로운 지점은 구민정 PD도 처음에는 환경을 크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 구민정 PD가 배우 공효진에게 처음 제안한 건 캠핑 예능이었고, 이를 계기고 환경에 대한 ‘스위치’가 켜졌다. 그는 “코로나가 심해지기 전 (공효진에게) 캠핑 예능을 제안했다. 당시 환경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고, 예능적인 베이스에 환경 요소를 양념으로 넣어보자는 기획안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후 환경 예능과 캠핑 예능이 많이 나오면서 접게 됐다. 그때부터 켜진 환경에 대한 스위치가 계속 이어졌다. 주식을 해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 기업의 비재무적인 요소)를 말하고, TV를 틀면 탄소, 기후 변화, 코드 레드 이야기가 나온다. 공부하다 심각한 문제라고 깨닫고 예능에서도 한번 시도를 해봐도 될 타이밍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KBS 제공

KBS 제공

그렇게 첫 발을 내디딘 ‘오늘부터 무해하게’. 구민정 PD의 원픽은 단연 공효진이었다. 공효진 만큼 환경 문제에 대해 진정성을 가진 이도 없었던 것. 하지만 ‘환경 예능’이라는 자체가 KBS2보다는 KBS1에 어울릴 법 했고, 이제 막 입봉하는 PD에게도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구민정 PD는 “환경 예능 자체가 회사에서도 우려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기후 위기, 탄소 위기도 심각하기에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예능 포맷으로 하고 싶었다. 기획 단계부터 고민이 많았고, 공효진과 미팅을 한 뒤 이만큼의 진정성이라면 해볼 이야기와 이야기들의 파생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공효진은 10년 넘게 환경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는 분이다. 제일 처음부터 섭외를 하려고 했다. 사실 섭외가 될 줄은 몰랐다. 4개월 정도 섭외 기간이 있었는데, 초기에는 2박 3일 정도 자전거 캠핑을 하는 콘셉트였는데, 그렇게 해서 어떻게 다 담을 수 있겠냐며 ‘한달은 찍어야 한다’고 하셨다. 서로 맞추고 하면서 일주일로 정했고, 일주일 동안 탄소 없이 생활을 하고, 나무 1만 그루를 심어보자면서 확장이 됐다. 매일 전화해서 ‘그런데요 PD님’하면서 아이디어를 냈다”고 웃었다.
공효진의 가세로 구민정 PD가 생각하고 있던 기획과 방향은 더 확장됐다. 공효진은 공동 기획자로 이름을 올릴 만큼 ‘오늘부터 무해하게’에 큰 힘을 쏟았다. 공효진이 환경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공효진은 공동 기획으로서 이천희-전혜진 부부(천진부부)의 섭외 등에도 힘을 보탰다. 구 PD는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 천진부부와 이야기를 또 하고 있었다. 캠핑하는 콘셉트로 촬영을 해보고 세 명의 케미면 지치지 않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리고 두 사람이 환경에도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 같이 해서 이야기 나눈 부분을 공유하고 맞춰 갈 수 있을거란 확신을 한 것 같다. 그렇게 공효진이 섭외까지 마치고 ‘오늘부터 무해하게’를 한다고 확답을 주기까지 4개월이 걸렸다”고 말했다.
구민정 PD는 “‘오늘부터 무해하게’가 입봉작이지만, 10년 넘게 일을 하고 있었는데 공효진, 이천희, 전혜진과 함께 한 게 내게는 큰 자산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일을 하면서 출연자와 기획에 대해 소통한 걸 본 적이 없다. 촬영 이후에도 촬영한 것에 대해 방향성 등에 이야기를 나누는 등 뜨겁게 작업을 했다. 공효진, 이천희, 전혜진이 이른바 ‘짬바’가 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리더 같이 이끌어주기도, 선배처럼 다독여주기도 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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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효진의 리더십이 빛난 건 ‘오늘부터 무해하게’ 3회다. 죽도에서 첫 날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그루(화폐 단위)에 집착하는 모습이 누구에게도 어필이 안된다며 “우리의 톤 앤 매너를 못 찾은 건데 우리의 타깃을 잘 잡아야 한다. 정신없이 촬영하다보니까 처음 생각한 걸 잊게 되니까 리마인드 해야 한다. 정신 놓고 있으면 반 끝난다. 그럼 그냥 여타 예능이다”라고 문제를 제기한 것. 이에 출연자들과 제작진은 긴급 회의를 통해 프로그램의 방향을 다시 생각했고, 여타 예능과 같은 길을 갈 뻔한 ‘오늘부터 무해하게’는 이를 계기로 자기만의 톤 앤 매너를 찾았다.
