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희 오빠 윤항기 "폐결핵 시한부 선고, 아내 없었으면 죽었다" ('특종세상')[Oh!쎈 종합]
OSEN 장우영 기자
발행 2022.02.17 22: 43

‘현장르포 특종세상’ 대한민국 1세대 싱어송라이터 윤항기의 근황이 공개됐다.
17일 오후 방송된 MBN ‘현장르포 특종세상’에서는 대한민국 1세대 싱어송라이터 윤항기와 동생 윤복희의 모습이 그려졌다.
셀 수 없이 많은 히트곡을 보유한 윤항기. 데뷔 63주년을 맞이한 윤항기는 현재 아내,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는 “15년 가까이 아들, 며느리 부부와 함께 살고 있다가 분가시키고 지금은 제2의 신혼을 살고 있다. 주로 내가 이 집의 머슴이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어느덧 결혼 53년차에 접어든 윤항기 부부는 결혼 사진 등을 공개하며 잉꼬 부부 모습을 보였다.

방송화면 캡쳐

전성기 시절, 한 달에 한 번, 하루 집에 잠깐 들어올 정도로 바빴다는 윤항기. 윤항기의 아내는 “애들 없었으면 나 벌써 도망갔다”며 “당시에는 결혼 사실을 숨겨야 했다. 남자 연예인이 결혼했다고 하면 인기가 떨어지고 그러니까. 애들 키우다 보니 거기 정신이 팔려서 그걸 이겨내기도 했지만 여자로서는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윤항기는 동생 윤복희와 함께 대한민국 음악계에 큰 영향을 줬다. 윤항기는 아버지 故윤부길이 받은 감사패를 공개하며 “대한민국 대중 예술사의 초석을 만드신 분”이라고 소개했다. 윤부길은 ‘처녀 뱃사공’의 작사를 맡았고, 딸 윤복희는 5살의 어린 나이에 데뷔를 했다. 윤항기는 “윤복희는 천재다. 노래, 무용, 연기, 의상을 다 본인이 했다. 못하는 게 없다. 내가 볼 때는 진짜 천재다”고 극찬했다.
반면 윤항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같은 유전자를 받고 태어났는데 동생만 아버지가 무대에 세우고, 나는 근처에 못 오게 했다. 아들 만큼은 자기가 가고 있는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청소년 때 드럼 배우고, 김희갑 선배님에게 노래를 배운 게 전부다”고 말했다. 정식으로 음악을 배운 적 없는 윤항기는 타고난 끼와 재능으로 1세대 싱어송 라이터, 히트곡 제조기로 활약했다.
윤항기의 아들도 가수로 활약 중이었다. 60주년 앨범 발매를 위해 준비하던 중 가수 최백호가 찾아왔다. 최백호는 “윤항기는 저희가 노래 처음 시작했을 때 전설이었다. 지금도 전설이었다. 우리가 무명 가수로 시작할 때는 까마득했다”며 윤항기의 전성기를 증명했다. 최백호는 윤항기와 윤복희가 더 대중적으로 활동했었으면 하는 바람도 전했다.
윤항기는 “부모님이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우리 남매가 어려서 고생을 많이 했다. 한국 전쟁 직후 부모님을 여의고, 어쩔 수 없이 원치 않게 당잘 잘 곳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서 청계천을 배회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후 두 사람은 음악 천재 남매로 주목을 받았다. 윤항기는 “동생이 요즘 아프다”며 전화 통화로 안부를 물었다. 윤복희는 “많이 좋아졌다. 살만 찌면 된다. 살이 확 빠져버렸다”고 말했다.
윤항기는 “어릴 때는 내가 무명이고 동생이 더 유명해서 그늘에 가려져있다보니까 윤복희 오빠 윤항기보다는 윤항기 동생 윤복희라는 말을 언젠가 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만인의 스타가 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 게 큰 원동력이 되고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했는데 그래도 우리 남매는 국민이 사랑하고 아껴줬다. 감사하다. 그런 동생을 둔 내가 행복하다”고 이야기했다.
윤항기는 키보이스 시절 무교동의 한 클럽에서 아내를 만났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난한 뮤지션과 부유한 집안의 여대생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윤항기는 “처가에서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집안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서 만날 수조차 없었다. 몰래 만남을 가지다가 아내가 겨울에 스카프를 하고 왔는데 머리를 깎였더라. 그걸 보고 너무 속상했다. 그때 같이 도망쳐 같이 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때 탄생한 명곡이 바로 ‘장밋빛 스카프’였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였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중 예기치 못한 시련이 닥쳣다. 폐결핵 말기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 아내는 “어떻게 해서라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해 좋다는 것 많이 구해서 먹이고 했다”고 말했다. 아내는 지극정성으로 윤항기를 돌봤다. 윤항기는 “아내가 아니었으면 그때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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