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랍게' 시대상황 키워드4…#기지촌 #색시장사 #유곽 #월남파병
OSEN 김보라 기자
발행 2022.02.16 09: 28

20세기와 21세기를 억세게 이어온 여성들의 삶을 통해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과 위로를 전할 영화 '보드랍게'가 이달 23일 개봉을 앞두고 영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4가지 키워드를 공개했다.
여든두 살 왈패 순악 씨의 전쟁 같은 삶을 말과 그림으로 이어 아름다운 꽃으로 피워낸 영화 '보드랍게'(감독 박문칠, 제작 박문칠 (사)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배급 인디플러그)는 기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작품들을 경유해 보다 새로운 시선과 얼굴, 질문을 던지며 잊어서는 안 될 역사와 마주해야 할 개인의 삶을 비춘다. 
박문칠 감독의 '마이 플레이스' '파란나비효과'에 이은 3번째 장편 다큐멘터리로,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상과 제12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아름다운 기러기상을 수상했다. 기존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영화들이 위안소에서 피해 입은 소녀 시절이나 커밍아웃 이후 투사로서의 모습에 집중한다면, '보드랍게'는 해방 이후 이들이 수십년 간 침묵을 강요당한 시간에 주목하고, 김순악 씨의 삶을 입체적이고 통시적으로 조망해 과거의 여성 김순악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시대 여성들을 이으며 공감과 위로를 불러일으킨다.

#전쟁 후에도 동두천에서 전쟁 같은 삶을 치러낸 순악씨 #기지촌
해방 후 서울에 거주하는 약 7만 명의 미군을 중심으로 서울 용산구, 평택시, 동두천시, 의정부시, 군산시 등에서 생활권이 형성되면서 ‘기지촌’이라는 형태로 불리게 되었다. 대규모 인원이 거주하는 군 기지의 특성상 인근 지역을 대상으로 경제 활동이 발생하게 되었다. 한국정부는 기지촌을 정책적으로 육성했다. 장병들을 위한 여흥이 필요하다는 미군의 요구와 외화를 벌어야 하는 국가적 필요에 따른 것이었다. 정부는 미군기지 주변을 중심으로 합법적인 서비스 클럽을 형성하였고 이는 미군 여가 시설로 미군병사들과 성매매 여성들이 접촉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결론적으로 기지촌을 통해 미국은 외부적으로 노출되지 않는 지역에서 성적 욕구를 해결하였고 한국 정부는 국가 경제와 안보를 이유로 이를 묵인했다. 주한미군 기지촌 여성들이 미군 전용 홀에서 벌어들인 외화만 해도 당시(1964년) 전체 외화 수입의 10%에 달하는 등 한국경제의 근간을 마련하며 경제를 부양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지촌에 사는 여성들을 ‘양공주’라 부르고, 더러운 여성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순악 씨는 미군 기지촌에서 물건 장사와 색시 장사를 하며 생존했다.
#‘버린 몸띠’라고 생각했던 그가 할 수 있던 것 #색시장사
색시장사란 여자들을 두고 술을 팔거나 몸을 팔게 해서 돈을 버는 장사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함부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의 해방 이후 이어진 성매매의 삶을 놓고 일본 말마따나 돈 벌러 일본군 위안부 생활하러 간 것이 아니냐고 조롱했다. 그러나 순악 씨는 여성의 정조를 강조하는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를 ‘버린 몸띠’라고 생각한 것이 다였다. 그는 그가 경험한 세상에서 그가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보드랍게'는 김순악의 삶을 포장하거나 숨기지 않고 직시하는 방식을 택해 그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틀에만 가두지 않고 시대의 흐름에 맞춰 다양한 모습을 지닌,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여성의 모습 그대로를 바라볼 기회를 제공한다.
#“내가 알아가지고 팔려드가는 거지” #유곽
유곽(遊廓)은 17세기 초반, 에도시대부터 시작된 일본의 공창제 하에서 법적 근거를 갖추고 국가권력의 허가를 얻어 성매매 영업을 하는 집결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또한 공식적인 법령 없이 국가권력으로부터 허가 또는 묵인을 받고 공공연하게 성매매 영업을 하는 업소나 집결지도 유곽이라고 불렀다. 일본식의 성매매 관리정책과 유곽은 19세기말 이후 한국과 타이완, 만주, 남양군도, 아시아태평양 전쟁기의 일본 점령지 등 일본이 조계지로 삼거나 식민지로 지배한 지역, 위임통치지역, 전쟁 점령지 등 일본의 정치력이 미쳤던 모든 지역에 이식되었다. 순악 씨는 공장에 돈 벌러 간 줄만 아는 가족들에게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돌아갈 수 없어 서울역에서 하루 저녁을 꼬박 났다. 어떤 사람이 다가와 취직시켜 줄 테니 함께 가자고 해서 국밥을 얻어먹고 따라 나섰다. 순악 씨는 그 때를 회상하면서 “내가 알아가지고 팔려들어간 것”이라고 했지만, 그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악시게 살아야만 했던 그의 삶은 전시 상황 속에서 여성의 성폭력이 그 당시의 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2차, 3차 가해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큰아들을 보내고 기도로 밤을 지샜다 #월남파병
한국은 베트남전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한 1964년부터 휴전협정이 조인된 1973년까지 8년간에 걸쳐 국군을 파견하였으며, 이를 ‘월남 파병’이라 칭한다. 미국과 북부 베트남이 전면전에 돌입하였을 때 미군은 한국에 주둔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려 했고, 박정희 정부는 전력공백이 생길 것을 우려해 미군에 파병을 제안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지지와 원조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베트남 전쟁에 보냈다. 베트남 전쟁이 치러지는 동안 5,000명이 넘는 한국군이 목숨을 잃었으며, 그보다 열 배가 넘는 이들이 부상을 입었다. 이들의 희생 위에서 한국은 미국과 군사 동맹을 강화하였으며, 외화를 획득하고 상품 수출을 늘리는 등 경제 성장에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남북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반공을 앞세운 국민 탄압이 강화되는 등 잃어버린 것도 많았다. 전쟁을 겪었던 순악 씨에게 군대는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 그 자체였다. 큰아들이 덜컥 베트남전에 갔을 때, 아들이 전쟁터에 있다는 것만으로 그 시절은 그에게 날마다 지옥 같은 나날이었다. 순악 씨는 술과 담배, 부처님에게 기도하는 것으로 삶을 버텼다.
'보드랍게'는 2022년 2월 23일 극장 개봉한다.
/ purplish@osen.co.kr
[사진] 인디플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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