구민정 PD는 “‘그루’라는 건 탄소라는 게 어떻게 배출되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였다. 그런데 공효진이 이야기한 부분은 거기에 연연하면 여타 예능과 같아지게 될 것 같다는 우려였다. 쉽게 말하면 ‘머니게임’ 같아지는거다. 누가 썼느냐 하면서 서로 간의 갈등이 생기는 그림이 나올텐데 공효진은 처음부터 아예 다른 그림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기존에 있던 형식의 그림, 예능을 할 거면 할 이유가 없다였다. 잠시 촬영을 멈추고 회의를 하면서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끼리의 이야기가 되면 안된다’, ‘확장되어야 할 것 같다’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우리끼리의 이야기가 되면 안된다’는 이야기는 SNS 라이브로 이어졌다. SNS 라이브를 통해 시청자들과 소통하고, 일상 속 탄소 줄이기, 쓰레기 줄이기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MZ세대로 대표되는 시청자들은 적극적인 자세와 빠른 피드백으로 ‘오늘부터 무해하게’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그들이 바로 ‘꿀벌’(애칭)이다. 구 PD는 “꿀벌들이 좋은 역할을 해줬다. 우리들끼리 이야기로 끝날 수 있는 부분에서 더 나아가 확장이 되고 기업들과 협업할 수 있었던 건 꿀벌들 덕분이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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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효진이 뉴스에 나가서도 언급했던 MZ세대. 정보를 받아들이는 양이 많고, SNS 활용법이 익숙한 이들은 환경 문제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오늘부터 무해하게’의 SNS 라이브를 접한 뒤 관련 프로젝트에 대해 대기업을 해시태그하는 등 협업을 도왔다. 그리고 산림청, E마트, LG생활건강 등의 관공서와 대기업이 응답했다.
구민정 PD는 “(산림청, E마트, LG생활건강 등에서 SNS로) 응원한다고 댓글을 달거나 DM(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면서 전개가 됐다. 기업이나 기관이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었던 건 그쪽에서도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게 화두고,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타이밍이 맞았다”며 “하지만 막상 했는데 호응이 기대만큼 없거나 외면을 받으면 어쩌나 싶은 우려와 부담은 있었다. 종이팩 생수도 만들었지만 ‘우리끼리 좋은 일 했네’에서 끝나는 게 아닌가 싶어 우려가 됐다. 현실화 할 수 있을지와 소비자들의 호응도에 대한 부담, 용두사미가 되면 안되지 않느냐. 그래서 촬영한 뒤 관계자들을 진짜 많이 만나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관련 제품들이 시판됐고, 마지막회에서는 직접 마트에서 소비자들을 만나 해당 제품에 대한 피드백과 반응을 듣는 모습이 나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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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일이 커진 ‘오늘부터 무해하게’. 갑자기 소비자 대표가 되어버린 멤버들 사이에서는 멘붕이 있기도 했지만 이들은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충분히 해내며 성공적으로 해당 프로젝트를 마무리지었다. 공효진, 이천희, 전혜진의 역할이 구분되어 있어 시청자들도 보기 편안했고, 이들의 케미는 ‘절친’, ‘찐친’ 이상이었다.
