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소매 붉은 끝동’ 이산 살릴 금등지사는 어좌 뒤 일월오봉도에?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1.12.18 10: 42

[OSEN=김재동 객원기자]  세손 이산을 살릴 금등지사는 어좌 뒤에 펼쳐진 일월오봉도, 혹은 일월오악도에 숨겨져 있다?
MBC 금토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이 대리청정중인 세손 이산(이준호 분)에게 닥친 또 한번의 위기를 다룬 가운데 그 타개책으로 ‘금등지사’를 꺼내들었다.
세손이 영조에게 존호를 바치기 위해 주관한 연회석상에 올라온 간장게장과 단감은 재위기간 내내 배다른 형 경종의 독살설에 시달려온 영조(이덕화 분)의 아킬레스건이다.

장희빈의 아들 경종은 재위 4년 만에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노론은 경종 즉위 직후부터 경종의 병약함을 빌미로 압박, 연잉군 이금을 세제로 책봉케했다. 희빈 장씨를 사사한 노론이고 보면 그녀의 소생인 경종이 보위를 유지할수록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리고 병약했던 경종은 재위 4년을 넘긴 직후 병증에 시달리다 자리에 누운 지 며칠만에 급사한다. 당시 대비(인원왕후)전에서 올린 간장게장과 단감을 내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세제 연잉군이 진어했고 그것이 병증을 악화시켰다는 독살설이 만연해 영조는 즉위 초부터 이인좌의 난 등에 시달려야 했다.
그 끔찍한 트라우마를 자극한 단감과 간장게장. 영조는 그 주범을 평생 자신을 원망했을 며느리 혜빈 홍씨(강말금 분)로 단정짓고 달궈진 부지깽이를 휘두르지만 이산이 맨손으로 잡아채며 만류한다.
다시 한번 폐위의 위기에 몰린 세손을 구명할 방법을 몰라 덕임(이세영 분)이 전전긍긍할 때 서상궁(장혜진)과 함께 광한궁의 옥에서 구출해낸 박상궁(차미경 분)이 세손을 구할 방책이라며 금등지사를 언급한다.
‘금등지사’는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인 일을 후회하며 쓴 책으로 알려졌으며 남인 체제공에게 맡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내막은 정조실록 38권, 정조 17년 8월 8일 무진 1번째 기사에서 찾아진다.
“전 영상(체제공)이 도승지로 있을 때 선조(先朝)께서 휘령전(徽寧殿)에 나와 사관(史官)을 물리친 다음 도승지만을 앞으로 나오도록 하여 어서(御書) 한 통을 주면서 신위(神位)의 아래에 있는 요[褥] 자리 속에 간수하도록 하였었다. 전 영상의 상소 가운데 즉 자 아래의 한 구절은 바로 금등(金縢) 가운데의 말인 것이다.
내가 처음 왕위에 오른 병신년 5월 13일 문녀(文女·숙의 문씨) 의 죄악을 드러내어 공포할 적에 전 영상이 윤음(綸音)을 교정하는 일에 참여하여 아뢴 것이 있었고 승지와 한림(翰林)을 보내어 이를 받들어 상고한 일까지도 있었다.
..금등 속의 말은 하나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요 하나는 지극한 효성에서 나온 것이니 이 어떠한 미덕인가. 단지 감히 말하지 못할 일이라는 이유 때문에 차마 제기하지 못하고 장차 묻혀진 채 드러나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 지금 전 영상의 상소로 인하여 그 단서가 발로되었고 그대로 잠자코 있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정조는 이렇게 말하고는 금등 가운데의 두 구절을 베껴낸 쪽지를 여러 대신들에게 보여주는데 그, 두 구절에는 “피묻은 적삼이여, 피묻은 적삼이여! 동(桐)이여, 동이여! 누가 영원토록 금등으로 간수하겠는가. 천추에 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바란다”고 적혀있었다고 한다.
드라마는 이 금등지사를 영조가 죽음을 앞둔 사도세자에게 손자 이산을 무탈하게 보위에 올리겠다는 약속을 하고 옥새를 찍은 약조로 각색했다.
사도세자의 보모상궁이었던 박상궁은 치매로 옛 언약을 잊은 영조에게 금등지사를 찾아 그 언약을 상기시키면 세손이 무사히 보위에 오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금등지사를 찾을 단서는 세손의 휘항에 새겨진 ‘봉(峯)’, 혜빈의 가락지에 새겨진 ‘오(五)’, 사도세자가 가장 신뢰하던 익위사인 성덕임의 아비가 덕임의 어깨에 새긴 ‘명(明)’자로, 파자해 조합해보면 ‘일월오봉(日月五峯)’이 된다.
해와 달은 음양(陰陽)을, 다섯 봉우리는 오행(五行)을 상징한다. 이런 거창한 의미 덕에 일월오봉도는 어좌의 뒤에 펼쳐진다. 임금을 음양오행의 주재자, 혹은 그 대리자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현재 경복궁의 근정전, 창덕궁의 인정전, 창경궁의 명정전, 덕수궁의 중화전의 어좌 뒤에는 모두 오봉도병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드라마 속에선 영조 이덕화가 상선 하나 세워두고 울화를 터뜨리는 편전 어좌 뒤에 놓여있었다. 그 신성한 오봉도병을 일개 궁녀인 성덕임이 훼손할 수는 없는 일. 덕임은 중전 김씨(장희진 분)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영조의 금등지사는 사도세자의 신위를 모신 수은묘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드라마는 아마도 일월오봉도에서 발견한 것으로 설정한 모양이다.
드라마가 성덕임의 비중을 키우다 보니 내명부에도 무게가 실리기 시작하면서 정순왕후 김씨가 캐스팅보드를 쥔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정순왕후는 6회 친잠례 행사에서 화완옹주(서효림 분)의 뺨을 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실제 정순왕후는 1767년(영조 43) 경복궁 옛터에서 친잠례(親蠶禮)를 주관했는데, 이는 선조대 이후 300여년 만에 재개된 의식이었다.
간장게장 사건에서도 모략을 꾸민 화완옹주를 윽박지르며 정치적 야심의 일단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산의 정적인 화완옹주와 광한궁 수장 제조상궁 조씨(박지영 분)에 이어 이산과 손을 잡은 정순왕후의 비중까지 커지며 ‘옷소매 붉은 끝동’의 스토리가 구중궁궐 심처까지 헤집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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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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