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아홉’ 마흔은 민망한 세 여자의 우정·사랑·이별 ‘눈길’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2.02.18 11: 07

[OSEN=김재동 객원기자]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 친구를 설명한 인디언 속담이다.
JTBC 수목드라마 ‘서른, 아홉’(유영아 극본, 김상호 연출)은 열여덟에 만나 서른 아홉에 이른 차미조(손예진 분), 정찬영(전미도 분), 장주희(김지현 분) 세 여자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이별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의 만남은 특별하다. 동창도 아니고 동네친구도 아니다. 입양아인 차미조가 불확실한 정보에 의지해 친엄마를 찾아나선 길에 만난 사이다.

생판 모르는 동네를 찾아가던 차미조는 지갑을 잃어버렸고 그 난감함을 외면 못한 정찬영이 돈 만원을 빌려준다. 하지만 ‘불우이웃 돕기한 셈 친다’는 찬영의 발언에 시비가 붙고 둘은 함께 미조의 친엄마가 한다는 분식접을 찾는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동년배인 그 집 딸 장주희를 만나게 된다. 잘못된 정보가 부른 열 여덟 어느 하루의 해프닝이었다.
그 하루 외에 접점 없던 세 여자가 어떻게 이 우연한 인연을 계기로 20년 우정을 쌓아왔는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드라마는 그들이 제각각 어떻게 살아왔던 서른 아홉인 지금이 중요하다는 듯 지금 현재 세 사람의 상황만 드문드문 소개한다.
차미조는 강남의 유복한 가정에 입양돼 현재 잘나가는 피부과 개원의로 활동중이다. 정찬영은 배우자망생이었으나 그 꿈을 접고 연기지도에 나서고 있다. 부모 등 가정환경은 밝혀지지 않았다. 정주희는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백화점 매니저다.
낼 모레 마흔인 그녀들의 소울 푸드는 여전히 떡볶이다. 그리고 겉모습도 서른 아홉해를 고스란히 늙어온 듯 하지는 않다. 하지만 나이가 나이인 탓에 등산로 앞에서 바로 하산 막걸리 코스로 건너뛰는 신공을 발휘하곤 한다. 그럼에도 관심사는 여전히 연애다. 찬영은 잘못된 만남으로 괴로워하고 미조와 주희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인연에 촉을 곤두세운다.
몸 늙지 마음 늙나? 사람 그리워하는데 스물이면 어떻고 서른이면 어떤가? 단 마흔이면 좀 민망한지 서른의 끝자락이 그녀들을 초조하게 한다. 제목 ‘서른, 아홉’도 서른에 남고 싶은, 그러나 아홉수에 몰린 그녀들의 심사를 대변한다.
특히 찬영이 심각하다. 자신은 로맨스라 우기지만 그녀가 만나는 김진석(이무생 분)은 애까지 있는 유부남이다. 미조의 소개로 만난 두 사람이 어쩌다 미조 표현 ‘불륜 남녀’가 됐는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내가 먼저 만났고 진석 결혼 후에는 같이 잔 적 없어”란 명분으로 별다른 가책 없는 양 하지만 찬영 스스로 그 관계에 절망의 징후를 느끼고 있다.
급기야 남의 불륜에 끼어들어 경찰서까지 가게 되는 찬영은 미조에게 묻는다. “저것들 불륜야. 나도 저렇게 더럽게 보여?”
결국 찬영은 마흔이 되기 전에 진석에게 결별을 통보한다. “나 담배 끊었어. 오빠도 끊을거야”
서른 아홉에 이별을 개시한 찬영과는 반대로 미조에겐 새 인연이 나타났다. 김선우(연우진 분)는 마치 운명이 예비한 듯 차미조에게 다가온다.
미조가 친구들과 자신이 살던 보육원에 방문한 날 영어선생으로 등장한 선우는 미조가 두고 온 시계를 전해주러 왔다가 미조에게 작약을 선물받는다. 이어 라흐마니노프 연주회에서 재회하고 “작약보러 갈래요?”란 선우의 작업멘트에 두 번째 만남(선우 주장 세 번째 만남)에서 함께 잔다.
아쉽지만 그렇게 끝내고자 했던 미조 앞에 다시 선우가 나타난다. 이번엔 공황장애로 팜스프링서 골프나 치며 안식년을 보낼 계획인 미조 대신 병원을 맡아줄 피부과 의사로.
선우가 미조에게 운명적인 이유는 먼저 선우의 입양 동생 소원(안소희 분)이 미조와 같은 보육원 출신이고, 진석의 소개로 미조의 병원을 위탁운영하기로 했으며, 주희의 눈길을 사로잡은 동네 중국집 사장 박현준(이태환 분)조차 선우의 친한 동생이기 때문이다. 즉 미조의 행동반경 대부분에 선우의 인간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것이다.
세 친구중 유일한 순결녀 주희는 아직 로맨스가 시작될 기미가 없다. 단골 노가리집 자리에 새로 들어선 호텔 셰프 출신 중국집 사장 현준이 눈에 들어오기는 하지만 “왜 다가오고 난리야” “왜 그린라이트도 아닌데 말 걸고 난리야”라는 독백에서 보듯 사랑이 누락된 주희의 인생이 사랑에 무장해제 되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릴 듯 하다.
드라마가 특이한 게 세 주인공 중 하나인 찬영의 죽음을 시작부터 배치한 구성이다. 1부에서 “20여년동안 붙어살던 우리는 첫 번째 이별을 만났다”는 미조의 독백으로 시작하더니 2부에서 찬영의 영정사진을 바로 보여줬다. 드라마가 서른 끝자락에서 장례식을 맞은 찬영의 이야기를 남은 10부를 통해 어떻게 투영할지 궁금증을 부른다.
남들이라면 노력해봤자 소화할 수도, 동화될 수도 없는 시간을 공유한 친구들의 사랑과 우정 이야기. 영화 ‘7번 방의 선물’(각색), ‘82년생 김지영’(각본), 드라마 ‘남자친구’(극본) 등을 집필한 유영아 작가의 스토리텔링에 관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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