구 PD는 “전혜진은 참 해맑다. 육아를 하면서 공백이 길었는데, 그만큼 순수한 리액션이 나올 때가 있다. 자연을 보고 해맑게 좋아하고, 어떤 상황에 대해서는 진짜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이는 스타일이다. 도화지 같은 분이라서, 통통 튀는 리액션 덕분에 편집할 때 좋았다”, “이천희는 진짜 일을 많이 했다. 앉아있는 걸 보기 힘들 정도였다. 일을 하면서도 다음 것을 생각하며 손을 움직인다. 그래야 안정이 되는 스타일 같은데, 그래서 고마웠다. 일주일 동안 그 안에서 생활하는 게 쉽지 않은데 필요한 것들을 뚝딱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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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효진은 ‘공기획’부터 ‘공블리’까지, 다채로운 모습을 보였다. 리더처럼 이끌고, 선배처럼 다독여주면서 프로그램을 이끄는 그에게서는 ‘공대장’의 면모가 자주 보였다. 하지만 최준(김해준)이 죽도에 오면서 ‘공블리’가 됐다. 구 PD는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이 오니까 해맑은 소녀가 됐다. 그런 ‘공블리’스러운 면도 있구나 해서 신기했다. 김해준은 접점이 없어서 섭외를 많이 고사했었다. 하지만 와서 3~4시간 있는 동안 1회 분량을 만들어주셨다. 그리고 환경 문제에 대해 일반인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봐주셔서 시청자들이 이해하는데 더 도움을 받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여타 예능과는 다른 길을 가면서 예능의 새로운 지평을 연 ‘오늘부터 무해하게’는 시즌2도 기대가 되는 상황이다. 구민정 PD는 “더 일상으로 들어와도 좋지 않을까 한다. 일상에서 어떻게 해야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을지, 어떻게 실천을 해야할지 등에 대해 일상 관찰을 하거나 기업들과 협업해 더 판을 크게 해서 업사이클링 패션쇼를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구 PD는 ‘오늘부터 무해하게’에 대해 “용감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환경 예능을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되게 큰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이 시작을 진짜 진정성이 있는 분들과 했다는 것 자체가 좋았고, 사람들이 좋아하고 재미있어 하는 부분을 신경쓰지 않을 순 없지만 너무 그 부분에 치우치지 않게 오히려 신선한 것들을 많이 시도했다”며 “진정성을 갖고 의미있게 만들어가자는 점에 의기투합해서 만들었던 시작 같다. 돌이켜보면 긴 시간이었고, 버라이어티한 게 많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뭔가 시작을 했다, 뭔가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탄소와 기후 변화를 아예 전면에 내세운 예능은 그동안 없었다. 그동안 KBS가 했던 예능을 하고, 식상하고, 자가복제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오늘부터 무해하게’는 신선하고, 공영방송에서 해야할 법한 예능을 시도했다는 부분들에 대해 다들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시는 부분들이 있다. 이제 트렌드를 선점했으니, 꾸준하게 이어가고 싶다. 기후 변화는 현재도 진행이 되고 있고, 지금 상황으로는 앞으로 나빠질 일 밖에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KBS도 공영성의 측면에서 이걸 계속 가져가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있고, 더 짜임새 있게 발전시켜 나가는 게 앞으로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구민정 PD는 “‘오늘부터 무해하게’는 내게 너무 행운이다. 어떻게 내가 살아가면서 공효진, 이천희, 전혜진과 함께 프로그램을 해보겠느냐. 타이밍이 좋았고, 진정성을 갖고 했으면 좋겠다는 부분에서 서로 뜻이 잘 맞아서 진행이 됐다. 행운이고 감사하다. 함께 해 온 과정 자체가 잊지 못할 2021년인 것 같다. 앞으로 내 PD 인생에 있어서도 중요한 시작점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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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가까이 인터뷰를 하고, 함께 환경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니 내가 나름대로의 환경을 위해 바로 실천해볼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이 됐다. 그리고 어렴풋이 생각만 해왔던 제로 웨이스트, 탄소 줄이기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기로 했다. 텀블러 사용과 플로깅으로 말이다. /elnino8919@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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