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할거면 다른 사람이 하는 게 나아.”
흥국생명 외국인 선수 캐서린 벨(29·등록명 캣벨)은 지난해 11월6일 한국도로공사전에서 안일한 수비로 박미희(59) 감독에게 혼쭐이 났다. 무릎을 굽히지 않고 손으로만 걷어내려다 실점을 내줘 박 감독을 화나게 했다. 당시 박 감독은 타임 아웃을 부른 뒤 캣벨에게 “준비 안 하는거야? 성실하게 하는 게 중요하지. 안 할거면 다른 사람이 하는 게 나아”라고 단호한 어조로 다그쳤다.
이렇게 코트에서 엄할 때는 누구보다 엄한 박 감독이지만 뒤에선 또 엄마처럼 살뜰하게 챙겨준다. 지난 연말에는 커피를 사들고 캣벨의 집을 찾아 감동을 안겼다.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모습을 공개한 캣벨도 박 감독에게 애정을 감추지 않는다.

캣벨은 “박미희 감독님은 내게 한국의 엄마 같은 분이다. 경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나랑 똑같아 케미가 정말 잘 맞는다”며 웃은 뒤 “강할 때는 강하게, 부드러울 때는 부드럽게 해주시다 보니 의사소통이 잘 된다”고 말했다. 국내 4대 프로 스포츠 여성 지도자 중 최초로 통합 우승을 이루며 8시즌째 장기 집권 중인 박 감독의 엄마 리더십에 외국인 선수도 반했다.
요즘 같으면 박 감독이 캣벨을 혼낼 이유도 없다. 시즌 초반 팀이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 캣벨도 다소 기복이 있었지만 3라운드 중반부터 꾸준함을 보이고 있다 최근 6경기 연속 40%대 공격 성공률로 양질의 활약을 하고 있고, 이 기간 흥국생명도 5승1패로 상승 전환했다. 젊은 선수들로 새롭게 만들어가는 시즌인데 초반 시행착오를 딛고 순위 싸움 중인 팀들을 위협하고 있다.
그 중심에 캣벨이 있다. 시즌 반환점을 돌면서 대부분 외국인 선수들의 페이스가 초반보다 한풀 꺾였지만 캣벨을 갈수록 힘이 넘친다. 특히 7일 KGC인삼공사전에서 개인 한 경기 최다 타이 41득점을 폭발하면서 흥국생명의 3-1 승리를 이끌었다. 높이가 좋은 인삼공사 수비도 캣벨의 타점 높은 공격에 속수무책.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코트를 완벽 지배했다.

박 감독은 “캣벨이 외국인 선수로서 본인 역할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그만큼 자기 관리도 잘한다. 몸도 몸이지만 정신적 관리를 잘한다. 외국인 선수로서 경험 있는 선수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다. 잘해주고 있다”고 칭찬했다. 쉬는 날에도 알아서 부족한 부분을 찾아 연습하는 등 어린 선수들의 모범이 되고 있는 캣벨을 향해 박 감독의 애정도 점점 커져간다.
캣벨은 지난 2015~2016시즌 GS칼텍스에서 한국 배구를 경험한 바 있다. 당시에는 대학 졸업 직후라 프로 경험 없는 신인이었고, 무릎 부상으로 자신의 기량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 이후 터키, 푸에르코리코, 필리핀, 중국 등 여러 리그에서 경험을 쌓았고, 6시즌 만에 돌아온 V-리그에서 흥국생명 핑크 유니폼을 입고 한층 발전한 기량을 뽐내고 있다.

공격 점유율이 47.7%로 리그에서 가장 높은 캣벨이지만 힘들다는 이야기를 입밖에 꺼내지 않는다. 그는 “피곤하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몸과 정신 모두 압박이 느껴질 때도 있지만 트레이너 분들이 관리를 잘해준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게 목표”라며 “선수들 사이 신뢰가 쌓이고, 연결 과정에서 완성도가 높아지면서 갈수록 좋은 경기를 하고 있다. 당장 봄배구를 목표로 하기보다 눈앞에 놓여진 경기부터 열심히 하겠다”고 남은 시즌 각오를 다졌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