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도시’ 윤재희가 날린 총탄, 우리 안의 비겁(卑怯) 관통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2.02.11 16: 32

[OSEN=김재동 객원기자]  윤재희(수애 분)가 발사한 사냥총이 제 안의 비겁(卑怯)을 관통했다. 더 이상은 비겁해지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JTBC 수목드라마 ‘공작도시’가 10일 종영했다. 통상의 드라마 문법과는 궤를 달리하는 엔딩을 선보였다. 권선(勸善)은 분명한데 징악(懲惡)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대단히 현실적이다. 아울러 불발된 카타르시스로 인해 아쉬움도 남긴다.
대선 승리를 위해 친아들 현우조차 입양아로 만들어 공표한 정준혁(김강우 분)이나, 정의로운 기자를 연기하다 제 안의 속물 근성에 굴복한 한동민(이학주 분)이나, 평생을 권력 해바라기로 살아온 조강현(정해균 분)·유진석(명계남 분) 등은 제 잇속 챙기며 승승장구하고, 그 모두를 치부로 엮어 인형술사처럼 조종하는 서한숙(김미숙 분) 역시 윤재희의 고군분투에도 아랑곳없이 자잘한 흠집정도로 권좌를 유지한다.

“말이 안되잖아. 이런 일들을 저지르고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간다는 거 정말 말이 안되잖아”라는 윤재희의 호소가 무색하게 그들은 정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자신들의 치부를 덮고 넘어갔다.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기대했던 대다수의 시청자들을 씁쓸하게 만드는 결말이다. 그리고 그 결말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더 씁쓸하게 만든다.
하지만 드라마의 시작과는 달리 분명하게 변화된 부분은 있다. 그 부분, 드라마가 20부를 관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아이를 안고 구걸에 나선 여자와 그 앞을 고개 숙이고 외면한 채 걸어가는 행인을 담은 그림 앞에서 전해진다.
앞서 이 그림 앞에서 서한숙과 김이설(이이담 분)은 마주했었다. 서한숙은 그림을 보며 물었다. 한겨울에 어린아이까지 데리고 나와 앉아있는 여자를 외면하는 심정이 어떨 것 같냐고. 당연히 많이 안쓰러울 것이고 하지만 도와주기 힘들어 외면하는 심정은 많이 불편했을 것이다. 서한숙은 덧붙인다. “사람이 나약해서 그런 마음을 오래 견딜수 없다”며 “그래서 왜 저렇게 구질구질한 사람들이 눈앞에서 얼쩡대는지. 제발 좀 사라져 주길 바라게 된다”고.
서한숙은 김이설이 자신에게 그런 존재임을 분명히 하며 사회에 만연한 이기심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지적한다.
윤재희를 놓아달라는 부탁에 대해서도 “제 욕심 때문에 안간힘 쓰는 사람을 내가 왜?”라고 대꾸한다.
그리고 그 그림 앞에서 김이설 대신 윤재희를 마주한 서한숙은 “두렵더구나. 그 아이의 말과 눈빛이”라고 회고한다. 서한숙은 김이설이 왜 두려웠을까? 답은 곧바로 이어진다. “(그 두려움을) 내가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윤재희 네 안타까운 욕심 덕이었다. 그런대로 선량하다고 믿는 그 허영심까지... 준혁이도 내가 망친 게 아냐. 스스로의 욕심 때문인 거지”라고 답한다.
서한숙의 본질, 이 사회를 왜곡되게 이끌어온 흑막의 본질은 바로 사람들의 안타까운 욕심을 이용하는 것이고 그런 욕심이 없는 김이설 같은 존재들은 서한숙 같은 흑막에겐 두려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고백이다.
그런 안타까운 욕심에 휘둘리면서 선량한 척 남의 잘못을 타박이나 하는 존재들은 서한숙 같은 이에겐 요리하기 쉬운 먹이일 뿐이다. “누가 됐든 차별을 견디지 않고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준혁도, 마치 정의의 나팔수처럼 굴던 한동민도 그 안타까운 욕심을 부추기고 종용하는 서한숙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 상처 짓밟고 불행까지 욕심내면서 살기로 한 정준혁이 같은 주제인 조강현을 향해 “양심 좀 챙깁시다” 타박하는 모습은 헛웃음을 부른다.
서한숙은 친아들 정준일을 향해서도 일갈한다. “뭐 하나 희생할 줄도 모르는 것들이.. 나쁜 걸 나쁘다고 말하는것만으로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지 말아라”라고.
그런 와중에 윤재희가 날린 총탄은 그림 속 외면하고 지나치는 남자의 심장을 꿰뚫었다. 외면하지 않겠다고, 욕심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희생을 해서라도 나쁜 걸 고치겠다는 결심처럼.
드라마는 당장 윤재희 하나가 변하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변해가는 것이란 교훈을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면 된다. 너무 조금씩이라 보이지 않을 지라도.
출세의 기회는 밖에 있지만 양심의 기회는 오로지 마음에만 있다. 부(富)도 고통도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는 세상이지만 그런 양심들이 살아나면 좀 더 살만해지지 않을까. 드라마 ‘공작도시’가 남긴 여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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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JTBC, 스튜디오산타클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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