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얼과 예능적 입담을 갖춘 것으로도 유명한 배우 권율(41)이 이번엔 사악한 얼굴로 돌아왔다. ‘경관의 피’는 국내 최대 마약범들을 잡기 위해 자신만의 신념을 밀고 나가는 경찰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신념이 다른 광수대 두 형사 박강윤(조진웅 분)과 최민재(최우식 분)가 한마음으로 잡고 싶은 범인은 나영빈(권율 분)이다.
나영빈 역을 맡은 권율은 강렬한 눈빛을 살리면서도 체중을 불려 악한 포스를 배가했다. 점차 비중과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배우로 자리매김한 권율. 그와 함께 ‘경관의 피’를 준비한 과정을 들어봤다.
권율은 6일 진행된 온라인 화상 인터뷰에서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에 관객들을 찾아뵐 수 있게 돼 배우로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경관의 피’(감독 이규만, 배급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작 리양필름)는 위법 수사도 개의치 않는 광수대 강윤과 그를 감시하게 된 언더커버 신입 경찰 민재의 위험한 추적을 그린 범죄 수사극.
상위 1% 범죄자 나영빈을 연기한 권율은 “시나리오가 너무 재미있었다. 이 영화는 무조건 해야겠다 싶더라”며 “두 개의 다른 신념에 대한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었다. 영빈은 강윤과 민재 사이에 충돌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중요했다. 제가 마다할 이유는 없어서 잘 소화하고 싶었다”고 출연을 결정한 이유를 전했다.
비중이 적어 아쉽진 않았느냐는 물음에 “영화는 촬영분보다 편집 단계에서 온전히 담기지 않는 게 사실이다. 서포트 롤뿐만 아니라 리딩 롤도 분량이 제거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제가 찍은 분량이 다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지만, 영화 전체를 봤을 땐 나영빈의 분량이 많아지는 것보다, 작품이 의도한 방향으로 나가는 게 좋겠다고 동의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이 영화가 관객들의 사랑받는다면 나중에 DVD나 디렉터스 컷으로 편집된 분량이 공개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라고 덧붙였다.

‘경관의 피’는 수사를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된다는 강윤과 대의를 위해 원칙과 철칙을 지켜야 한다는 민재의 신념이 부딪힌다. 이에 권율은 “개인적으로 저는 박강윤의 의견에 동의한다. 범죄 추적에 있어서 어떠한 방식도 위법이 될 수 없다고 본다”며 “물론 과정도 중요하다. 누군가의 인권, 의견이 묵살당하는 것만큼 절망적인 게 없다고 본다. 저도 이렇게 고민할 만큼 신념의 충돌이 일어난다”고 관객들에게 질문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나영빈은 그런 두 형사가 의기투합해 검거하고 싶어하는 최대 범죄 피의자. 상위 1% 인물답게 명품 의상과 소품으로 휘어감고 다닌다.
“영빈의 슈트는 맞춤제작으로 했다. 그 의상실이 굉장히 유명한 곳이다. 제가 개인적으로 슈트를 맞추고 싶을 때도 접근하기 어려운 곳인데 거기서 나영빈의 의상을 다 맞춰서 놀랐다.(웃음) 의상 원단부터 가봉까지 다른 작품에서 입는 옷들과 비교해 4~5배나 노력이 더 들어갔다. 조명에 의한 반짝임까지 고려해 의상을 준비했다. 타이트하게 공을 많이 들였다”고 전했다.

캐릭터에 맞춰 대사톤을 바꾼 그는 “대사를 입으로 뱉는다고 생각하지 않고 마음으로 뱉는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며 “시나리오를 보기 전, 스케치북에 (나영빈의 처지와 상황을) 그려가면서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쳤다. 제가 나영빈이란 사람이 돼서 상상하고 몰입한 거다. 그러고나서 시나리오 속 대사를 읽으며 연습했다”고 나름의 비법을 전했다.
“나영빈은 그 누구에게도 물러섬이 없는 인물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어서, 법보다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더라. (경찰들 앞에서도) 당황하거나 무너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캐릭터에 끌렸다.”
권율은 나영빈 캐릭터에 사악한 카리스마를 입히기 위해 12kg이나 증량했다. 평소 입이 짧아 식사량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그였지만, 범접할 수 없는 느낌과 룩(look)을 연출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루에 6~7끼의 식사를 했다. 먼저 운동을 해서 대사량을 올린 뒤 알람을 맞춰놓고 매일 똑같은 양의 식사를 꾸준히 했다. 이규만 감독님이 ‘너무 살이 찌거나 (근육이) 쪼개진 몸은 어울리지 않을 거 같다’고 하셨다. 각이 지지 않으면서도 단단한 몸을 만들어달라고 하셨다. (웃음) 그게 쉬운 게 아닌데, 그래서 그런 몸을 만들기 위해 운동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기름진 음식을 먹었다면 좀 더 쉽게 살을 찌울 수 있었을 텐데, 운동과 음식으로 증량해 나갔다.”
영화를 마친 후 평상시 체중인 70~71kg 정도로 돌아왔다는 그는 “촬영 당시, 제 몸이 무거워지고 커지다 보니 연기적으로도 바닥에 붙는 느낌이 들더라”고 전했다.
선역보다 악역에 끌린다는 권율은 “물론 둘 다 힘들지만 연기하면서 느끼기엔 악역이 재미있다. 제가 일상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의 증폭이 크다 보니 연기하면서 해소되는 게 있다”며 “필모그래피에 캐릭터가 하나씩 늘어가면서, 저의 감정과 정서에 안 좋게 축적되는 느낌도 있다. 캐릭터의 향기가 남아있어 어느 순간 몸과 마음이 예민해지고 힘들기도 했다. 그래서 작품을 마치면 곧바로 환기를 시켜 잔향을 빼주어야 한다. 악역이 재미있지만 새 캐릭터를 입는 작업만큼이나 분리하는 작업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고 털어놨다.


2007년 드라마로 데뷔한 권율은 ‘비스티 보이즈’(2008) ‘잉투기’(2013) ‘명량’(2014) ‘사냥’(2016) ‘최악의 하루’(2016) ‘박열’(2017) ‘챔피언’(2018) 등에 출연하며 다양한 얼굴로 연기력을 드러냈다.
권율은 이날 “우리가 열심히 한 영화로 관객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감사한 마음이 잘 전달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영화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에 대한 국내 관객들의 호응에 힘입어 진솔한 답변으로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줬다. ‘경관의 피’는 현재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 purplish@osen.co.kr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스틸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