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도시’ 김미숙의 ‘조소 띤 가늠하는 시선의 악녀 서한숙’ 발군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2.02.07 15: 44

[OSEN=김재동 객원기자]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는 이정재가 맡은 악역 레이의 피해자들이 하는 대사로 “이렇게까지 할 필욘 없잖아”란 말이 등장한다.
JTBC 수목드라마 ‘공작도시’를 보면서 자주 드는 생각 중 하나가 “뭘 그렇게까지?”다. 그럴 수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상황들이 조금씩 과장돼 있다는 느낌을 받아왔다.
가령 판사 딸인 주인공 윤재희(수애 분)의 가난에 대한 트라우마나, 그로 인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에 공감하기가 벅찼다.

명예와 권력을 쥐고 떳떳이 성상납을 강요하는 유장관(명계남 분)을 접한 후 휘둘리지 않고 휘두르며 살겠다는 가치관을 획득한 윤재희는 이해 간다. 그래서 남자친구 박정호(이충주 분)를 버리고 정준혁(김강우 분)을 선택한 윤재희는 한마디로 속물이다.
어차피 사랑 아닌 선택이었기에 정준혁의 외도를 눈치채고도 무탈하게 가정을 끌어가는 건 그런 윤재희로선 마땅하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남편 조강현의 외도에 목숨을 끊은 권민선(백지원 분)에게 지나치게 감정이입하는 모습은 낯설었다.
또 친자식 정준일(김영재 분)의 구속을 막기 위해 며느리 윤재희 앞에 무릎 꿇는 장면을 연출한 시어머니 서한숙(김미숙 분)의 모습은 과했다. 윤재희와 박정호의 키스 사진으로 상황을 역전시킨후 사냥총을 겨누며 윤재희의 무릎을 꿇리는 서한숙의 모습, 그리고 자신을 인간답게 대접하라며 실랑이 벌이다 그 총에 맞는 윤재희의 모습도 그야말로 ‘뭘 저렇게까지!’ 싶었다.
그외 윤재희를 위한다는 이유로 윤재희조차 원치 않는 방식으로 버티다 죽음을 맞게 되는 김이설(이이담 분)의 모습도 이물감이 느껴졌다. 극중 김이설과 사망한 동거인 노영주와의 사이에 동성코드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김이설이 윤재희에게 비슷한 사랑을 느꼈다면 이해되지만 아니라면 어쩐지 뚜걱하다.
다행히도 그런 등등 스토리라인의 위화감을 감싸안아 최소화시키는 캐릭터가 있다. 김미숙이 연기한 서한숙이다. 김미숙은 조소 띤, 가늠하는 시선만으로 불협화음을 잊게 만드는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그렇게 드라마의 절대악 서한숙은 우아하다. 자신이 죽이라고 사주한 김이설의 빈소를 찾아 “귀한 목숨 좋은데 쓰게 됐다” 는 소름끼치는 대사를 치면서도 그녀는 품위 있었다.
시놉시스상 김미숙이 연기하는 악역 서한숙은 아트스페이스진 이사장이자 성진가의 실세다. 선대부터 비축해온 대한민국 유력자들의 약점을 손아귀에 쥐고 정·재계의 막후로 암약한다. 그녀는 ‘쓸모’를 기준으로 사람을 구분한다. 쓸모 있게만 굴면 누구든 편안한 생활을 보장해 주지만, 고장 난 것은 물건이든 사람이든 가차 없이 내버리는 냉혈한이다.
“세상이 변한 척 해봤자 사람이 절대 변하지 않는 걸 어쩌겠나” 하는 시니컬한 인간관이 그녀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다.
김미숙의 연기는 그래서 호들갑스럽지도, 시끄럽지도 않다. 시니컬하다는 의미는 본래 과장과는 거리를 둔다. 그래서 과장된 상황들조차 그녀의 표정 하나에 잔잔해진다. 누가 뭔 짓을 하더라도 ‘그래 어쩌나 볼까?’하는 시선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우아한 섬뜩함을 전해준다.
이 서한숙은 사회지도층의 X파일뿐 아니라 돈도 권력도 언론도 쥐고 있다. 그래서 누구를 상대로도 “네 탓은 아냐. 그렇지만 네 문제로 만들 수 있어”라고 협박할 수 있고 대부분은 그 협박이 먹힌다. 그녀는 많은 이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고 많은 이들은 당연하게 그 제안을 거부하지 못한다.
윤재희와 박정호(이충주 분)가 반격의 카드로 만들었던 “김이설의 죽음은 자살이 아닙니다”라고 밝힌 박용섭(이규현 분)의 동영상조차 왜곡되어 오히려 박정호가 살인범으로 몰려 체포되는 지경에 이른다.
그녀는 정준일을 낳은 미혼모로 그 약점 때문에 운전기사였던 정필성(송영창 분)과 결혼했고 정필성이 밖에서 낳아온 정준혁(김강우 분)까지 아들로 받아들였다. 심적냉대와 별개로 그녀는 정필성과 정준혁을 온전히 대우한다.
정필성은 철거용역업체 명성건설을 운영하며 성진가의 뒷설거지를 해왔고 정준혁은 검사와 앵커를 거쳐 대선후보로까지 키워냈다. 서한숙에게 두사람은 그렇게 ‘쓸모’있는 가족인 것이다.
친아들 정준일에게 오롯이 성진가를 물려주려는 의도가 그녀의 동인이다. “반드시 회장이 되어 성진그룹을 지키고 나를 지켜라!” 그녀의 피내림 정준일의 쓸모다.
그런 서한숙에게 윤재희가 말한다. “쓰레기 같은 인간! 이렇게 견딜 겁니다. 두렵구 무서운 마음을 이렇게 어머님을 욕하고 조롱하면서 견뎌낼 겁니다”라고.
그리고 9일 방영될 19회 예고에서 윤재희는 검찰에 자진출두해 “정준혁과 서한숙의 범죄행위를 알고도 묵인했습니다”고 진술한다. 아무래도 조소 띤 서한숙의 가면에도 금이 갈 모양이다. 가면을 벗어버린 서한숙을 김미숙은 또 어떻게 연기할런지 궁금하다.
/zaitung@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