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닮은 사람’ 속 이일성은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한때는 프로 당구선수였지만, 지금은 매일같이 술에 절어 있기 바쁘다. 더군다나 누군가의 꾐에 빠졌다고 하더라도 납치극을 벌였고, 종래에는 사람을 칼로 찔러 상해를 입히기까지 했다. 말 그대로 회생 불가의 벼랑 끝에 몰린 인물이지만, 이를 연기한 서진원은 “욕심나는 역할”이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서진원은 최근 OSEN 사옥에서 JTBC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 종영 인터뷰를 진행했다. 너를 닮은 사람’은 아내와 엄마라는 수식어를 버리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던 여자와, 그 여자와의 짧은 만남으로 ‘제 인생의 조연’이 되어버린 또 다른 여자의 이야기.
그는 “처음에 ‘너닮사’ 대본을 받았을때 너무 훌륭한 소설 같은 느낌이었다. 한 번에 대본을 끝까지 다 볼 정도로 좋은 시나리오였다. 작가님이 처음 제안 했을 때 ‘나쁜 역할인데 배우 이미지가 괜찮겠냐’고 묻더라. 하지만 저는 나쁜 역할이 아니라 현실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해서 ‘좋다’고 했다. 극중 이일성이 주영이(신혜지 분) 아빠 역할인데 아버지로서 공감이 됐다. ‘만약 내가 이일성이었으면 어떻게 했을까’하고 대입해서 작품 임하게 됐다”며 “마지막 방송을 보고 나서도 여운이 남아있더라. 다른 역할 했을 때보다도 훨씬 많이 마음속에 남아있었던 작품이고 역할이었다”고 종영 소감을 전했다.
서진원은 이일성 역에 대해 “배우로서 욕심이 생기는 캐릭터다. 이런 역할을 소화하면 배우로서 훨씬 더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기때문에 마음에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인적인 이득과 여러가지 복합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역할이었다. 누군가는 이일성을 두고 ‘무섭다’고 하는데, 저는 사실 무섭다고는 생각 안 했다. 현실적으로 충분히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이일성은 감정적으로 날카로움이 부각된 인물. 서진원은 “‘이 사람이 환각 상태인가?’ 싶을 정도로 몽환적이다. 헛소리도 하고. 그런 부분을 접근할 때 조심스러웠다. 너무 가면 오버 하는 걸로 보이니까. 캐릭터 잡을 때도 작가님과 상의 많이 했고, ‘선배님이 생각하는 거 반만 갔으면 좋겠다’고 해서 캐릭터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감독님이 하루는 ‘선배님이 연기하는걸 보는 게 재밌다. 오늘 어떻게 만들까 궁금하다’라는 얘기를 하더라. 칭찬이면서 부담이기도 하다. 감독님은 준비한 걸 다 보여주게끔 하는 스타일이다. 교도소 안에서 안현성(최원영 분)이 면회 왔을 때, 이일성이 철창에 머리를 박고 분노하는 게 있다. ‘초록물고기’라는 영화에서 한석규 선배가 차 앞유리에 머리를 박고 죽을 때 콧김이 나오는 장면이 있다. 그때 그걸 오마주 해보고 싶어서 했는데 감독님이 좋아하셨고, 그대로 나갔다. 그런 장면이 몇 군데 있었다. 재밌기도 하고, 배우로서 도움도 많이 됐다”고 전했다.
‘너를 닮은 사람’은 배우들의 명연기가 돋보였던 작품이기도 하다. 서진원은 이 모든 것이 스태프들 덕이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는 “연기를 잘 할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스태프들의 노고가 컸다. 배우들은 연기만 딱 할 수 있게끔, 진짜 고 퀄리티 현장이었다”고 감탄했다.
서진원은 ‘너를 닮은 사람’을 비롯해 올 한해만 여섯 작품으로 시청자들과 만났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방영했던 JTBC ‘런온’과 영화 ‘구원’까지 더해지면 무려 여덟 개. 서진원은 “겹쳐서 찍을 땐 바쁘지만, 잘 조절해서 겹치는 게 거의 없었다.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그쪽에서 원한다면 소모적인 게 아닌 이상 배우로서 해야 한다는 게 철칙이다. 무조건 하면서 생각하는 걸 좋아한다. 모토가 ‘뛰면서 생각하자’다. 물론 매니저들이 일정을 조절하는 데 힘을 많이 줬다”고 설명했다.
어느덧 데뷔 23년차인 그는 그간 쉼 없이 작품활동을 이어오며 다작 배우로 활약 중이다. 그럼에도 서진원은 “지금도 더 좋은 작품 하고 싶다”고 열정을 드러냈다. 최근 바쁜 일정을 마치고 영화 후반 작업을 기다리느라 연말까지 한 달 정도 여유가 생겼다고 밝힌 그는 “워커 홀릭 같다. ‘불안한데?’라는 생각 없지 않아 있다”면서도 “즐기기로 했다. 너무 이런 시간 없었던 것 같다”고 웃었다.

이 같은 활동의 원동력은 “노동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제 또 하나의 모토가 ‘철들지 말자’다. 철이 드는 순간 현실을 보고 경직되면서 돈을 쫓아간다. 제가 결혼해서 아이도 있지만 고맙게도 와이프가 현실적인 걸 많이 신경써준다. 그래서 저는 신경 안 쓰려고 한다. 작품을 하면서 즐긴다. ‘놀자’는 느낌으로 하다 보니 즐거운 거다. 작든 크든, 내가 필요한 역할이면 이걸 어떻게 보여주고 어떻게 만들어갈지 창작자로서 플레이하는 걸 즐기자는 주의라서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 오히려 ‘이렇게 만들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또 하나는 훌륭한 후배들의 존재라고. 서진원은 “50대가 되면서 후배들과 차이가 생긴다. ‘50대가 되면 말을 줄이고 지갑 열어라’라고 하지 않나. 실제로 맞는 얘기다. 다만 지갑을 무턱대고 열 수 없지 않나. 후배들의 얘기를 들어보기도 하고 어울리려고 하면서도 부담되지 않으려 한다. 그런 것도 원동력이자 자극이 된다. 너무 좋은 후배들이 많다. ‘빈센조’, ‘슬의생’, ‘너닮사’ 때도 그렇고 ‘어떻게 저렇게 연기하지?’하면서 후배들한테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그런 서진원에게 ‘너닮사’는 자신을 더 숙성시킬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그는 “이일성은 영원히 남을 소중한 캐릭터고, ‘너닮사’는 배우로서 깊이감을 주고 숙성 될 수 있는 계기가 된 작품”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가 알 파치노를 좋아한다. 그분 영화나 이야기들을 많이 참고하는데, ‘배우는 계속 반복, 반복, 실패, 실패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성장해 나가는 자신 발견할 것’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하고싶은 걸 반복하고 실패도 해보고. 후배들이 오디션 볼 기회가 없다고 하는데 저도 그렇게 자라왔다. 배우란 계속 시험대에 오르는 것이기 때문에 그걸 두려워하지 않고 즐기면서 도전해나갔으면 좋겠다고 후배들한테 말하고 싶다. 저도 그렇게 하고 싶고. 내년에도 그렇게 도전하고 즐기면서 가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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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OSEN 박준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