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우리는’ 과거의 외로움과 작별한 웅·연수·지웅 ‘아듀!’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2.01.26 12: 21

[OSEN=김재동 객원기자]  그래서 국연수(김다미 분)와 최웅(최우식 분)은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를 잃었습니다. 그 대신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런 반려자를 얻었습니다.
SBS 월화드라마 ‘그 해 우리는’이 웅·연수 부부의 탄생으로 막을 내렸다. 이 드라마가 이채로운 점은 격정 없고, 증오 없고, 욕망 없는 3무(無) 멜로라는 점이다. 등장인물 최웅·국연수·김지웅(김성철 분)·엔제이(노정의 분) 누구도 사랑이란 이름으로 스스로를, 혹은 상대방을 해친 이는 없다. 16부를 목청 키운 대사 몇 번 없이 조곤조곤 흘러왔지만 애잔하고 애틋한가 하면 유쾌하고 발랄해서 미소짓게 만든 드라마다.
사랑 외에 드라마가 공들인 코드 하나는 외로움이다. 최웅은 다섯 살 무렵 친부에게 버려진 아이다. 그 후로 최호(박원상 분)-이연옥(서정연 분) 부부에 입양됐고 동네 요식업계 선두주자의 외동아들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세상을 떠난 최호 내외의 친아들 대타라는 자각이 있었고, 부모님을 닮지 못하는 것 아닐까 하는 우려에 무언갈 원하지도 무언갈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꿈으로부터 소외된 채 살아왔다.

조손가정에서 성장한 국연수는 어려서부터 감당할 수 없는 가난과 함께 했다. 할머니 강자경(차미경 분)만을 의지하며 억척스럽게 삶에 임했지만 정작 바람은 궁핍없이 남들처럼 사는 것일뿐 달리 원하는 무언가가 따로 있진 않았다. 그렇게 특별한 꿈도 없이 나 혼자 세상을 헤쳐간다는 결기로 세상을 따돌리며 살아왔다.
김지웅은 세상에 단 한 명 뿐인 가족 어머니(박미현 분)로부터 소외당했다. 소년은 ‘한 발 비켜나’ 세상을 관찰자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 처세술은 그를 다큐멘터리 PD로 이끌었다.
이들의 사랑얘기는 각자의 외로움과 함께 성장한다. 전교 1등과 전교 꼴등으로 만나 다큐를 함께 찍으며 교제를 시작한 국연수와 최웅은 다섯 번이나 헤어졌다 다시 만났다. 가장 심각했던 마지막 헤어짐의 이유는 국연수에 닥친 감당할 수 없는 가난 때문였고 최웅에게 불행을 전가할 수 없다는 국연수의 열등감 때문이었다.
국연수의 사정과는 별개로 “내가 버릴 수 있는건 너 뿐이야”란 이별선언은 최웅의 오래된 트라우마 ‘버려짐’의 기억을 환기시켰고 최웅을 그림에 침잠하게 만듦으로써 얼굴 없는 일러스트레이터 고오를 탄생시켰다.
한편 국연수에게 첫 눈에 반하기는 최웅과 매일반이지만 친구 최웅의 선제 대시에 예의 한발 비켜나 있었던 김지웅은 선배PD 박동일(조복래 분)의 권유로 웅·연수 다큐를 찍기 시작하면서 연수에 대한 연심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리고 연수로부터 멀어지려던 온갖 계획이 무산됨을 확인하는 순간, 그래서 남자로서 연수에게 다가가고 싶은 순간, 지웅은 친모조차 외면했던 어린 시절 자신에게 가족까지 나누었던 최웅으로부터도 멀어지는 기분에 휩싸여 더욱 외로워진다.
그런 최악의 순간 죽을 병에 걸린 친모가 찾아온다. “세상에 왔다간 흔적도 없이 이대로 가는 건 억울하다”며 자신을 찍어달라는 엄마의 요구는 지웅을 아연케한다.
“엄마가 힘들었다구 나한테 그래도 되는거 아니잖아. 엄마는 엄마구 나는 어린애였잖아. 어떻게 엄마가 자식한테 그래. 나 엄마 용서 못해. 절대 안해”
지웅의 입에선 어린 시절부터 해묵었던 원망이 터져나오고 응어리가 풀리면서 ‘딱 이정도’로 설정됐던 엄마와의 거리도 가까워진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박동일 PD가 들이민 카메라 앞에서 다큐를 찍는다.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인가. 그때가 엄마가 쉬는 날인데 엄마랑 손잡고 시장을 걷고 있으면 기분이 좋았어요” 몇 되지 않아 선명했던 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지난 시절의 엄마와, 또 지난 시절의 외로움과 화해한다.
사랑이 안정권에 접어 든 최웅과 국연수에게도 성장의 시간이 찾아온다. 최웅은 마침내 원하는 바가 있음을 깨달았고 묻어두었던 그림에 대한 꿈을 완성하기 위해 프랑스 유학을 결심한다. 연수에게 함께 가자고 보채보지만 연수의 인생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고는 연수의 결정에 맡긴다.
연수 역시 최웅의 제의를 고민하며 스스로를 뒤돌아본다. 그리곤 자각한다. “내 인생을 초라하게 만든 건 나 하나였구나. 그동안 내 삶이 어쩔수 없는 삶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삶일 수 있었구나!”
유학을 떠나는 길에 최웅은 자신의 인생을 따라다니던 과거인 친부를 먼 발치서 마주한다. 그리고 이제 각자의 인생에서 서로를 놓아주자고 다짐하며 지난 시절의 외로움과 결별을 선언한다.
그렇게 각자의 외로움을 떨쳐낸 세사람은 다시 카메라를 놓고 마주한다. 사랑을 완성한 웅·연수 커플과 후배 정채란(전혜원 분)의 구애를 받아들인 예비 사랑꾼 김지웅으로.
드라마는 이 청춘들의 사랑과 외로움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놓았다. 대사는 멋지지않고 평이했지만 상황에 적확해서 폐부를 찔렀고 연기들은 과장없어 심드렁하지만 생활연기다운 현실감을 선사했다. 짜임새 있는 구성은 적절한 긴장을 부담없이 배치하며 감동과 여운을 안겼다. ‘그 해 우리는’ 종영이 아쉬울만큼 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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