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재동 객원기자] 내가 그녀에게 “좋아하는 것 같애”라 말하기 전에는 그녀는 다만 전교 1등 까칠녀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해”라 말해 주었을 때 그녀는 나에게로 와서 “사귀자”고 해주었다. 그랬는데.. 그렇게 그녀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었는데..
SBS 월화드라마 ‘그해 우리는’이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누군가의 꽃이 될 이 청춘들의 사랑을 김춘수 시인의 ‘꽃’에 빗대어 풀어본다.
27일 7회 방영분에서 최웅(최우식 분)은 국연수(김다미 분)에게 다시 한번 절망을 느꼈다. 그래서 “국연수가 돌아온 게 실감 나네. 지겹다 정말”하고는 국연수에게서 등을 돌렸다.
최웅이 변했다. 제 말처럼 국연수가 괜찮다면 ‘괜찮구나’ 했었다. 국연수가 아무 일 없어하면 ‘괜한 걱정 했구나’ 했었다. 헤어지자면 ‘그러자’ 했고, 다시 나타나면 그동안 국연수가 어떻게 지냈는지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지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 그렇구나’ 했던 최웅이었다.
그런데 마침내 제 감정의 실체를 깨달았다. “그래 이 기분이었어. 널 만날 때 항상 느꼈던 이 기분. 사람 하나 바보로 세워두고 혼자서 한 걸음씩 멀어져 가는 거 바라보기만 하는” 즉, 바보가 된 기분, 무기력해지는 기분, 한 마디로 더러운 기분 말이다.
결국 최웅의 불만은 “국연수, 너는 내게로 와 꽃이 됐는데 왜 난 네게 다가가도 불러주지 않는 거지? 네게 무엇인가가 되고 싶은데, 네게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은데 왜 여전히 날 불러주지 않아서 날 그저 하나의 몸짓으로 남겨두냐구!”다.

그렇게 먼저 돌아서는 최웅은 국연수에게 낯설다. 할 말 하고 돌아서는 건 언제나 연수 몫이었다. 당연히 남겨지는 건 최웅의 역할이었고. 근데 5년 만에 재회하고 보니 얘가 뻑하면 제 얘기만 하고 돌아서는 습관이 생겼다. 파티장에서도 삐쳐서 팽 돌아서더니.
하지만 이 드라마의 강점은 양가감정을 다루는데 능하다는 것. 그래서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최웅 아닌 척 돌아선 최웅의 속내는 “최고의 방어라는 공격을 내가 지금 하고 있나 봐! 그런데 이건 내 선택이 아니라구!”란 절규로 들끓고 있었다.
그런 복잡한 심경을 최웅답게 아이스크림으로 식히고 있을 때 최웅에게 엔제이(노정의 분)가 다가와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엔제이의 하루는 거칠었다. 인터넷상 익명에 기대 그녀에게 막말을 쏟아내던 악플러들과 봉사활동을 한 하루였다. 악플러들은 엔제이의 봉사활동에 참여하면 법적 선처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열심히 회개한 척 한다. 물론 뒤에선 전혀 반성없이 엔제이를 비난한다. 그 뒷담화를 엔제이가 들었다. ‘사람 고쳐 못쓴다’는 시쳇말을 절감한 엔제이는 봉사활동을 마친 악플러들에게 ‘선처없음’을 통보한다.
지쳐 돌아오는 차안에서 왜 그런 놈들을 만나냐는 매니저의 질문에 엔제이는 말한다. “실체가 있으면 좀 덜 무서울 것 같아서.” 그렇다. 그녀는 익명 속에 숨은 악의들을 끊임없이 무서워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냥 피해. 도망가”란 매니저의 말처럼 도망쳐온 곳이 최웅이다.

엔제이는 “작가님을 보면 기분이 꽤 괜찮아져요. 처음에는 작가님 그림을 보면 그랬는데 이젠 사람을 봐도 그런 거야”라며 최웅을 찾아오는 명분을 밝혔다. 그리고는 “사랑한다는 거 아니고 사귀자고 고백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일단은 좋아한다는 거니까”라고 담담하게 진심을 말한다.
국연수에게도 최웅은 잠깐 현실에 눈을 감게 해준 사람였고 가끔은 진짜 현실을 잊어버리게도 하는 남자였다. 다시 말해 ‘안식’이란 말로 치환될 수 있는 남자였다. 엔제이 역시 최웅에게서 비슷한 안식을 발견한 모양이다. 그리하여 최웅이 국연수에게 그랬듯 엔제이도 최웅에게 ‘좋아한다’ 말해주고 만 것이다.
5년 전 국연수라면 신경 껐을 것이다. 그런데 삐친 체 돌아선 최웅의 모습이 아무래도 신경 쓰인다. 달래주지 않으면 뭔가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렇게 최웅을 찾아나선 연수 눈에 최웅과 엔제이의 다정한 모습이 들어온다. 예상치 않은 광경에 탈색돼 버린 뇌. ‘무슨 생각이 들어야 되는 거지?’ 싶은 순간 그녀를 꺼내준 건 이번에도 김지웅(김성철 분)이었다.
그렇게 최웅과 국연수가 서로에게 꽃이 되려는 중에 김지웅이 등장했고 엔제이까지 끼어들었다. 라인업이 완성됐다. 과연 이 네 청춘은 각자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얻게 될지, 그래서 누군가에게 다가가 누군가의 꽃이 돼 선한 열정의 보상을 획득할 수 있을지, ‘그 해 우리는’이 한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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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SBS 방송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