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매니저 소진(한지민 분)은 조만간 이성에게 고백받는다는 사주를 받고 설레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15년째 남몰래 마음에 품고 있는 대학동기 승효(김영광 분)가 그 운명의 남자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겼기 때문. 그러나 눈치 없는 승효는 그녀의 마음도 모른 채 결혼할 여자라면서 영주(고성희 분)를 소개한다.(※이 기사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공시생 재용(강하늘 분)은 올해도 또 불합격 소식을 듣고, 믿고 있던 여자친구에게도 보란 듯이 차인다. 인생에 더는 희망이 없다고 느낀 그는 5성급호텔에서 연말을 보내며, 인생을 마감하겠다고 결심하는데…얼굴도 못 본 호텔리어 수연(임윤아 분)으로부터 매일 아침 모닝콜을 받으면서 예상치 못했던 위로를 받는다.

호텔 엠로스 대표 용진(이동욱 분)은 강추위로 보일러가 동파되면서 한 달간 스위트룸에 묵게 된다. 호텔메이드 이영(원진아 분)은 짝수 강박증이 있는 그를 위해 베개부터 컵, 수건 등 객실 내 모든 물건을 짝수로 맞추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뮤지컬배우를 꿈꾸는 그녀는 노래를 부르며 청소하다가 용진의 눈에 띄고, 이들은 노사관계를 넘어 애틋한 감정을 느낀다.
엠로스 호텔에서 근무하는 상규(정진영 분)는 40여 년 만에 첫사랑 캐서린(이혜영 분)과 재회하고, 가수 이강(서강준)과 재계약을 앞둔 매니저 상훈(이광수 분)은 그의 성공과 인기 유지를 위해 더 큰 회사로 보내기로 한다. 한편 고등부 수영선수 세직(조준영 분)은 같은 학교 피겨선수 아영(원지안 분)을 보고 첫눈에 반해 고백하기로 결심한다.

곽재용 감독이 연출한 ‘해피 뉴 이어’(배급 티빙 CJ ENM, 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는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호텔 엠로스를 찾은 14명의 인물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 ‘엽기적인 그녀’(2001), ‘클래식’(2003)으로 사랑받은 곽재용 감독이 2000년대식 감성을 살려 다시 한번 로맨스 장르로 복귀했다.


‘해피 뉴 이어’는 과거와 현재가 교집합으로 이뤄진 일상의 사소한 순간 속에서, 사랑의 가치와 인연의 소중함을 말한다. 빛바랜 추억의 기억은 훈훈한 정서와 여운으로 차곡차곡 쌓여 문득 들춰보고 싶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해피 뉴 이어’는 인연이 맞닿아 있는 14명의 캐릭터들이 자신만의 사연을 부드럽게 풀어놓으며 예쁜 엽서처럼 도착했다.
인물간의 갈등이나 특별한 사건 없이 흘러가기 때문에, 요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감성이 돋보인다. 도회적이고 현대적인 서사가 없어서 낡은 느낌은 있지만, 연말연시에 맞는 분위기와 화려한 배우 캐스팅으로 부족함을 만회한다.

거의 맥이 끊기다시피한 2000년대식 멜로물의 감수성을 곽재용 감독이 다시 한번 이어가려는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소박하지만 여운이 긴 파장을 전달한다. 로맨스 소재의 무게를 버텨낼 수 있는 것은, ‘로맨스 장인’ 곽재용의 이름값이 주는 무게일 터다.
어쨌든 연말을 맞아 유행에 따르지 않는 소박한 사랑 이야기를 만났다는 것은 반갑다. 29일 티빙 공개 및 극장 개봉. 러닝타임 1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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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